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장

방현석의「존재의 형식」중에서

미송 2014. 7. 9. 07:48

 

베트남의 한 시인이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그와 함께 입대했던 300명의 부대원들 중,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오직 다섯 명뿐이다. 전쟁이 계속된 10년 동안 그의 동료 295명이 죽었고, 그는 살아남은 다섯 명 중의 하나다.

하여, 레지투이는 죽어간 친구들을 대신해서 자신이 산다고 생각한다. 현재 최고의 다큐멘터리 감독이고 유명한 소설가이지만,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지는 이름은 시인이고 또 그렇게 불리길 원한다. 그의 시는 ‘전쟁이 안겨준 비애로 전쟁을 넘어서려는 정신의 바다를 이룬다’고 평가받는다.

「전선에서 만난 친구 중에서 시인을 꿈꾼 이가 있었다. 전쟁터에서도 그는 틈만 나면 시집을 읽고, 시를 썼다. 그러나 수많은 동료들이 그랬듯이, 열아홉살의 나이로 죽었다.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시인이 되지 못한 채 죽은 그 친구의 이름이 ‘반레’였다. 전쟁이 끝난 이듬해 레지투이는 군복을 벗었고, 자신의 첫 시를 ‘반레’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지금까지 레지투이의 모든 글은 ‘반레’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존재의 형식」을 읽으며, ‘레지투이/반레’를 반복하여 되뇌다가 불현듯, 지난해 서울에서 만났던 한 베트남 시인의 작품이 떠올랐다.

이른 아침 뜰에 나가 수련꽃 땄네
폭탄 구덩이 아래 어머니가 심은 수련꽃
아아, 어디가 아프길래 물밑 바닥부터
잔물결 끝도 없이 일렁이는가.

몇해 지나 폭탄 구덩이 여전히 거기에 있어
야자수 이파리 푸른 물결을 덮고
아아, 우리 누이의 살점이던가
수련꽃 오늘 더욱 붉네.


(찜짱, 「수련꽃」전문)

 

「존재의 형식」에서 ‘레이투지/반레’가 시를 통해 추구한, ‘전쟁이 안겨준 비애로 전쟁을 넘어서려는 정신의 바다’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폭탄 구덩이’에 ‘누이의 살점’처럼 붉게 핀 ‘수련꽃’의 이미지를 통해, 전쟁의 상흔을 아름답게 내면화하고 있는 시다. 지난 상처에 연연해 현실감각을 상실하지도, 그렇다고 과거의 슬픔을 망각하지도 않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현재와 과거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작품이다.


다시 「존재의 형식」으로 되돌아와서, 방현석은 이러한 시인의 ‘마음가짐’을 통해 우리의 삶을 되비추어 보라고 손짓한다.


베트남에 들른 문태는, 그들의 궁핍한 현재의 삶을 일별하고, 제국과 싸워 승리한 그들의 투쟁을 떠올리며, “이렇게 살기 위해서 싸운 건 아니잖아요?”라고 묻는다. 시인은 소박하게 대답한다. “우리는 우리 세대가 해야 할 일을 끝냈을 뿐이지요. 다음 세대에게는 또 다음 세대가 해결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지요.”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궁색함이 없다. 과거나 현재나 시인을 지탱해 온 것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어머니가 가르쳐준, ‘누구한테서도 경멸받을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와 같은 ‘사소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친구를 만나면, 먼저 어떻게 하면 이 친구와 즐겁게 지낼 것인가를 생각하는 마음가짐, 함께 지낼 때는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헤어질 때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뭐 그런 마음가짐’ 같은 것 말이다. 그들은 공산주의 이념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박탈하는 제국의 억압에 대항하여 공산주의의 삶을 산 것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몸부림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들이 끝까지 지키려 한 이 ‘사소한 것’들이 인간다운 세상을 구성하는 밑거름이 아니겠는가? 인간답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덕목의 하나인 냉혹함의 시대, 「존재의 형식」이 아프게 심문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 이 ‘사소한 것’들을 삼키고 있는가이다.

 

글, 고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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