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의 <헤이 주드>(Hey Jude·1968)의 노랫말은 폴 매카트니가 썼다. 무리해서 요약하자면, ‘주드, 힘을 내서 그녀를 받아들이고 새출발해’ 정도가 된다. 이 노래의 속뜻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게 ‘헤이, 줄리앙’설이다. 존 레넌이 전처와 이혼하고 오노 요코와 재혼할 무렵, 존의 아들 줄리앙과 가깝게 지낸 폴이 그 소년이 겪고 있을 혼란을 다독이기 위해 썼다는 것. 이 경우 ‘그녀’는 ‘새엄마’다. 덜 유력한 것은 ‘헤이, 존’설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존은 이 노래의 수신자가 자신이라고 밝혔다. 폴이 존에게,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녀(오노 요코)와 잘 해보라고 격려하는 노래였다는 것이다. 이 경우 ‘그녀’는 ‘두 번째 아내’가 된다. 나는 최근에 또 다른 설을 접했다.
“Hey Jude, don’t make it bad 주드(시민 여러분), 비관하지 말아요/ 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 슬픈 노래를(현실을) 더 낫게 만들면 되잖아요/ Remember to let her into your heart 그녀를(김진숙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여요/ Then you can start to make it better 그러면 당신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Hey, Jude, don’t be afraid 주드(시민 여러분), 두려워 마요/ You were made to go out and get her 당신은 나가서 그녀를(김진숙을) 구하도록 운명 지어졌으니까요/ The minute you let her under your skin 당신이 그녀를(김진숙을) 잊지 않는 순간부터/ Then you begin to make it better 당신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심보선이 <현대문학> 8월호에 발표한 시 ‘헤이 주드’의 도입부다. 원곡의 노랫말을 한 문장씩 적고, 거기에 자신의 해석을 한 줄씩 보탰다. 이 시인에 따르면, 저 ‘그녀’는 줄리앙 레넌의 새엄마이자 존 레넌의 두 번째 부인인 오노 요코가 아니라, 한진중공업사 쪽이 일방적으로 단행한 정리해고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40m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을 가리킨다. 시인 심보선은 비틀스의 1968년 곡의 노랫말을 2011년의 현실에 맞게 의역하고 이를 ‘시’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어리둥절할 정도로 직설적이어서 되레 신선해진 이 '문학적 실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And any time you feel the pain, Hey Jude, refrain 그리고 아픔을 느끼게 되면, 주드(시민 여러분), 참지 말아요/ Don’t carry the world upon your shoulders 혼자서 어깨 위에 세상을 짊어지고 가지 마세요/ For well you know that it’s a fool who plays it cool 잘 알잖아요, 바보들이나 쿨한 척하면서/ By making his world a little colder 세상을 더 차가운 곳으로 만든다는 것을요/ Hey, Jude! don’t let me down 주드(시민 여러분)! 저를 실망시키지 말아주세요/ You have found her now go and get her 그녀를(김진숙을) 찾았으니, 이제 가서 구해주어요/ Remember to let her into your heart 그녀를(김진숙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여요/ Then you can start to make it better 그러면 당신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수없이 들은 노래다. 그러나 이 시를 읽고 다시 들어본 이 곡은 마치 처음인 듯 마음을 흔들었다. 이 노래에 어떤 ‘간절한 낙천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후반부에서 ‘better’를 여섯 번 반복하고 4분 넘게 ‘나나나’를 외치는 이유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Hey Jude’(1행)가 ‘Hey, Jude’(5행)를 거쳐 ‘Hey, Jude!’(13행)로 바뀌는 장면은 문장부호만으로 희망의 점층법을 구현한 사례다. 이 의역의 설득력과 호소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없던 것을 인위적으로 덮어씌운 것이 아니라 잠재된 어떤 것을 끌어낸 것이었다.
비틀스를 기리는 진정한 길은 비틀스라는 신전에서는 돌 하나도 옮기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비틀스의 정신을 달리 ‘반복’하는 데 있다고 믿는 팬들은 이 의역을 지지하리라. 비틀스와 심보선이 함께 쓴 시의 후반부를 마저 적는다. “You’re waiting for someone to perform with 당신은 함께 실천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잖아요/ And don’t you know that it’s just you, hey, Jude 잘 알잖아요, 그 기다리던 사람이 바로 당신 자신이라는 것을, 주드(시민 여러분)/ you’ll do, the movement you need is on your shoulder 당신은 실천할 거예요, 필요한 행동은 당신에게 달려 있어요.”
