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명 / 김이듬
당신이 부르시면
사랑스런 당신의 음성이 내 귀에 들리면
한숨을 쉬며 나는 달아납니다
자꾸 말을 시켰죠
내 혀는 말랐는데
마당에서 키우던 개를 이웃집 개와 맞바꿉니다 그 개를 끌고 산으로 가 엄나무에 매달았어요 마당에는 커다란 솥이 준비 되었어요 버둥거리던 개가 도망칩니다
이리 와 이리 와
느릿한 톤 불확실한 리듬
어딘가 숨었을 개가 주인을 향해 달려갑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을 향해 사랑이라 믿는 걸까요 날 이해하는 사람은 나를 묶어버립니다 호명의 피 냄새가 납니다
개 주인은 그 개를 다시 흥분한 사람들에게 넘깁니다 이번엔 맞아죽을 때까지 지켜봅니다
평상에서 서로 밀치고 당기는 사람들
비어가는 접시와 술잔
빈 개집 앞에 마른 밥 몇 숟가락
아버지는 나를 부르고 나는 지붕 위로 올라갑니다 옥수수 밭 너머 신작로가 보입니다 흐르는 구름 너머 골짜기 개구리 소리밖에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동경하지 않아요
당신이 부르시면
날개 달린 당신이 부르셔도
계간 『애지』 2014년 가을호 발표
김이듬 시인 부산대 독문과 졸업. 경상대 국문과에서 박사학위 취득. 2001년 계간 《포에지》(나남출판사)로 등단. 네 권의 시집『별 모양의 얼룩』(2005. 천년의시작)『명랑하라 팜 파탈』(2007. 문학과지성사)『말할 수 없는 애인』(2011. 문학과지성사)『베를린, 달렘의 노래』(2013. 서정시학)와 장편소설『블러드 시스터즈』(2011. 문학동네) 출간. 제1회 시와세계작품상(2010)과 제7회 김달진창원문학상(2011), 제7회 웹진 시인광장 올해의좋은시상(2014) 수상. 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파견작가로 선정되어 독일베를린자유대학에서 한 학기 간 생활. 현재 경상대 출강 중.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2014년 2월호(2014, February)
아찔한 자의식의 벼랑에서
명랑하게 노래하는 세이렌, 김이듬 시인
그녀는 ‘나도 날 못 봤다’고 쓴다. 그것은 넘치는 가假의식들의 세상을 향해 날리는 분명한 자咨의식으로서의 부정적 실존성이다. 그녀는 이어 ‘나는 아름답다’고 쓴다. 그것은 넘치는 부조리한 미감의 허세를 향해 마음껏 퍼붓는 조소이다. 그러나 시의 도처에서 그녀는 종횡무진 그녀들로 늘어나고, 그녀들에 의해 잠수하고 비행한다. 그녀들로 끊임없이 변신하며 결코 아름답지 않은 아름다움을 견고히 구축해낸다. 아름다움이 무너진 것은 판단이 스스로의 이익에 봉사하거나 스스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편견 없이 객관적일 수 있다고 간주되어 온 입지가 흔들렸음을 반영하는 것, 그러므로 그녀는 그녀만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하나가 아닌 무수한 복제로 모순이 되어서, 정형화된 틀에 안심하고 있던 시인들에게는 배반을 주고, 안온한 독자들에게는 충격을 준다.
멀티-메타적 언어와 문장으로 관계에 구멍을 내고, 하이퍼-모던한 상상으로 시공간에 얼룩을 만든다. 명랑하게 마법의 붓자루를 휘두르는 그녀는 변신의 천재인 ‘마녀魔女’가 되었다가 우리를 끝내 ‘무녀巫女’가 되어 자신이 직조하는 주술에 굴복시킨다. 때론 불편하게, 때론 삼빡하게 이상한 김이듬의 세계로 끌고 가서는 그녀가 부여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우리는 결국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름다움에 취한 채 ‘미녀美女’로 둔갑한 그녀의 변검술 앞에 아연실색하며 김이듬의 시에 갇힌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출구 없는 그녀의 시의 문은 닫히고, 우린 밖을 두드리다가 헐거워진다.
‘2014 올해의 좋은시’ 수상작 발표가 나고, 수상자 인터뷰를 위해 그녀에게 전화를 걸고, 전화 연결이 안 되고, 마감일에 맞추려면 조급하고, 다시 전화를 걸고, 안 되고, 또 다시 전화하는 사이, 나는 결별한 지 십 년도 넘은 연인을 추적하듯 다급해진다. 간절함이 뜨거워진다. 그리고 마침내 전화기 속으로 떠오른 그녀의 음성은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가늘고 연하다. 맑다 못해 투명하다. 우선 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하고 나중에 한번 만나자고 제안한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지면에서만 들여다보고 어루만진 시인과의 메일 인터뷰…… 우리는 얼마나 많이 혼란에서 엉킬 것인가. 매혹적인 혼돈으로 행복해할 것인가.
더 빨리 이뤄지는 소원들
■ 김명원: ‘2014 올해의 좋은시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미 여러 번 수상을 하셨지만 이 상은 다른 상들에 비해 차별화된 내역을 지니고 있지요. 바로 웹진을 포함, 국내 문예지에 발표된 신작시를 대상으로 20명의 편집위원들과 60명의 추천위원들이 선작한 시를 엄선하여 선정한 것인데요. 그래서 좀 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지 않을까 해요. 웹지면으로도 소감을 접할 수 있지만 지상 외의 말씀으로도 듣고 싶네요. 인터뷰 버전으로 수상 소회를 짧게 주신다면요.
□ 김이듬: 기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예심에 참가한 여러 시인들, 본심 심사위원님과 시인광장 선생님들께 인사드립니다. 13년 전 사고무친 시골 습작생의 투고작을 뽑아주신 황현산 선생님과 김혜순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어떤 상이든 온전히 감사와 기쁨만으로 받을 수 없는 것은 어둠 속에서 저보다 치열하게 시를 짓는 좋은 시인들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 김명원: 수상작 선정 이유에서 “감정의 긴장 과정, 고조과정, 그리고 완결이 있다”(방민호)는 점과 “역사적 상상력의 신선함, 그러면서도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과 우리의 선입견을 뒤집는 충격”(정한용)을 심사위원들은 들고 있는데요. 이 시가 만들어진 배경이나 시감詩感은 무엇일까요?
