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플 마인드' 의 러셀 크로우 분이 맡은 수학자 존 내쉬의 모습.
그의 존재는 기호(숫자)다
1. 천재와 광기 오! 천재와 광기는 그토록 서로 가까이 인접해 있구나. 선에서든 악에서든 하늘이 내린 사람들은 광기의 징후들을 다소간 나타낼 수밖에 없다. 그들은 그것들을 자주 나타내며 격렬하게 드러낸다. 그들은 감금되고 사슬에 묶이며, 다음에는 사회적 신분이 박탈된다. -디드로-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 - 폴 에어디쉬-
언제부턴가 천재들은 정신분열과 우울증, 자살 및 요절과 동일시되곤 합니다. 특히 서구의 예술적 천재들이 그런 광기의 절정들을 보여주었는데, 철학자 니체와 루이 알튀세르, 시인 바이런과 휠덜린, 랭보, 음악가 슈만과 차이코프스키, 작가 모파상, 버지니아 울프, 마르셀 프루스트, 화가 반 고흐와 동생 테오,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등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다 해당되죠. 이들 중 많은 경우가 영화화되었구요.
아, 최근 [샤인]의 데이비드 헬프갓도 여기에 포함되는군요. 불꽃같은 천재성의 발현과 곧이은 분열과 절망에로의 떨어짐. 이 이상 더 드라마틱한 영화 소재가 어디있겠어요. 여기에 예술계와는 다른 학문계인 천재수학자 존 내쉬의 극적인 삶 역시 이제 영화화되어 우리 앞에 놓이는군요. 내쉬 역시 앞의 비극적 천재들의 공통된 특징-젊은 시절의 번뜩이는 영감과 탁월한 업적, 나르시시즘적 인격과 괴팍한 행동, 사회와의 불화와 고립, 자기 파탄과 정신병원행의 반복, 유전적 대물림 등-을 다 갖추고 있죠. 다만 그는 헌신적인 반려자와 동료 수학자들의 꾸준한 도움으로 30여년만에 재기하여 큰 영예를 생전에 다시 맛보았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겠죠. 정신과의사 필립 부르노에 따르면, "천재는 모든 사람들을 닮아 있지만, 아무도 그를 닮을 수는 없다"는 명제 자체가 곧 천재들로 하여금 그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에 반항하게 하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그를 사회로부터 소외시켜 고통을 안겨주고 광기를 부추긴다고 하죠.
수학자의 세계 역시 "만약 당신이 우표수집가라면 세상에 있는 우표를 모두 수집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수학에서는 모든 정리를 풀 수는 없다. 수학자들은 모든 문제의 해결은 불가능하다는걸 알기 때문에 우울해지는 것이다"라는 그레이엄의 말로 광기와의 친근함이 증명되구요. 내쉬의 삶 역시 이런 전철들을 그대로 밟아갔다고 볼 수 있죠.
2. 존재는 기호(숫자)다
나는 소박한 환각에 익숙해졌다. 나는 정말 솔직히 공장 자리에서 이슬람교 사원을, 천사들이 설립한 북교습소를, 하늘의 길을 달리는 사륜마차를, 호수 속의 살롱을, 괴물들을, 불가사의한 것들을 보았다. 무대극의 제목은 내 앞에 심한 공포를 세웠다. 그리고 나서 나는 단어들의 환각으로 내 마법의 궤변을 설명했다. -아르튀르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서-
내쉬의 전기에서 다른 부분들을 제외하고 발병과 환각, 헌신적 사랑과 재기에만 초점을 맞추어 소재를 뽑아 픽션으로 포장한 이 영화에 대해 사실 내쉬의 전기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그럭저럭 사실왜곡에 대해 넘어간다 해도, 최소한 시대적으로 밝혀져야 할 부분이 은폐되어 있는 건 참 유감입니다. 당시 내쉬가 몸담았던 MIT대학과 랜드연구소가 국방성 및 군부에서 거의 100%연구비를 지원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미국과학계의 대부인 오펜하이머가 수소폭탄 제조거부로 쫓겨난 뒤 대대적인 매카시즘 마녀사냥 속에서 내쉬의 동료 수학자들 역시 빨갱이로 몰렸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들이 원인이 되어 발병 후 내쉬가 미국국민임을 거부한다는 선언을 하고 유럽, 특히 동독까지 망명하러 갔다는 사실과 그의 환각 환청의 주요 내용들이 '세계시민으로 구성된 세계위원회'였다는 사실들이 그것이죠. 일종의 피해망상이 과대망상으로 전이된 경우라 할까요. 어떻게 보면 냉전의 회오리가 이 예민한 수학자의 정신에 치명적인 뇌관으로 작용했는지도 모른다는 건데, 그 시대적 상황들이 의도적으로(?) 뒤집어지면서 그냥 '사랑의 승리=휴먼드라마'로 흘러가버리는 군요.
내쉬의 굴곡진 삶을 표정과 제스처로 열연한 러셀 크로의 힘이야 이미 인정받았기에 더 할말은 없지만 [샤인]에서 익히 본대로 아카데미를 향한 전형적 공식의 해법이란 느낌이 너무 들기에 좀 찝찝합니다. 오히려 흥미로운건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내쉬의 환각=기호(수)의 세계=행복한 영웅의 세계, 내쉬의 현실=무질서의 세계=초라한 병자란 대비가 더 눈에 들어옵니다. 내쉬에게 그의 존재는 기호(수)로 증명되며, 이런 극단은 기호(암호)로 이루어진 세계의 조종, 지배자란 환상으로 이어지죠. 숫자의 조합인 그 세계는 내쉬의 머리속 해법만으로 정리될 수 있는 완벽한 논리적 구성물이니까요. 반면, 현실은 그에게 격리된 정신병원과 기호화할 수 없는 무질서로 가득찬 세계죠. 자신은 아웃사이더며, 전혀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인식. 심지어 성적으로도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30년 동안 내쉬의 존재의 이유가 된 프린스턴대학 파인홀의 유리창과 칠판에 가득한 기호의 배열. 수적 신비주의에 대한 열정과 논리. 그럼에도 그 세계는 자신만의 소외된, 소통불가능한 세계죠. 그게 사랑을 통해 '다른 기호(언어)'로 전이되었을 때만 소통된다고 인정받는 걸 보면, '존재는 여전히 기호다'는 명제가 들어맞습니다.
이런 존재의 분열과 소외, 만들어진 자(기호)가 만들어낸 자(인간)를 지배하는 물신화된 구조의 세계. 그건 곧 현대세계의 자화상이라고나 할까요.
3. 돈키호테와 햄릿 사이에서 나는 미치광이였지만 지금은 제 정신이 들었다.
전에는 라만차의 돈키호테였지만 이제는 알폰소 키하노로 돌아왔다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극단적인 이성(논리)중심이었던 햄릿에서 몽상적 행동가 돈키호테로 변했다가 다시 노년에 이르러 돈키호테와 공존하는 햄릿(?)으로 돌아온 내쉬. 그런데 영화속에서 '뷰티풀 마인드'로 결론지어진 그 공존이, 아니 승리한 햄릿이 과연 현실에서도 진정한 행복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을까요? 완벽한 기호의 조합을 지배하는 절대적 존재로의 전이-비록 그것이 환각일지라도. 그 자기만의 세계에 내쉬뿐 아니라 우리 역시 엄청난 유혹을 느낀다는 것. 그것이 행복한 가상현실의 세계로 우리를 끊임없이 내모는 이유일테죠.
글. 김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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