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그녀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어. 내가 갑자기라고 말하는 건 그녀가 30년 넘게 휘파람을 불지 않았기 때문이지. 짜릿한 일이었어. 난 처음엔, 집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왔나 했어. 난 위층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그녀는 아래층에 있었지. 잡힌 게 아니라 스스로 날아든 새, 야생의 생기 넘치는 그 새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지저귀고 미끄러지고 되돌아오고 희롱하고 솟구치는 소리였어.
이윽고 내가 말했어. 당신이야? 당신이 휘파람 부는 거야? 응, 그녀가 대답했어. 나 아주 옛날에는 휘파람을 불었지. 지금 보니 아직 불 수 있었어. 그녀는 휘파람의 리듬에 맞추어 집 안을 돌아다녔어.
나는 그녀를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했어. 팔꿈치며 발목이며. 기분이며 욕망이며. 고통이며 장난끼며. 분노까지도. 헌신까지도.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기 시작하긴 한 걸까 내가 30년간 함께 살아온 이 사람은 누굴까
이 맑고 알 수 없고 사랑스러운, 휘파람 부는 사람은
"인간과 비인간,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 짓는 건 자세히 들여다보면 계층화하는 것이다. 내가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어느 순간 나를 쿡 찌르는 손길이다. 컴퍼스풀이 주름진 가지를 구부려 차가운 모래밭에 완벽한 원을 그릴 때나, 가을에 노란 말벌이 내 손목에 내려앉았다가 꿀 묻은 접시로 옮겨 갈 때, 내 몸을 관통하는 감사의 불꽃이다. " 시인의 말을 읽자니, 주름진 풀가지와 순한 말벌에게 감사의 입맞춤을 하고 싶다.
밥솥 벨소리가 휘파람처럼 들린 적 있다. 막 완성된 밥냄새가 코끝에 닿을때의 그 신비스러움은 이십 대 후반 오지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편지를 쓰던 때의 그 신선함과 흡사하였다. <오>
20170610-202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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