□ 김이듬: 심사위원님들께서 짚어주지 않았다면, 저는 잘 몰랐을 거예요. 의미나 해석을 염두에 두고 쓰지 않는 편이거든요. 이 시는 작년 유등축제 전야에 짧은 묘사로 시작했어요. 고향이라든가 어떤 시원을 향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보고 싶은 맘이 늘 있었거든요.
■ 김명원: 그러셨군요…… 지금은 삭풍이 예각으로 풍경을 긋는 겨울인데요. 선생님 시에서도 「함박눈」이나 「12월」, 「이제 불이 필요하지 않은 시각」등 유독 겨울 시편들의 느낌이 강렬하고요.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계절은요? 이유가 있을까요?
□ 김이듬: 저는 환절기를 좋아했어요. 묘한 섞임과 불편함, 어중간하고 무질서한 기운. 그런데 갑자기 계절취향이 겨울로 바뀌었어요. 지난겨울, 그러니까 2013년 12월 1일부터 며칠간 스톡홀름국제시축제 참석차 스웨덴에 있었는데, 그 혹독한 추위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어요. 낮 두세 시가 되면 컴컴해지고 쏟아지는 폭설에 고립되어 잴 수 없는 시간 속에 무한의 공간을 사는 기분이 좋았어요.
■ 김명원: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시지요. 지금은 겨울방학 기간인데요. 강의가 없는 요즈음은 무얼 하며 지내시는지요?
□ 김이듬: 강의가 없지 않아요. 방학특강이랄까요. 문학과지성사 문화원 ‘사이’에서 '우리 다시 시작(詩作, 始作)하자’라는 강좌명으로 매주 1회 강의를 하고 있어요. 강의라기보다는 함께 정열적으로 써보는 거죠. 이번 방학엔 밀린 책들을(만화책까지 포함) 읽으려 합니다. 또 시를 쓰거나 올해 중순에 출간될 시집 원고를 매만지곤 합니다. 이렇게 일상은 평범합니다. 종종 음악 들으며 산책하고 영화도 보고요. 올해 들어서는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겨울왕국’을 보았는데 2월 말까지 볼 영화리스트가 10편 잡혀있네요. 혼자 놀아도 바빠요.
■ 김명원: 혼자 놀아도 바쁜, 어제 하루의 일상을 소개해 주실 수 있으세요?
□ 김이듬: 어제는 ‘사이’ 강의 마친 후, 대학로에 있는 연극 연습실에 갔어요. 극단 인어(人語)대표 최원석 씨가 “한번 와서 연습하는 거 봐야하지 않느냐?”며 몇 번이나 전화를 하셔서요. 그분이 쓴 ‘변태(變態)’라는 희곡에 저의 작품 네댓 편이 들어가나 봐요, 참! 박정대 시인의 시들도 삽입되었고요. 2월 1일부터 3월 30일까지 ‘이랑씨어터’에서 공연하니까 한번 보러 가주세요. 최근 연극계의 불황도 걱정이지만, (故)신 호 연출가의 유고작이라…… 맘 아픈 비하인드스토리가 많아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 김명원: 신문을 통해 연극 ‘변태’ 공연 소식을 접했답니다. 제가 대학생 시절에 몸 바쳐 추억을 쌓았던 동아리가 연극반이거든요. 그래서 연극에도 남다른 애정이 있지요. 시에서 추출한 아우라가 연극 대사와 화학작용을 근사하게 일으킬 듯한데요. 문학에 관심 있는 관객들에게 좋은 반향을 일으킬 공연이 되길 저도 응원할게요. 서울나들이 겸 시간 내서 관람해야겠네요.
축하해
잘해봐
이 소리가 비난으로 들리지 않을 때
누군가 꽃다발을 묶을 때
천천히 풀 때
아무도 비명을 지르거나 울지 않을 때
그랬다 해도 내가 듣지 못할 때
나는 길을 걸었다
철저히 보호되는 구역이었고 짐승들 다니라고 조성해놓은 길이었다
- 「꽃다발」 전문
일생은 해결해야 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그 무엇 너머
■ 김명원: 선생님의 성함은 필명이지요. ‘이듬’이라는 불확정적 기표 속에는 어떤 멋진 함의가 있을까요?
□ 김이듬: 2001년 『포에지』에 투고하여 당선이 결정된 후, 나남출판사 『포에지』 편집부에서 연락이 왔어요. 본명 향라(香羅)를 필명으로 바꾸기를 제안했어요. 몇 번 거부하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기분으로 필명을 고민했죠. 당시 기호학 관련 서적을 탐독 중이었는데, 자크 데리다의 ‘차연(差延, Differance)’을 순우리말로 바꿔서 쓰고 싶었어요. 제 이름 ‘이듬’의 사전적 뜻은 ‘바로 다음의’ ‘다시, 거듭’이고 ‘두벌’이란 뜻도 있어요. 음…… 진흙을 초벌한 후 불에 두벌로 구우면 훨씬 단단해지잖아요. 아! 좀 복잡해지는데요, ‘차이’와 ‘지연’ ‘재생과 부활’을 함의한다는 개인적 궤변 같아지는데요. 첫 발상은 지금 현재만이 다가 아닌데…… 그럼 넥스트, 그 다음은 또 뭘까? 하는 허무적 실존주의 혹은 시간과 존재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어요.
