사람이 최소한 한 끼 정도라도 비워두듯 굶었더라면, 굶었더라면, 밥맛이 더 나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다. 라면 중 최고로 맛있는 라면은 굶었더라면일 것이다 떠들었던 어제는 저녁식사를 굶었다. 굶었더라면이 그리워서 굶은 것은 아니었고 배가 아파서 굶었다. 굶었더라면이란 라면을 개발한 것은 탐식을 조절하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때부터인데, 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복부는 한참 늘어져 있고, 배가 기억하는 음식들도 나열하기엔 장황스럽다. 절도하듯 쓰러져 잠든 밤, 자면서도 반성을 했다. 나는 그녀가 만든 치즈를 너무 많이 먹었어. 혀끝이 맛있다 하면 덥석 끌어안는 관대한 식성에 매 맞듯 쓰러졌으니, 아침부턴 조절을 꼭 하자 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어젯밤의 반성을 떠올렸는데, 왜 은행 알은 그렇게 많이 구웠냐, 독이 들었다는데, 하는 잔소리를 또 들었다. 열 개 이상의 은행 알을 눈치까지 보면서 다 먹었다.
그리고,
또, 점심은 누구에게 가서 먹을까, 오늘 그녀는 식당에 나오나 하고 전화를 건다. 다행히 그녀의 식당은 오늘 쉰다.
왜 내가 타는 커피보다 저 남자가 타 주는 커피가 더 맛있지, 음미하며 커피를 마신다.
음파음파 나는 열심히 하여간 열심히 호흡을 조절해야 한다. 조절해야 할 것이 한 두 개가 아니다. 그 중에 식탐은 요주의 목록이다. 일단 배는 아프지 말고 살고 싶다.
조연호님의 뻥뻥 뚫린듯한, 행간이 큰길처럼 훤한, 시가 눈에 들어 온 것은 아마도 이런 영향일까. ‘벌레 먹은 잎’ 요 부분에서 시상이 막 떠오를까 말까 한다. 벌레 먹은 이파리 썩은 이파리 성냥불을 그어 불장난 할 때 살짝 태워봤던 두꺼운 갈색종이, 이런 그림들이 막 떠오른다. 그 그림들 속에는 나의 20대의 불장난도 덩달아 춤을 춤추며 피어오른다. 새벽이었을까, 자정을 막 넘기려던 열 한시와 열 두시 사이였을까, 아니 초저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제 멋대로 그네를 타며 치맛바람을 일으키고, 그 치맛단 아래 갈잎 모양으로 오린 종이 중앙에 우리는 불을 놓아 태운 적이 있었다. 구멍 한 개, 구멍 두 개, 그리고 그 다음에는 킥킥 웃었던가, 아니면 안 됐다는 투로 혀를 찼던가. 불탄 자리에 휘휘하니 뚫린 구멍 속으로 무엇이 보였던가, 세계였던가, 아이였던가, 여자였던가.
궁합 또는, 타이밍 / 오정자
그녀는 까만 망사를 덧댄 바늘꽂이를 여자의 속옷으로 연상한다
다시마 넘실대는 바닷가였더라면 망사팬티가 달리고 있다 했겠지
그녀는 실속형 가방을 메고 있었고 아무데나 내려놓지 않으려 했고
연하의 그 소년 쪽을 가급적 시들하게 바라본다
한 때 벌레인지 벌레 먹은 잎인지를 태운 적 있었던 그녀,
조연호의 詩 ‘배교’ 리듬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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