헤이 주드 / 심보선
Hey Jude, dont make it bad
주드(시민 여러분), 비관하지 말아요
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
슬픈 노래를(현실을) 더 낫게 만들면 되잖아요
Remember to let her into your heart
그녀를(김진숙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여요
Then you can start to make it better
그러면 당신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Hey Jude, dont be afraid
주드(시민 여러분), 두려워 마요
You were made to go out and get her
당신은 나가서 그녀를(김진숙을) 구하도록 운명 지어졌으니까요
The minute you let her under your skin
당신이 그녀를(김진숙을) 잊지 않는 순간부터
Then you begin to make it better
당신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And anytime you feel the pain, hey Jude, refrain
그리고 아픔을 느끼게 되면, 주드(시민 여러분), 참지 말아요
Don't carry the world upon your shoulders
혼자서 어깨 위에 세상을 짊어지고 가지 마세요
For well you know that it's a fool who plays it cool
잘 알잖아요, 바보들이나 쿨한 척하면서
By making his world a little colder
세상을 더 차가운 곳으로 만든다는 것을요
Hey, Jude! Don't let me down
주드(시민 여러분)! 저를 실망시키지 말아 주세요
You have found her, now go and get her
그녀를(김진숙을) 찾았으니, 이제 가서 구해주어요
Remember to let her into your heart
그녀를(김진숙을) 마음속 깊이 받아들여요
Then you can start to make it better
그러면 당신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거예요
So let it out and let it in, hey Jude, begin
이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어요, 주드(시민 여러분), 시작하세요
You're waiting for someone to perform with
당신은 함께 실천할 사람을 기다리고 있잖아요
And don't you know that it's just you, hey Jude,
잘 알잖아요, 그 기다리던 사람이 바로 당신 자신이라는 것을, 주드(시민 여러분)
You'll do, the movement you need is on your shoulder
당신은 실천할 거예요, 필요한 행동은 당신에게 달려 있어요
Hey, Jude, dont make it bad
주드(시민 여러분), 비관하지 마세요
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
슬픈 노래를(현실을) 더 낫게 만들면 되잖아요
Remember to let her under your skin
그녀를(김진숙을) 언제나 마음 깊이 기억해 주세요
Then you'll begin to make it better
그러면 당신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Better, Better, Better, Better, Better, Waaa!!
더 나은, 더 나은, 더 나은, 더 나은, 세사아아앙!!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은 2011년 1월 6일부터 한진중공업 사측이 일방적으로 단행한 170명의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를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40미터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 중이다. 6월 11일, 7월 9일, 7월 30일 '희망버스'를 탄 전국 각지의 시민들은 한진노조원들과 김진숙 위원의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부산으로 향했다. The Beatles의 'Hey Jude'를 이와 같은 상황에 비추어 의역해 보았다.
<현대문학>(2011년 8월호)
‘아베(Ave) 근혜’를 / 심보선
1999년 가을 뉴욕의 브루클린박물관은 특별전시를 개최했다. 그런데 전시에 소개된 한 작품이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작품 제목은 ‘성 동정녀 마리아’(The Holy Virgin Mary)였다. YBA(Young British Artists)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명인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의 회화작품으로, 동정녀 마리아를 흑인으로 묘사하고 그림 위에 실제 코끼리의 똥 덩어리들을 붙인 것이었다.
당시 뉴욕의 줄리아니(R. Giuliani) 시장은 이 작품을 신성모독으로 규정하고 작품을 철거하지 않을 경우 시 정부가 브루클린박물관에 지원하는 70억원 상당의 연간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박물관 측에 엄포를 놓았다. 이에 박물관장과 이사진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며 반발하였다(예산을 삭감당할 순 없으니 시장 말에 따르자는 내부 의견도 없지 않았다). 이 사건은 법원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법원은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박물관의 편을 들었다. 뉴욕시는 작품을 그대로 설치하게 하고 예산안을 삭감하지 말라는 법원의 권고를 수용해야 했다.