■ 김명원: 앗, 이름에서부터 시인으로서의 두터운 사유가 폼 나는데요. (웃음) 본명 ‘향라’보다 필명 ‘이듬’이 훨씬 시인입니다. 필명을 제안한 『포에지』 편집부에 간접적인 작명비를 지불하셔야겠어요. (웃음) 선생님은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고 한 인터뷰 지면에서 읽었거든요. 처음으로 만난 책과 선생님께 영향을 준 책들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 김이듬: 처음으로 만난 책이름은 모르겠어요. 아마 읽을 수 없는 동화책을 장난감처럼 물고 빨았겠죠. 독서한다는 자의식을 갖고 읽기 시작한 건 책 한 권이 아니라 전집형태의 무더기였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는데 아버지가 계몽사에서 나온 50권짜리 빨간색 하드커버 전집을 사서 매일 한 권씩 읽고 검사받으라고 하셨거든요. 당시 아버지 친구 분이 책 외판을 하셨는데 이후로도 각종 전집이 거실 책장에 계속 꽂혔어요.
■ 김명원: 위대한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전집을 매일 한 권씩 읽고 검사받게 하는 아버지가 필요하다는 사실…… 확실해지네요. 게다가 전집형태의 무더기 책자 속에서 지냈다는 부분은 선생님 댁이 만만치 않은 부유층 가정이었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하고요. 깨알 자랑인가요? (웃음) 중고교 시절 문예부 활동을 하며 다수의 교내외 문학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글쓰기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요?
□ 김이듬: 여중 입학 후 문예부 활동을 시작했어요. 바둑반에 들어가려 했는데, 지원자가 없어 폐강되었거든요. 본격적으로 문예반 활동을 한 건 2학년 때, 도왕자(都王子) 선생님을 만난 후부터였어요. 도왕자 선생님은 방과 후에 저를 데리고 서점이나 중국집, 시내 제과점 등으로 다니길 좋아하셨지요. 수북하게 놓인 음식을 먹으며 무엇을 위하여 종은 울리는지,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은 왜 아름다운지, 데미안에게 싱클레어는 어떤 존재인지 등을 얘기했습니다. 로버트 푸로스트의 시, 괴테의 시, 같이 읽고 토론한 작품을 꼽으려면 너무 많아 줄일게요. 선생님은 이상할 정도로 저에게 많은 책과 선물, 시간을 내어주셨어요. 휴일엔 선생님 댁으로 부르셔서 선생님의 남편 정장웅 선생님의 서재에 있는 책들을 읽게 해주셨지요. 그때 헤겔, 마르크스도 읽었고 니체도 보았어요. 너무 일찍 본 것들이라 요즘 다시 읽곤 합니다만…… 시를 써서 선생님께 보여드리면 “넌 언젠가 위대한 시인이 될 거야.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면 나를 찾아와줄 거지?”라며 웃으셨어요.
■ 김명원: 노벨문학상에 비견할 순 없지만 ‘2014 올해의 좋은시상’도 큰상이니 이 김에 한번 도선생님을 찾아뵙는 것도 괜찮을 듯한데요. 노벨문학상 수상 전 예비방문이라고 할까요? (웃음) 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자 했던 동기와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며 국문학으로 전공을 바꾸신 이유가 알고 싶습니다.
□ 김이듬: 어릴 적부터 유럽 쪽 문학예술에 다소 편향되었던 것 같아요. 불문과를 갈까 독문학을 할까 고민하다가…… 특히 중·교교 시절에 좋아했던 작가나 사상가가 공교롭게 독일어권이 많았네요. 저의 새어머니가 집 가까운 대학 아니면 공장에 가라고 하셔서. (웃음) 대학원은…… 한국문학에 대한 체계적 공부가 창작에 도움이 될 줄 알았어요.
■ 김명원: 대학시절, 문학동아리 활동은 하셨나요? 그 시절, 추억의 목록에 남는 사건이 있었으면 소개 부탁드려요.
□ 김이듬: 부산대학교 문학동아리 ‘숨소리문학회’에서 활동했어요. 활동했다가보다 몇 번 합평회를 했는데 그때마다 선배들은 크게 싸웠고 후배인 우리들은 울었어요. 문학과 세계에 대한 인식 차이가 가장 큰 원인이었어요. 그 문학회가 해체될 즈음, 저는 동아리연합회 문화부차장으로 일해야 했어요. 우리 문학회에서 한 명 차출하게 되었는데, 당시 대자보 글씨체가 예쁘다는 이유로 하는 수 없이…… 학생회 일을 하면서 연애도 하고 휴학도 하고 야학도 했어요. 담배 피다 들켜 집에서 쫓겨나가도 했죠. 그 당시 시는 시시하고 시인은 폼이나 잡는 위선자들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시의 사각지대로 쫓겨나 노다지 시를 쪼고 싶었던
■ 김명원: 시인이 되겠다고 작정하신 동기는 있었나요?
□ 김이듬: 작정은 없었고…… 그런 건 운명이라고 하나? 어쩌다 구름을 볼 때, 냄비에서 김이 날 때, 제라늄을 살 때, 누군가 죽었을 때 등 문득문득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뭔가를 어찌할 수 없더군요. 어느 여름, 엄청난 폭우가 내린 후 강물 위로 나무뿌리며 세간이며 닭인지 버둥거리며 떠내려가는 걸 지켜보다가 묵묵히 집에 가서 써두었던 원고뭉치에서 몇 편 골랐어요. 비옷 속에 원고를 품고 우체국으로 가서 아무데나 투고한 게 처음으로 시인이 되려던 순간이었어요. 그 시들은 동아일보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랐다가 떨어졌고요.
■ 김명원: 좀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2001년 『포에지』를 통해 시인으로서의 행보가 시작되었는데요. 등단 준비는 어떻게 하셨는지요?
□ 김이듬: 등단 준비를 하지 못했어요. 무작정 뭔가 창조할 수 있다는 게 재밌어 혼자 쓰다가, 시도 산문도 아닌 것 같아 버리고 고통스러워하곤 했어요. 어쩌다 진주청년문학회 놀러갔다가 몇 번 모임을 가졌어요. 그런데 좀 더 혼자서 가파르게 있고 싶더라고요. 한동안 완벽한 정지 상태,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소화할 수 있는 천착(穿鑿)의 시기가 등단 준비였다면 준비였겠지요.
