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변호인

미송 2014. 2. 2. 22:12

 

 

 

영화<변호인>의 신드롬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개봉 한 달 만에 관객 1000만명을 넘어섰다. 한국영화로는 아홉 번째로 천만클럽에 올랐다. 흥행 열기는 아직 진행형이다.

 

<변호인>의 메가폰을 잡은 양우석 감독에게도 영화 같은 일이다. 연신 뺨을 꼬집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45세란 늦은 나이에 첫 데뷔작으로 천만 관객을 모은 최초의 감독이 됐다.

한순간에 충무로의 신데렐라가 된 양우석 감독을 만나 영화 <변호인>의 탄생 배경과 뒷이야기를 들었다.

 

감독이 분석하는 흥행 성공 요인은 무엇인가.
단언컨대 송강호란 배우다. 늘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다. 최근 <설국열차> <관상> 등으로 관객들에게 높은 신뢰감을 준 것도 작용했다. ‘송우석이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평소의 툭툭 던지는 듯한 생활연기가 아니라 피끓는 연기로 전혀 색다른 존재감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 영화의 모티브인 노무현 대통령의 80년대 변호사 시절이 결합되어 중장년층으로까지 공감대를 넓힌 것 같다.”

 

모든 것에 타이밍이 중요하다. 국정원 댓글, 철도노조 등 유난히 소통이 잘 안 되는 이 정부의 답답함도 영화의 흥행 성공에 기여했다는 분석도 있다.
역사가 퇴행한 듯한 느낌을 받아서일 게다. 분명히 21세기인데 80년대와 비슷하니까. 시대를 보는 거울의 각도가 맞았다고나 할까.

영화건 드라마건 우리가 호흡하는 현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데, 거울의 각도는 만든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각자 거울을 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 이 영화에서는 변호사 노무현이란 한 인물을 프리즘 삼아 광각적으로 보려고 했다. 사실보다는 진정성을 담으려 했다.

부림사건의 주인공들은 은행원, 선생님 등 23명이지만 영화에서는 9명의 대학생들로 축소했다. 재판과정도 실상은 무미건조하고 비상식적이고 일방적이다. 기록을 보면 판사가 변호사는 입다물고 있으라는 말까지 한다.

유무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런 비상식적인 일이 가득한 80년대를 어떻게 살아왔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아마도 요즘 비상식적인 일이 많이 일어나서 더 공감이 클지도 모른다.”

 

천만 관객들이 이 영화에 열광했지만 불편해 하는 이들도 많다. 보수언론에서는 노무현을 미화했다란 칼럼까지 등장했다.
영화 상영 전부터 선입견을 가진 이들이 많았고, 오해의 소지도 많은 영화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누차 강조하듯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영화 시작 무렵 허구라는 자막도 내보냈다. 영화는 송우석이란 인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건 맞지만 누차 밝혔듯이 이 영화는 실화적 요소를 차용하고 각색한 픽션이다.”

 

웹툰 작가이고 시나리오를 썼는데 감독까지 맡은 이유가 있나.
천만 관객은커녕 영화로 만들어질지도, 내가 감독을 맡을 줄도 몰랐다. 평소 알고 지내던 위더스의 최재원 대표와 우연히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준비한 웹툰 얘기를 꺼내자 최 대표가 영화로 만들자고 전격 제안했다.

중량감 있는 감독이 맡아 주기를 바랐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어 결국 내가 직접 연출까지 하게 됐다. 송강호씨가 출연을 결정하며 출연진도 탄탄해지고 규모도 커져 영화에도 무게가 실렸다.”

 

이 영화를 성찰을 위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관객들에게 다 내려놓고 바라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에게는 세상을 보는 다양한 필터가 있다. 나의 직업, 재산, 아파트 등등. 그렇게 많은 필터들이 수십겹씩 겹쳐져 세상을 왜곡되게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런 조건, 필터들을 내려놓고 세상을 보자는 것이다.

1980년 무렵에 전두환 정권은 군사 쿠데타로 탄생했다. 그리고 계엄법 등 잘못된 일들이 많았다. 그 잘못을 용기 내어 시정한 어떤 사람의 성찰이 우리에게도 변화와 영향을 주었다.

극중 학생들을 고문하는 경찰인 차동영(곽도원 분)이란 인물에게도 연민이 느껴진다. 공산당에게 아버지를 잃은 그에게 공산주의는 절대악이다. 국가안보가 절대선인 그에게는 학생을 고문하는 것도 신념이다.

