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에서 / 김영승
작은 새 한 마리가 또 내 곁을 떠났다.
나는 그 새가 앉았던 빈 가지에
날아가 버린 그 새를 앉혀 놓았다.
많은 사람이 내 곁을 떠났다.
떠나간 사람
죽은 사람
나는 아직도 그들이 앉았던 빈자리에
그들을 앉혀 놓고 있다.
그들이 없는 텅빈 거리를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말없이 걷는다
거리는 조용하지만
떠들썩하다.
그들이 웃으며 나를 부르고 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 곁을
내가 떠나게 되었을 때
내가 없는 술집 그 구석진 자리에
나를 앉혀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작은 새 한 마리가
아직도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시집 『아름다운 폐인』(미학사, 1991) 중에서
아름다운 폐인 / 김영승
나는 폐인입니다
세상이 아직 좋아서
나같은 놈을 살게 내버려 둡니다
착하디 착한 나는
오히려 너무나 뛰어나기에 못미치는 나를
그 놀랍도록 아름다운 나를
그리하여 온통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나를
살아가게 합니다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자신 있게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슬픈 사람일 뿐이지만
그렇지만 나는 갖다 버려도
주워 갈 사람 없는 폐인입니다.
시집 『아름다운 폐인』(미학사, 199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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