■ 김명원: 첫 시집 『별 모양의 얼룩』(천년의시작, 2005)의 ‘自序’에서 “16층 빌딩 옥상에 서서 흔들린다./ 누군가 바람이 불어 해가 진다고 말한다./ 버려진 아이들, 갇힌 동물들과 病중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울어주지 못했다.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이라고 위태로운 내면 고백을 하면서 소외된 타자들을 언급하셨지요. 이는 선생님께서 세상을 향하는 화자의 지점을 가리키고 있는데요. 선생님은 이렇게 “사라지는 것, 도주하는 것들에의 편애”(「호수의 백일몽」)가 있으신가요?
□ 김이듬: 예! 그렇습니다. 저는 그들과 동반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게 어떤 필연처럼 느껴집니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꿈을 시는 실현하려고 작동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저는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그들을 부릅니다. 그들은 대부분 어둑어둑해진 제 마음 언저리에 닿은 부랑아 같고 쫓겨 다니는 도망자 같아요. 거기엔 우리가 혐오하는 사물들이(피, 고름, 오줌, 썩은 내장, 쓰레기, 오물 등) 산처럼 쌓여 흘러넘치죠. 무엇보다 ‘나’라는 사회적 인간이 거부하고 추방한 ‘타자로서의 나’도 포함됩니다. 시를 쓸 때는 이들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오히려 그 소외되었던 목소리들이 시를 짓습니다. 어쩔 수 없는 그 순간에 희열을 느낍니다. 제가 쓴 좋은 시가 있다면 이렇게 타자 ‘되기’가 가능했던 시니까, 그런 시는 제가 쓴 게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폭동을 일으키며 전력투구 달아나는 이들이 쓰는 걸 겁니다. 혹은 그들과 불화하는 견고한 먹물, 속물화된 일상에 젖은 제가 그들과 싸우다 패배하여 시라는 소도(蘇塗, 小島)로 잠입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고요. 느닷없이 누군가 조각난 누더기를 입고 제 방문을 두드리듯 시가 올 때가 많아서요. 기쁜 맘으로 즐기고 노는 기분으로 시를 맞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비극적으로 참담한 기분으로 시를 낳기도 합니다. 실은 저도 제 시를 잘 모릅니다.
■ 김명원: 고집불통의 세계와 작란하거나 부당한 세상을 교란하고 있는 두 번째 시집 『명랑하라 팜 파탈』(문학과지성사, 2007)에서는 화자 자신의 오래 묵은 자의식과 낭패감 따위가 거침없는 성적 모티브로 연결되는데요. 선생님에게 있어서 에로티시즘은 시적 주제에 어떤 변주 효과로 삽입되나요?
□ 김이듬: 음…… 저는 거지 여자가 되었을지 몰라요.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모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렸어요. 그래서 노래에 시에 더 미쳤는지 모릅니다. 아직도 제 마음에는 미치광이 소녀가 제 콧물을 빨아먹으며 추운 언덕을 떠돌고 있어요. 이 소녀의 좌절과 분노가 일종의 무한한 은총으로 노래될 때가 올지도 모르죠. 이 어린 계집애가 시에 도달하기까지 에로티시즘은 황금빛 태양처럼 스며들 수밖에요.
길을 걷다 예정일 앞선 생리로 흠씬 적신 속옷 비너스 마네킹이 걸친 팬티를 벗겨 입고 그를 만난다 붉은 토마토 무늬 물컹한 씨앗 사타구니를 흐른다 갯냄새 찌든 해변 모텔 방들의 짠 신음 소리 삐걱이는 침대 위를 구르는 욕설, 욕설들 가까스로 먹은 정충을 토하며 생리 중에도 틀어 막히고 페니스로 봉인되어야 비로서 우울하지 않은 마네킹 같은
- 「봉인된 여자」 일부
삐죽삐죽 뻐드렁니가 튀어나온 안장 위에 다리를 벌리고 앉았다 손잡이를 뿌리치고/ 오르막길을 달려간다 페달을 돌리면서 살짝살짝 음핵을 비벼주는 게 자전거 타기의 묘미다/ (중략) / 달리다가 사과 꽃잎이 달려드는 동사무소 화장실에 엉덩이를 까고 앉아/ 젖은 신문의 펼쳐진 면을 거들떠보며 볼일을 봐야 하는 일이 생긴다/ 그때보다 지금 여기서 오줌을 누는 게 멋지겠다고 생각한다/ 싼다 정말이지 화장실이 급했다/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병원 가려면 한시라도 빨리 출발해야 한다/ 지린내 나는 안장을 뺀다/ 안장이 없는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지나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과 종탑을 아슬아슬/ 나는 폐수로 꽉 찬 구름의 상수관을 마구 달린다
- 「여드름투성이 안장(鞍裝)」 일부
더 추워지기 전에 바다로 나와
내 날개 아래 출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낡은 배로 가자
갑판 가득 매달려 시시덕거리던 연인들
물속으로 퐁당
물고기들은 몰려들지. 조금만 먹어볼래?
들리지? 내 목소리. 이리 따라와 넘어와 봐
너와 나 오래 입 맞추게
- 「세이렌의 노래」 전문
■ 김명원: 후회 될 만큼 솔직한 연애를 한 적이 있으신가요?
□ 김이듬: ‘말을 많이 하는’ 예술가를 싫어하는 편인데, 제가 그러고 있네요. 연애는…… 속성자체에 솔직성과 후회가 있겠죠. 매번 그렇게 합니다. 제가 먼저 다가가고 제가 더 깊이 더 오래 연애감정을 가지려는 편인데요, 요즘은 연애에 시큰둥하네요.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에게 마음이 가 있습니다. 아직 쓰지 않은 시에 마음이 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
푸른 수염의 마지막 여자
■ 김명원: 욕망과 중첩되거나 상반되는 반성의 자리에서 분출하고 있는, 실체 없는 강박증(가끔은 유령으로 등장)이 독자들을 어지럽게 한다고 수업 중 선생님 시에 대해 학생들이 토로합니다. 거침없는데다가 숨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비실존적 무정체성이 그들을 난독하게 하는가 봐요. 이승훈 선생님은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삶에 대한 그로테스크한 반응”이라고 하셨는데요. 두 번째 시집에서 세 번째 시집 『말할 수 없는 애인』(문학과지성사, 2011)으로 이어지는 고통스러운 병리적 현상은 대체 어디에서 동력을 얻는 것인가요?
