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를 위하여 / 오정자
읽기 쓰기 자유로워진 장르 일탈의 시란 쇼스타코비치 선율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한다 살짝 핀을 바꾸면 된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은 것과 감기에 안 걸리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그러니 동생아 병원에 가라 수련관 옹녀 언니(소리나는 데로 하면 구슬 옥이 옹녀 옹이 된다)가 말한다 내과로 갈까 이비인후과로 갈까 하다가 문 열린 곳으로 들어간다 약은 삼일 치 지어주셈 한다 의사는 뭐 보약인가 한다 보약인 듯 점심이라 쓰인 약봉지를 뜯어서 먹는데 몸은 O형 여자처럼 약발을 챙긴다 약 없었음 어쩔 뻔 했나 간 밤 배 아파 죽을 뻔한 일흔 살 할머니 뉘앙스의 말 말의 뉘앙스 몸엔 막힌 곳도 딱히 없는데 차 몰고 집 앞으로 알짱대노라면 미세먼지가 시야를 막는다. 먼지를 날리고 있는 중국 사람들 지금 어떻게 살까 곳곳에 공장들이 너무 많이 생겼어 만 원짜리 티셔츠를 일천 원에 사 입고 활보하는 쭉쭉 빵빵
레깅스들 잔인하게 토끼에게 거위에게 다섯 번 이상 털을 줘 해서 옷을 만들어 입은 사람들 후후 훗훗 숨 쉬는 모든 게 죄가 되는 사람들 사치로 쌓은 덧옷들 한 두 개만 있어도 적절한 것들 빨랫줄을 흔들자 흔들리던 나무의 낙엽들처럼 우수수 개털이 날린다 가느다란 살빛 은빛 개털 그것이 행여 목구멍에 쌓이면 안락사를 설득하는 미래의 사상이 될 수도 있을까 당신 자녀의 노후를 안전하게 돕겠으니 당신은 이제 여기서 그만 세상은 점점 무서워져 맥도날드 서비스맨들은 경로사상이 희박하다고 갈데없는 노인들 천 원짜리 커피 한 잔 들고서 네 차례나 물러서지 않고 시위를 한다 말을 줄여야지 하지만 잘 될까 회의를 계속해서 해야지 늙을수록 아무도 읽지 않을 비밀이나 편지를 많이 쓰자 뒷방 영감이나 따라 산에나 오르자 개털 보기 싫다고 개들 우리 밖으로 내 놓으면 개들 신세는 먹거리로 몰락한다
우리 손을 떠나면 음식이 되는 개들 뽑히지 않은 털과 뜨거운 혓바닥과 얼른 접촉한다 사랑스러움은 마음자세에 달린 것 뭉근한 목이 제 목소리를 낸다 입었던 옷가지들이 돌아간다 날리는 개털을 검불 같은 삶과 비교하지 않는다 우리 기업주의 손에 죽은 캄보디아 노동자 다섯 명에 대해서는 나까지 더 쓰지 않는다 또 정전이 될 것이므로 아무도 읽지 않기를 바라며 쓰는 시란 무엇이며 정체가 있나 없나 생각한다 걔들만의 리그 소비적 본성을 타고난 이들의 리그 경기를 티브이를 안 보듯 하면서 나도 아무도 읽지 않기를 바라며 쓰는 시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생각할 뿐 쓰지 않는다 쇼스타코비치에서 살짝 핀을 옮겨놓던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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