뉴욕과 광주, 닮은 듯 다른 예술의 자리
이 이야기는 ‘꼴통 보수’에 대해 ‘예술적 표현의 자유’가 거둔 승리담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당시 ‘쎈세이션’(Sensation)이라는 제목이 붙었던 특별전은 세계 각지를 순회하는 제법 큰 규모의 전시였다. 전시 자체가 쎈세이션을 의도한 것이었으니 줄리아니 시장의 성난 반응은 오히려 그 노림수가 맞아떨어지는 데 기여한 셈이었다. 덕분에 줄리아니를 옹호하고 전시를 반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라는 궁금증을 가진 수많은 관객이 박물관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후 브루클린박물관과 크리스 오필리의 주가는 올라갔다. 반면 줄리아니 시장도 잃은 것이 없었다. 민주당 지지자가 다수인 뉴욕에서 줄리아니 시장의 무식하고도 호기로운 싸움은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살아 있네, 보수!’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최근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에서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작품이 박근혜 대통령을 신랄하게 풍자했다는 이유로 전시가 무산된 사태를 보면서 나는 뉴욕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언론에 따르면 광주시는 정부에 신청한 일반 예산에 <세월오월>이 악영향을 미칠까봐 전시를 불허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두 사건의 유사한 점은 이런 것이다. 이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이 직접적인 정치적 탄압이 아니라 예산 삭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 비록 시차가 있으나 이 두 사건은 미술계가 거대 예산으로 운영되는 규모의 경제에 종속돼버린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몇가지 중요한 차이도 있다. 첫째, 중앙정부의 예산삭감 위협이 실제로 광주비엔날레 측에 가해지지 않았다는 사실. 오히려 중앙정부가 작품을 문제 삼아 예산삭감을 감행했을 때, 중앙정부에 맞서서 싸워야 할 당사자들(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 재단)이 되려 ‘두려움에 떨며 알아서 기는’ 식으로 작품의 전시를 막았다는 사실. 둘째, 어떤 조직과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의 ‘성모 마리아’는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사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풍자는 성모 마리아 그림에 똥칠을 하는 신성모독과 같은 행위로 여겨진다는 사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이교도’들도 그 사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는 사실.
이 유사점과 차이점이 합쳐져서 이번 광주비엔날레 사건이 벌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이 사건은 “‘아베(Ave) 근혜’를 외치는 교단에 경제적으로 철저하게 예속된 이교도들이 거대 예산의 예술 행사를 실행하고자 할 때, 예술의 유구한 전통 중 하나인 풍자조차 허용할 수 없는 자기기만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에 초청된 국내외의 많은 예술가들은 이러한 자기기만에 동참할 수 없다며 참여 거부의사를 표명했다. 이미 “광주비엔날레 파행”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넘쳐나고 있다.
남은 것은 오직 찬송뿐
흥미롭게도 올해 20주년을 맞은 2014년 광주비엔날레의 슬로건은 “터전을 불태우라(Burning down the House)”이다. 영어 제목에 들어간 단어, ‘the house’에 포함된 여러 정의 중 하나는 “종교집단이 거주하는 장소”라고 한다. 이 얼마나 신성모독적인가! 그러나 이제 이런 해석도 가능하겠다. 이번 사건에서 광주가 불태운 것은 정작 자기네 집이 아닌가! 자기기만을 넘어서 자기파괴로까지 나아갔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1999년 뉴욕에선 시장논리에 종속된 예술집단과 정치논리에 종속된 관료집단이 모두 승리했다. 반면 2014년 광주에서 예술가들은 전시 기회를 상실했고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정당성을 상실했다.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했다.
사태는 달리 진행될 수 있었다. 홍성담 작가의 작품은 전시될 수 있었다. 우리는 광주에서 민중미술의 당대적 가치를 토론할 수 있었고, 신성모독과 풍자의 유효성을 토론할 수 있었고, 우리가 불태우려 하는 집이 과연 누구네 집인가 토론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시와 재단은 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싸움에 같은 편으로 연대할 지원군들(예술가들과 시민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뉴욕의 윈윈게임과는 다른 종류의 광주 투쟁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귀 기울여보라. 지금 빛고을 한 구석에서 ‘아베(Ave) 근혜’의 찬송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잘 들여다보라. 그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의 표정은 참으로 그로테스크하게 일그러져 있다.
심보선 / 시인, 사회학자
2014.9.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