□ 김이듬: 김명원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제 작품을 다뤄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슬픔이 발작적으로 간헐적으로 일어나듯이, 어떤 강박증도 그 어떤 울림도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동력을 찾긴 무리인 듯합니다. 삶 자체가, 그 근심과 찰나적 행복감들이 동력이라면 동력일까요? 언제든 삶 자체가 이 시대가 그로테스크하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거든요.
■ 김명원: 시집 이야기를 이어 갈게요. 네 번째 시집 『베를린, 달렘의 노래』(서정시학, 2013)는 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파견 작가로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한 학기를 보낸 체험담을 담고 있지요. 거주지였던 달렘도르프는 베를린 주변에 위치한 곳이었나요. 그곳에 대한 지우지 못할 인상이 남아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요? 그리고 시집에 등장인물들이 많던데요. 그곳에서 만난 혹독한 사람은요?
□ 김이듬: 달렘도르프는 베를린자유대학이 있는 동네 이름입니다. 저는 거기서 남서쪽으로 꽤 떨어진 변두리 지역, 슐라흐텐 호숫가에 살았고요. 학과에서 빌려준 자전거로 통근하기도 했어요. ‘지우지 못할 인상’이라면 거의 다입니다. 그래서 시집으로 남겼는데, 그러고도 눈을 감으면 옆집 사람들의 미소, 집시들과 개, 호수에서 수영할 때 내 곁에서 헤엄치던 오리떼 소리, 타할레스의 지질한 예술가와 잡동사니들, 파독 간호사·광부로 가셨던 한국인들, 수없이 다양한 것들이 선연하게 떠올라요. 혹독한 사람은 없었어요. 다들 독특한 개성이 있었으니까요. 학과 프로젝트에 참여하던 한 한국인 연구원은 한국에서의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견딜 수 없어 떠나왔다고 했어요. 베를린의 현재 시장이 커밍아웃한 게이라는 점을 봐도 알 수 있듯 베를린은 특별하죠. 찰스 다윈에게 갈라파고스 섬이 있었다면, 저에게는 베를린이 있었다고나 할까요? 거기 머물렀던 몇 달간 생명의 뿌리와 유전성, 혼혈, 나아가 시의 혼종성 등을 깊이 생각해본 시간이었으니까요.
■ 김명원: 한 마디로 깊은 시간이었군요. 선생님 인생에, 시에, 각별한 서표로 끼워지겠네요. 이 시집에 와서 화자는 누구에게나 편안한 의자를 내어주는 보편적인 인물이 됩니다. 까다롭던 화자가 친절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랄까요? 왜 이런 변화 양상이 있었을까요?
□ 김이듬: 『베를린, 달렘의 노래』에서의 화자가 보편적인 인물인가요? 그건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아름다운 노래들은 보편적으로 익명적이죠. 까뮈가 그랬죠. 좋은 시는 익명성을 확보하면서도 추해지지 않는 신비가 있다고요.
베를린에 갈 때부터 가장 단조롭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려는 의도가 있었어요. 당분간 시나 한국문단을 생각하기 싫었어요. 실제로 그 대학에서 몇 차례의 강의 외에는 자유롭고 단순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저절로 완전한 성실성이 나오더군요. 칸트처럼 시간을 엄수하여 산책하고 출근할 필요 없는데 출근해서 학생들과 얘기 나누고 원서강독도 했어요. 이상하게 도서관이나 들락거리며 근검절약, 금욕하는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어요.
시가 아니라 일기나 메모를 적는 습관의 변형이 시집으로 나오게 되었고요. 내가 잠시 살았던 그 장소와 시간, 나를 둘러쌌던 그 모든 냄새와 스쳤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었지요. 한편으로는 작품을 씀으로써 그 세계와 하나의 작별을 마무리 짓게 되는 것 같아요.
■ 김명원: 허수경 시인께서 시집 발문을 썼더라고요. 시 「월계수」에서 보면, “뮌스터에 사는 허수경 선생한테 얹혀 먹고 잔 며칠/ 월계수 잎이 든 음식을 배불리 먹은 일”이 소개되던데요. 허수경 시인과의 독일에서의 만남을 스케치해 줄 수 있으세요?
□ 김이듬: 독일 뮌스터 역에 도착한 기차 창문으로 허수경 선생님을 보았어요. 검은 외투 밤색 목도리 사이로 목을 쑥 뺀 채 두리번거리고 계셨어요. 마치 식구를 기다리듯 열심히요. 저는 울컥 나오는 눈물을 쓱쓱 닦은 후 선생님을 뒤에서 안으려고 조심스레 다가갔죠. 깜짝 놀라게 해드리려고요. 워낙 직관이 빠른 분이라 먼저 제 손을 잡으시곤 “어이쿠, 배고픈 것 같네. 얼른 밥 먹으러 가자”고 제 뱃속까지 들여다보셨어요.
괴테스트리트에 있는 선생님 댁에 2박 3일간 머물며 뮌스터랑 알텐베르크 구경도 하고 함께 장을 봐 요리도 하고 르네 선생님(허수경 선생님 남편)과 함께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값비싼 와인도 실컷 마셨어요. 화원에 들러 방울토마토 묘목도 샀어요. 밤늦도록 수다 떨고 독일 음악도 꽤나 들었어요. 며칠 더 놀다가라며 어찌나 잡으시던지……
제가 떠나던 날, 일어나보니 선생님은 새벽부터 깨어 밑반찬이 가득 든 4단 찬합과 기차에서 먹을 도시락을 챙기고 계셨어요. 주방엔 쇠고기장조림 냄새가 가득했어요. 여기 다 말할 순 없네요. 시집 속 「도시락」과 「손수건 나무-르네 선생님께」 등의 시를 읽어보시면 다른 만남 장면이 떠오르실 거예요.
