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속으로 난 길
돌 하나를 던진다 수면은 깃을 퍼덕이며 비상하려다 다시 주저앉는다 저수지는 참 많은 길을 붙잡고 있다 돌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나는 같이 아프기로 한다 바닥의 돌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반지를 던지고 웃음과 울음을 던진다 그러나 물은 한 번 품은 것은 밀어내지 않는다 물 위의 빈 누각처럼 어둡고 위태로워져서 흘러가는 사람들 저수지는 그들의 좁은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
삐걱거리는 목어가 둑 아래 구불텅한 길을 내려다보려고 몸을 출렁인다 잉어는 물 위의 빈집이 궁금하여 주둥이로 툭툭 건드린다 잉어와 목어의 눈이 잠깐 부딪친다 마주보는 두 길이 다르다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가 뒤섞여 길을 이루고 있다 떨어진 잎들이 제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저수지로 흘러든다 길을 끊는 저수지에 나는 다시 돌을 던진다 온몸으로 돌을 받는 저수지, 내 몸 속으로 돌이 하나 떨어진다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민음사, 2009)
모자 웅덩이
자정이 넘은 시간에 아이를 찾아 다녔죠 비는 억수같이 내리고 흙탕물은 흔들렸죠 머릿속에선 미꾸라지가 꿈틀거렸고 둥근 무늬 뇌파와 파랑 무늬 뇌파가 어깨를 겹친다는 신호가 왔죠 크고 작은 일들이 뇌를 뒤흔들어 뇌수는 위험수위 신호를 깜빡거리고 막막이라는 두 겹의 막이 모자를 씌워줬죠 꽈리처럼 부풀은 수포가 터질 때마다 모자가 헐렁헐렁해졌죠 머리를 끼울 건가요 얼룩을 담을 건가요 웅덩이는 계속 출렁이며 묻고요 이 모자는 흔들리는 아이에게 딱 어울려요 라는 물메아리만 첨벙첨벙 신이 났어요 자정이 넘은 시간에 소낙비가 내려요 주룩주룩 모자가 머리에 넘쳐요 딱 그까지에요 내가 웅덩이를 모자로 쓸 수 있는 한계, 모자가 웅덩이에 빠졌다가 다시 모자로 쓰일 수 있는 한계,
계간 『시평』 2012년 가을호
천수호 1964년 경북 경산 출생. 계명대에서 석사학위, 명지대대학원에서 문학박사.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옥편에서 미꾸라지 추(鰍)자 찾기>로 등단.
시집으로 『아주 붉은 현기증』(민음사, 2009)이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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