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심보선 <브라운이 브라운에게>

미송 2025. 8. 13. 12:07

 

불행은 오히려 적막에 가까워

적막은 침묵이 아니야

적막은 존재에 필요한 소리만 존재하는 상태야

모든 존재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났어

불행의 필연, 탄생과 죽음 사이를 직선으로 잇는

궤도에서 벗어난 모든 소리는 소음일 뿐이야

침묵조차도 소음일 뿐이야

 

 

그 누구도 내가 되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오직 나만이 나를 견뎌낼 수 있기에그토록 많은 것을 알고, 그토록 많은 것을 보았으나 그토록 아무것도, 아무 할 말이 없음이여. 'to be small and to stay small'  스위스 출신 로버트 발저의 문장이 멋지게 들려 데려와 본다 그것은 평생동안 자기 자신과 자신의 글을 최대한 작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의 상징적인 흔적이었다

 

서른 즈음에 썼던 <야콥 폰 쿤텐>이란 책에 나오는 문장이라는데, 청춘은 어디로 보냈기에 서른 즈음에 저런 사유를 다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서른 중반에 로버트 발저는 고향인 스위스의 빌로 돌아가 7년간 시간을 등진 목가적인 방랑자 생활을 하였다 한다그때 그는 섬세하게 써 내려간 보고서, 이야기 그리고 에세이 등을 남겼다 한다

 

시간을 등지다자신을 작게 만들다아무 할 말이 없다또 무엇이 있을까. 그러고 나면 또 무엇을 할까.

 

<산책자>라는 책도 만들었던 그는 78세까지 살았다목가적인 삶(상상컨대, 서른 중반 그의 목가적 삶은 거름더미를 헤치거나 염소젖을 짜는 농부의 모습이었을 것 같은데그리고 산책깊은 숲 희귀한 새들의 소리를 들으며 고독한 노를 젓던 그는 장수하였다. 그리고 다음의 삶이 그리고 이전의 삶 보다 괜찮았나 싶다.  19561225, 78세가 된 발저는 홀로 산책하다 눈 속에 묻혀 세상과 작별했다.  엔딩 크레딧같은 죽음.  

 

6년 만에 새 시집을 낸 시인의 인터넷 흔적을 보고 여기까지 걸었다더 그을린 시인의 얼굴그저 먹먹하고 적막하기까지 할 때 습관처럼 검색창에 두드려 보았던 시인.  엊그제 무심코 중얼거린 말, '탄생과 죽음 사이를 직선으로 잇는 궤도에서 벗어난 모든 소리는 소음일 뿐이야' 라는 말을 시인이 먼저 시집에 넣었다. 고맙다. <>

 

 

20171028-2025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