인형극을 전공한 이애랑은 유학 와서 독일 청년과 결혼했다 노이퀼른가에 사는 그 부부는 가난하지만 접시와 옷장을 따로 쓴다 정치학을 전공하는 박수진은 여기서 십 년 넘게 유학 중이다 수녀원 기숙사에 살고 있고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는 희귀병과 싸우고 있다 침대 머리맡에는 내일도 깨어나게 해 주소서 내가 꿀밤을 먹였지만 쪽지에 쓰인 한국말이 간절하다 우리는 또래고 수진이 가장 밝다 쿠담 거리에서 브란덴부르크까지 심야의 베를린을 걸었다 나의 귀국일은 모레다 우리는 토라진 사람들처럼 말이 없고 함께 드레스덴에 가지 못했다 나보다 훨씬 가난한 여자들이 나를 위해 곰 인형을 샀다 아마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싱거운 소리를 하다가 가을이 오면 같은 유행가를 큰소리로 부르는 거 그들이 읽어주는 시를 듣고 인상 쓰는 거 울지 않고 포옹하는 거 먼저 뒷모습을 보여주는 거 돌아와서 불을 켜고 더 깊이 외로울 거
- 「태양이 머무는 곳」 전문
취향의 발견
■ 김명원: 누구와 어울리세요? 『베를린, 달렘의 노래』 의 ‘시인의 말’을 보면 ‘긴 장마에 불러보는 그리운 이름’들이 꽤 되는데요. ‘이은정, 베르너, 김은희’에서 시작하여 ‘한정화’에 이르기까지요. 그분들과는 어떤 인연인가요? 그리운 사람들과 만나는 때는 언제인지, 그리고 만나면 뭐하며 노시는지 궁금하네요.
□ 김이듬: 『베를린, 달렘의 노래』 ‘시인의 말’에 쓴 이름들은 베를린에서 한 학기 간 살며 만났던 선생님들과 친구들 이름이에요. 제가 정확한 언급을 못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누구냐 묻곤 해요. (웃음)
같이 노는 사람들은 그때그때 다른데요.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 직장 동료나 가족, 학생들도 있죠. 문인들과는…… 글쎄요. 시 동인 제안을 거절한 이후, 특별한 문단모임은 없습니다. 아! 작년 말에 처음 모인 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모임을 갖자고 한 김수이(비평가), 이원(시인) 등이 있고요. 연초에 ‘사이’ 강의 후 조재룡(비평가), 황병승(시인), 백은선(시인)과 함께 재밌게 술 마셨어요. 근 10년 전, 첫 시집을 낼 즈음 친해진 박판식, 박상수, 채상우, 김록 시인에게는 미지근하게 오래 가는 우정이 있어요. 아주 가끔 만나는데, 지난주 만났을 때도 보통 친구들이 놀듯 마냥 그렇게 놀았어요. 식상하게 편하게요. 밥 먹고 차 마시고 산책하고…… 기껏 다른 점이라면 같이 헌책방에 가서 서로에게 상대가 별로 안 좋아하는 책들을 선물하는 것 정도네요.
■ 김명원: 선생님 시에서 보면, 은근 술을 즐기시는 듯하던데요. 예를 들어 「도플갱어」에서 “나는 슬리퍼를 끌고 편의점에서 술을 사는 한밤중 바코드의 사람”이나 「날마다 설날」에서 “올해는 술을 줄이고 운동을 하리// 마실 수 있는 데까지 마셔보자고 다시 쓴다”고 기술하셔서요. 자신을 방기하며 술을 마시게 될 때가 있나요? 잔혹한 취기에서 깨어나는 때에 맞닥뜨리는 상념은요?
□ 김이듬: 술 잘 마시게 생겼다고들 하시던데요. 그 기준이 뭔지 궁금한데 아직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못했네요. 체질적으로 술에 약해서 몇 잔 마시면 진상 보이고 쓰러집니다. 음주실력 늘리려고 조금씩 자주 마시고 있습니다. 진탕 마셔본 기억이 별로 없어요. 언젠가 한번 엄청나게 마신 후 잔혹한 취기에서 깨어나면 알려 드릴게요. 그때 맞닥뜨리는 상념을 말씀드리지요.
■ 김명원: 그때 맞닥뜨리는 상념을 들어야하니 다시 한 번의 새로운 인터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말하자면 ‘김이듬 시인과의 대담-속편’이지요. (웃음) 이렇게 해서 선생님과의 또 다른 호흡을 예비할 수 있겠는데요. 질문 계속 드릴게요. 몽환적인 선생님 시에서 부유하다 보면 가끔 내가 어디에 있지? 주위를 둘러보게 되거든요. 현실에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생은 분리되어 있나요?
□ 김이듬: 내용과 형식처럼 분리될 수 없겠지요. 어떤 환상적인 시라고 해도 시인의 현실적 활주로를 달려 상상의 공간으로 날아올라야 아우라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러나 시와 시인이 등가적으로 합일해야한다고도 할 수 없어요. 최근 ‘정치적인 것과 시적인 것’ ‘시와 윤리’를 말하는 다수의 시인에게 왜 넌 노동현장에 있지 않느냐? 그렇게 낭만적인 시를 쓰느냐? 리얼리즘은 어디 가고 미학적 언어로 정치를 말하느냐? 그런 식으로 추궁할 수는 없잖아요. 언제나 시는 예술은 불행한 사건들과 공존해왔고 시인은 시를 쓰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갱신과 자기투쟁을 하고 있거든요. 시는 난잡한데 시인의 성품은 숭고하다든가, 시는 전통서정인데 시인은 힙합인디밴드 래퍼라든가 하는 그런 반전도 재밌을 것 같아요. 우리는 너무 엄숙하고 무겁게 시를 대하는 면이 있어요.
불안한 재미
■ 김명원: 선생님 시의 창작에 대한 궁금함입니다. 시가 만들어지는 때는요? 우흥寓興은요? 즉발적으로 시가 통째로 쓰여 지나요? 아니면 퇴고 등 논리적 여과장치를 거치게 되나요?