하지만 그는 신념만 있을 뿐, 성찰을 하지 않았다. 누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갖고, 쥐고 있는 것들을 다 내려놓고 철학적인 성찰을 할 때 사회가 변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한 사건으로 인간의 인생이 갑자기 그렇게 바뀌나.
바뀔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랬다. 송우석은 가난했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학벌도 없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무슨 놈의 사회운동이고 인권인가. 그런데, 부조리한 사건(부림사건)을 만나면서 신념체계가 바뀐다. 단골 국밥집 아들이 혐의도 없이 빨갱이로 몰려 구타당하고, 그 어머니가 고통당하는 걸 보면서도 그는 회의한다.

그러면서 내가 먹고 살기 위해 직업으로 삼은 법이 인권을 수호해야 한다는 데 눈 뜬다. 돋아나는 신념을 성찰, 회의로 단단하게 만든 송우석과 아주 단단한 신념의 차동영이 부딪치는 거다. <변호인>의 목표는 명백히 시대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었다. 성찰 없이 몸으로 배운 신념체계가 지금 한국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저해했다는 건 누구나 이해하지 않나.”

 

장르로 치자면 법정영화다. 이런 구성을 한 이유가 있나.
그 사건을 법정에서 다루며 그 시대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1차 공판은 좌충우돌, 2차는 실망감, 3차는 고문을 표현했다. 고문을 따로 뽑아서 보여주기보다 법정에서 피고인의 모습을 통해서 이 학생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술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4차에는 신념 대 신념의 충돌, 5차에는 반전이라는 게 있었으면 했다. 5차에서는 양심선언, 그런 것을 단선으로 가져왔다. 다른 사건이지만 이 이야기를 훼손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법정영화의 틀로 가져왔다.”

 

왜 노무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었나.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90년 청문회에서 노무현을 발견했다. 당시 청문회 스타는 많았지만 그처럼 주목받고 주간지와 월간지까지 도배한 정치인은 없었다.

고졸, 판사 출신의 변호사, 부산에서 가장 돈많이 벌던 변호사가 인권변호사로 변신해 청문회에 나타난 모습은 마치 <춘향전>의 이몽룡이 나타나 암행어사 출두요라고 외치며 변학도를 응징하는 코리안드림의 상징 같았다. 그런데 1992년 민주당 합당 때 그를 재발견했다.

지난 10년간 고생할 만큼 했는데, 얼마든지 유명세를 타고 2·3선의 국회의원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데 계속 이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를 외치는 그를 보고 실존적 궁금함이 생겼다.

그래서 그와 관련한 자료를 모았는데 대통령이 된 후에 접었다. 자칫 잘못하면 용비어천가가 될 수 있으니까. 만약 그 분이 생존해 있다면 이 영화는 탄생하지 못했을 게다.”

 

그 후 한 번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실망한 적이 없나.
물론 변호인이 아닌 대통령 노무현에게는 실망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의 진정성에는 공감한다. 그는 지역갈등을 치유하지 않고는, 권위를 타파하지 않고는 우리나라의 발전이 안 된다며 무모한 도전을 계속했다.

그가 구상한 큰 그림을 공유할 시간이 없었다고 본다. 그는 권력은 얻었지만 기반을 못얻어 흔들리는 집에 살았고 그걸 보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양우석 감독,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송강호씨에게는 노무현 대통령을 어떻게 그려달라고 주문했나.
처음 연출을 맡아 어려워하는 내게 그 분이 더 많이 물어봤다. 송강호씨는 정치엔 관심없지만 시나리오의 문맥, 대사나 연기에 대한 이해가 매우 빠르다. 난 항상 영화와 축구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90분이란 시간도 비슷하고 재미나 지루함도 비슷하다.

 

그는 공격과 수비가 완벽한 위대한 토털 사커다. 특정한 장면에서만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장면에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 그는 굳이 노무현을 흉내내려 하지 않고 자신이 해석한 송우석 변호사로 완벽한 연기를 보여줘 더 큰 울림을 전했다.”

 

영화의 배경이 80년대다. 80년대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나.
너무 많은 청춘들이 아파하고 스스로 찌질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볼 때, 우린 찌질한 게 아니라 피곤한 거다. 나폴레옹이 말하기를 보통 사람과 영웅의 차이는 5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이 5분 더 용감하면 영웅이 된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는 한 번 삐끗해서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기 힘든 구조다. 그러다 보니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그러느라 피곤에 지쳐버린다. 비겁해서 외면한다기보다는 피곤해서 더 이상 어떻게 반응하기가 힘든 거다.

