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사진첩>

미송 2025. 9. 25. 13:41

 

가족 중에서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한때 일어난 일은 그저 그뿐신화로 남겨질 만한 건 아무것도 없다
로미오는 결핵으로 사망했고줄리엣은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났다
어떤 사람들은 늙어빠진 노년이 될 때까지 오래오래 살아남았다
눈물로 얼룩진 편지에 답장이 없다는 이유로
이승을 등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지막에는 코에 안경을 걸치고장미 꽃다발을 든
평범한 이웃 남자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정부의 남편이 갑자기 돌아와
고풍스러운 옷장 안에서 질식해 죽는 일도 없다
구두끈과 만틸라스커트의 주름 장식이
사진에 나오는 데 방해가 되는 일도 없다
아무도 영혼 속에 보스의 지옥을 품고 있지 않다
아무도 권총을 들고 정원으로 나가진 않는다

(어떤 이들은 두개골에 총알이 박혀 죽기도 했지만전혀 다른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야전 병원의 들것 위에서 사망했다)
심지어 무도회가 끝난 뒤 피로로 눈자위가 거무스레해진
저 황홀한 올림머리의 여인조차도
네가 아닌 댄스 파트너를 쫓아서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아무런 미련 없이
이 은판 사진이 탄생하기 전아주 오래전에 살았던 그 누군가라면 또 모를까
내가 아는 한 이 사진첩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사랑 때문에 죽은 이는 아무도 없다
슬픔이 웃음이 되어 터져 나올 때까지 하루하루 무심하게 세월은 흐르고,
그렇게 위안을 얻은 그들은 결국 감기에 걸려 죽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tawa Szymborska, 1923~2012)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와 프레데리크 쇼팽의 음악을 곱씹어 보았다. 폴란드라는 작은 나라가, 오랜 세월 외세의 침략과 분할 속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예술을 길러냈다는 사실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시 속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죽지 않는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극적 신화는 없고, 삶의 끝은 결핵이나 디프테리아, 감기처럼 평범한 이유로 찾아온다. 슬픔도, 눈물도, 웃음도 모두 평범한 하루 속에서 흘러가고, 아름답게 견디는 방법은 바로 이 평범함 속에 있다.

쇼팽의 녹턴과 마주르카가 전하는 그리움과 향수, 쉼보르스카의 담담하고 톡톡 튀는 문장 속 아이러니, 그 두 가지가 내 마음을 스치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준다. 삶과 죽음을 극적이지 않게, 자연스럽게, 그저 평범하게 맞이하며 견디는 것, 그 속에서 나는 웃고 울고 또 살아간다.

온갖 인생 역경 속에서, 나는 이 두 예술가에게 기대어 삶의 무게를 견디되, 아름답게 견디는 방식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나도, 그 평범한 하루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숨을 고르며 살아간다. 오늘 나는 속삭인다. “삶과 죽음 모두를 담담히, 그러나 충분히 아름답게 견디자.” 

 

20150220-20250925<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