□ 김이듬: 논리보다는 감정이나 감각에 기우는 편입니다. 대부분은 처음부터 쭉 씁니다. 기본적으로 퇴고를 거칩니다. 간혹 퇴고하지 않은 시가 더 맘에 들기도 합니다. 어떤 시는 몇날 며칠가고 일 년이 흘러도 갈피를 못 잡는 경우도 있습니다. 흥분하여 잡고 있으면 말을 더듬는 시가 나와요.
■ 김명원: 그럴 리 없겠지만 시인을 반납해야 한다면, 부차적으로 어떤 생을 선택하실 건가요?
□ 김이듬: 천만다행 ‘시인 자격증’이나 ‘시인 면허증’을 받아본 적 없으니까 반납할 것도 없지요. 더 이상 쓸 수 없겠다 싶으면 그냥 안 쓰면 그만이지 않을까요? 많은 선배 시인들이 그렇게 했고요. 그러다가 다시 쓰고 싶으면 끄적끄적하면 되겠죠.
만약 시를 쓰지 않는다면, 손가락이 근질근질할 거예요. 그렇다고 망치나 운전대를 잡기도 그렇고 악기를 두드리기도 그러니, 펜을 쥐고 다른 뭔가를 쓰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장편소설을 한 권 냈지만 단편도 쓰고 싶고요. 시나리오 1편, 마당극 대본 1편을 써주기로 했는데 아직 전혀 못 쓰고 있거든요.
■ 김명원: 비만한 문화적 시민들이 창궐하는 2014년, 다변하는 다중체제의 혼성 속에서 시(시인)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 김이듬: 혼종성은 유일성의 하위개념은 아니라고 봅니다. ‘일즉다, 다일즉(一卽多, 多一卽)’의 형이상학을 논하지 않더라도 미물 속에 우주가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시가 해체되어 다른 장르, 다양한 문화에 나눠지더라도 근원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비를 맞아도 젖지 않는 존재 같은 거죠.
시(시인)의 역할은 ‘새롭게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그 능력이 바로 ‘자유’입니다.
■ 김명원: 시에서의 혁명적인 새로움이 있다면, 어떻게 추구되어야 할까요? 어떻게 언어를 변혁시킬 수 있을까요?
□ 김이듬: 실제로 최근 ‘아방가르드’ 시들은 ‘무의식적인 것’을 담보하거나 ‘전위성’을 소유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시에서의 혁명은 정치·사회적 혁명과는 다르고 ‘시를 도구로 정치를 바꾸겠다’는 말과도 다르고 시와 정치의 연대를 말하는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시의 혁명적인 새로움은 시(내부)의 혁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동시에 시적 언어의 혁명입니다. 언어 상징적 질서와 그 기술주의적 이데올로기들에 타격을 가하는 격렬한 언어, 시대를 파고들어 그 시대의 질서를 지배하는 논리에 반박하는 언어, ‘이것이 바로 시다’라고 합의한 문학담론에 질문을 퍼붓는 언어가 추구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말하는 코라(Chora)에서 일어나는 자유로운 충동 같은 거죠. 너무 진지하게 답변했나요? 질문들이 워낙 심오하여 힘듭니다. (웃음)
‘어떻게 언어를 변혁시킬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저도 답변이 무척 궁색합니다. 저도 열심히 궁리하며 모색하고 있거든요. 물질만능 사회에서 매일매일 조금씩 적응해가는 저에게 시가 묻습니다. 돈과 권위를 밝히려는 제게 “너, 뭐야?” 제가 쓰는 시가 제 삶을 방해하고 조정하고 기존체제와 싸우라고 물들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시가 시인을 전복합니다.
■ 김명원: 언어의 변혁을 열심히 궁리하며 모색하는 선생님 시에 주목해서 여러 평론가들이 “어지러운 상태와 정돈 상태의 겹치기”(황현산), “몽유의 형식과 착란의 언어”(이광호)이거나 “‘흔들리는 난민’으로 주체를 등록하기 위한 ‘자해’와 ‘헌정’의 몸짓”(최현식)등으로 해석하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적나라하게 투시해준 비평이 있었나요? 또는 해독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요?
□ 김이듬: 게으르고 무심한 면이 있어 평론들을 꼼꼼히 살펴보지 못했어요. ‘시인은 주사위놀이를 하다가 던져놓은 채 가는 자이고 비평가는 그 주사위 눈을 세어보는 자’라는 말을 어디서 본 듯도 한데요. 솔직히 그 많은 시인들 중에서 저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시집 해설이나 짤막한 비평이라도 해주시는 평론가분들에게 정말 감사하죠. 저는 그분들의 비평을 훑어보면서 ‘아! 내 시가 이렇구나. 이런 특징을 가졌네’ 하며 놀라는 순간이 허다해요. 해독 미진이 아니라 너무 파고들어 집요하게 분석하신 분들은 골치 아파요. 마주치면 발가벗은 것 같아,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어 피합니다.
이건 내가 쓴 시가 아니에요
대충 만년필로 휘갈긴 것도 있고
침 묻힌 몽당연필로 꾹꾹 눌러쓰고 빨간 밑줄을 그은 것도 있네요
나는 안경을 쓰고 세심하게 운문하지만
알아볼 수 없는 글자 때문에 제멋대로 몇 자 넣을 때도 있어요
간혹 자기소개서 대행업체 직원같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을 때도 있답니다
이 시는 내가 쓴 게 아닙니다
나는 혼자 피크닉을 떠났어요
바위에서 물이 쏟아지고 죽은 새의 깃털이 펄럭일 때
숲속의 가지 끝에서 누군가 웁니다
리본을 풀고 붉은 책을 펼칩니다
나는 당신을 만집니다
뺨의 체온 머리칼의 감촉
나는 당신을 다 꺼내놓을 수 없습니다
시럽에 빠트린 크래커를 건지듯
따듯한 틀 속의 쿠키를 꺼내듯
단지 나는 당신을 가지고 만든 책을 봅니다
당신은 키스로 봉한 편지처럼 오래된 노래
나를 봉하는데 실패한 사람
보석처럼 빛나는 유골
없는 발로 꾹꾹 눌러 쓴 책
단지 나는 당신을 여과라고 퇴고하고
나와 상관없이 흐르는 당신을 옮겨 적습니다
그러니 이 시는 내가 쓴 게 아닙니다
내 안에 침묵한 당신은 내 말의 시작
이 시의 끝이고 현재
- 「제가 쓴 시가 아닙니다」 전문
문학적이지 않은 죽음을 맞게 되길
■ 김명원: 전생에 선생님은 무엇이었을까요?
