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예술가가 아니라 애술(酒)가라고 말하는 시인, 펜은 마른 땅 파들어 가는 삽, 묵은 논 갈아엎는 쟁기, 고랑타고 앉아 풀 매는 호미, 돌멩이에 날 찍혀 우는 쇠스랑, 이마에 한 톨 두 톨 돋는 땀, 경작의 노고보다 헐한 소출이라고 엄살 섞인 시를 쓸 줄 아는 시인이다. 나무와 풀들이 가동하여 돌리는 녹색 공장에서 봄을 불러오는 시인은 아름다운 자연의 직공이다. 시인이 없고 시가 없는 땅, 잎과 초록, 꽃불이 없는 산야는 얼마나 황폐하랴. 시여, 시인이여, 더 많이 술 마시고 사랑하고 그래서 얼굴빛 환해지는 봄을 만들어다오.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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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온 24도의 실내에서도 발이 시린 건 왜일까. 등허리로 바람 휭 올라오는 게 겁난다 던 녹색가게 손님 말에 '전 허벅지가 그래요' 했었는데, 겪자니 그 곳뿐이 아니다. 구석구석 안 가리고 침투하는 냉기란 녀석, 고 놈은 맘자리도 넘보고, 죽음도 넘보게 만들고, 그런다. 어쨌든, 춥다는 건 안 좋은 거. 머리 위로는 뜨거운 바람 입술 위로는 건조한 공기, 목구멍 속으로는 칼칼한 먼지. 정말 지겨워지는 순간이 겨울 안에 있다. 히터 바람 아래서도 저체온증을 견뎌야 하는 순간들, 독하게 버텨내야만 하는 순간들. 인간은 자연에 가까워질수록 가장 인간다워지듯이, 비탄의 숨결에 가까워질수록 비로소 봄도 주가가 올라가는 것은 아닐까. 암튼, 인간도 자연도 노동할 때가 곧 봄날. 그러니 움직이자! 그러기 위해 오늘은 게으른 시간을 즐기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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