피곤이 가져온 마비라고나 할까. 마비만 풀어내면 다시 달릴 수 있다고 본다. 인생은 후불제다. 젊은이들은 꿈을 꾸는 시기다. 지금 꿈꾸고 용기를 내지 않으면 대체 언제 꿈을 꾸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80년대 청춘이었던 이들에게 이 영화는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식들이나 청춘들에게 너희는 자각하고 성찰하라는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싶다.

“80년대를 살아온 분들한테는 순결에 대한 묘한 정서가 있는 것 같다. 난 거꾸로 생각한다. 우리가 욕할 때 걸레라는 말을 쓰는데, 걸레만큼 좋은 게 없다. 더러워지면 다시 깨끗하게 빨아서 쓰고 또 더러운 걸 닦는다. 목욕은 좋은 단어라고 하면서 걸레를 빠는 건 왜 나쁘게 생각하나.

사는 게 바빠서 잠깐 잊었던 그 시대의 아픔이나 성찰을 다시 영화를 보고 깨끗해지셨다면 다시 빨고 아들딸이랑 얘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 방바닥을 닦아 더러워졌다면 화장실로 빨리 가서 빠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문제는 찌질함이 아니라 피곤함이라는 거다. 닦지 않는 거, 빨지 않는 거, 결국 우리는 피곤과 싸우는 거다.”

 

영화의 엔딩이 극을 지배하던 부림사건이 아니라 7년 후인 1987년이다.
송강호 선배랑 농담 삼아 만약 우리가 저 상황에 있었다면 어땠을까?’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부당한 사건을 보면 5000만 국민 중에 절반 이상은 분노하고, 충분히 그랬을 수 있다.

누구든지 잠깐은, 며칠은, 몇 달은 분노할 수 있다. 근데 그 분노를 냉철한 이성으로 단련하고 제련해서 시대를 끌고 나가는 힘으로 만드느냐 못만드느냐. 송우석은 7년 뒤에도 변함없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 분노가 성찰을 통해 몇 년이 지속됐고, 나를 경멸했던 사람들마저도 내게 동조해 줬다는 것을 넣고 싶었다. 그걸 영화에 넣지 않으면 결국 패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꼭 그렇게 영화가 끝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관객을 그냥 돌려보내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념의 공감과 연대가 이 분을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한 거다. 거의 실화에 가까운 영화다.”

 

영화를 보니 우리는 불과 몇십년 전 사건도 다 잊고 사는 것 같다.
한국은 망각을 하기 위해 악을 쓰고 사는 사회다. 힘든 시기를 본능적으로 잊으려고 한다. 그만큼 상처와 아픔이 큰 이유도 있을 게다. 6·25란 큰 전쟁과 아픔을 겪고도 그 척박한 시대에 우리는 김수영이란 시인, <광장>의 최인훈이란 작가를 통해 아름다운 문학과 예술을 탄생시켰다.

나는 IMF사태가 현재 우리 사회의 피곤의 요인인 것 같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그저 생존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반성도, 성찰도 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그 아픔을 겪고 소설이나 드라마 한 편 남긴 게 없다. 그래서 온고이지신, 옛 이야기를 다시 꺼내 오늘을 반성하고 좀 더 먼 내일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변호인>2편을 기대하는 이들도 많다.
그건 아마 정치인 노무현. 혹은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일 텐데 내 몫은 아니다. 가장 최측근에서 그를 가까이 본 사람들의 역할이다. <변호인>이 허구를 담은 야사라면 정사로 그려져야 하고, 노무현과 그 측근이 반성할 것은 반성하는 내용이 담기면 공감을 얻지 않을까.

영화는 사이렌 같은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주의를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불을 끄고 사고를 수습하는 것은 주위 사람들이다.

<변호인>이 그런 의미에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그것이 잘됐다면 환기가 됐다는 것이다. 영화 속 인상적인 대사가 민주주의의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나온다. 이 영화를 통해서 관객들이 정치나 민주주의, 혹은 주인의식을 생각해 본다면 정말 기쁘겠다.”

양우석 감독은 이 영화의 허구를 강조하는 일부 층에게 천만 관객이 사기를 당했다면 감독보다는 관객 성향을 분석해보는 독자분석 비평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천만 관객의 영광에도, 주변의 오해에도 흥분하지 않는 그의 내공이 부럽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한 달 전부터 미루던 영화를 드디어 봤다. 변호인. 영화를 본 후에야 감독을 찾는다.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감독도, 영화리뷰를 인터뷰식으로 재구성한 기자도, 연기자 송강호도, 갈채 받기에 충분하다. 어딘가 씁쓸하고 또 그립고,

그렇지만 감독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내 몫의 과제를 기억하기로....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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