□ 김이듬: 물의 여신! 농담이고요. 물과 관련된 것이었을 듯합니다. 저는 마시는 물부터 빗물, 눈, 구름, 강물, 바다 다 좋아합니다. 목욕탕, 수영장, 욕조에 받은 물에서 노는 걸 너무나 좋아합니다. 물의 촉감과 물소리까지도요. 저의 등단작 중 한 편이 「욕조 a에서 달리는 욕조 A를 지나」인 걸 봐도 아시겠죠? 그러니 전생이 있었다면…… 아마 물장수였을까 싶네요. 북청 물장수요. (웃음)
■ 김명원: 이제 인터뷰가 거의 끝나 가네요. 인터뷰가 마무리 될 때쯤 묻게 되는 식상한, 혹은 순결한 질문이 있어요. ‘김이듬에게 있어서 시’란? 입니다.
□ 김이듬: 수시로 변하는데요…… ‘물의 여신’이 나온 김에 쭉 밀어붙여 ‘수호천사’라고 해두죠. 저에게 시는 악마, 절름발이, 소수자, 추방자, 죽은 자의 모습을 한 수호천사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언제나 저를 둘러싸고 ‘살아있으라’고 주문을 외죠. 타협과 안락을 방해하지만 엄마가 떠났을 때, 한겨울 태종대 자살바위에 섰을 때, 사랑할 때, 경쟁심에 불탈 때, 아플 때, 더 가지려 할 때, 자잘하고 사소한 일에도 보이지 않게 개입해요. 시가 있어서 폐쇄적 자아의 문을 활짝 열게 되었고 소리쳐 타자를 호명하며 세계의 폐부를 쳐다하게 되었죠. 누군가와 깊은 대화도 나누고요. 신비한 자유죠. 한번 뵙고 싶었던 김명원 시인님과 만나는 오늘처럼요.
■ 김명원: 앞으로 어떤 시인의 삶이 펼쳐질 것 같으세요? 더불어 질문 하나를 보태서, 후생에는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 김이듬: 좋은 구두가 아가씨를 좋은 데로 데려간다는 말이 있죠? 시인의 삶은 시가 데려가는 것 같아요. 시라는 빨간 구두가 벗겨지지 않는 한 멈추지 않는 춤추는 언어로 어딘가로 가겠죠. 거기가 어딘지 안다면 재미없죠. 그리고 후생에는 흑인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영화 ‘오스카 그랜트의 어느 하루’에서의 오스카 입장을 저는 겪어보지 않았으니, 다음 생애라도. 또 음…… 제가 재즈에 빠졌다가 삼 년 전부터 힙합을 주로 듣고 있는데요. 흑인들의 음악은 뼛속까지 다른 것 같아요. 우월하고 멋져요. 다음 생이 있다면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노래하며 허리를 흔드는 저에게 마주보고 싱긋 웃어주세요.
김이듬 시인은 시 「보시니 좋더라」에서 “나에 관해 알고 싶지도 않겠지만, 유치하고 멍청하게 나는 씁니다. 이럴 때 나는 제법 아름다워요. 챙 큰 모자를 쓴 노출증 시인처럼 지껄입니다. 나는 가혹하게 해줘야 겨우 자라는 식물, 거리 청소부도 본 적 없는 포스터, 비난으로 가득 찬 전화, 심심풀이로 그린 자화상, 전혀 나와 다르거나 닮을 생각조차 없는”에 이어 “이런 거짓말이 진심이라는 우연한 생각”이라고 자신을 묘파해간다. 나는 그녀가 시인으로 사랑하고 시인으로 사는 시 사이에서, 세상과 입 맞추고 시로 깨지는 균열의 바닥에서, 인터뷰를 위해 비집고 나와 얼마나 힘겹고도 진솔하게 자신을 이 지면에 담았을까를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주억거린다.
거친 질문지에 대한 충실充實한 답변을 시인에게서 받고, 나는 메일 답신을 쓴다. 사족을 더하지 않으려고 간명하게 “선생님, 감사를!”이라고 쓴다. 그리고 완성한 대담 원고를 함께 보낸다. 금방 다시 시인으로부터 메일을 받는다. “친애하는 김명원 선생님!”으로 시작하는 편지는 다감하다. “잘 읽었습니다. 다시 객관적인 눈으로 보니 가감하고 싶은 부분과 흠이 자꾸 보이나, 문장은 완결하는 게 아니라 멈추는 것이라는 본느프와의 말에 기대어 이만하면 되었다고 봅니다. 특히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새로 만들어지니, 글에 시공간적 안정감이 생깁니다. 중간 중간 시를 삽입해주시니 전체적으로 우아한 건축물이 생긴 것 같아요. 감사하다는 말 이상의 말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만, 오늘은요. 늦어도 춘삼월엔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나는 이 부분에서 그녀에게 마음을 왈칵 쏟는다. 시인이 시보다 넘치는 경우를 준비 없이 만나 감격한다. 그녀가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나의 충분한 고백이다.
우린 아마도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날 것이다. 만나서 숨차게 반가울 것이다. 십년을 함께 살아온 나무들처럼, 백년을 함께 날아갈 새떼들처럼…… 진주에 사는 시인과 대전에 사는 내가 아주 가깝게 만나 어제의 일상을 꺼내고, 오늘의 반짝임을 담고, 내일의 그리움을 만들 것이다. 그날이 겨울의 끄트머리였으면 좋겠고, 함박눈이 퍼부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그러기라도 하다면, 시인의 그윽한 눈매와 나의 천박한 감수성을 타서 한 잔의 차로 나누어 마시며 오래오래 함박눈의 시간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그날을 기쁘게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