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박용하 <지구>

미송 2016. 3. 12. 00:29

 

 

 

 

지구 / 박 용 하

 

달 호텔에서 지구를 보면 우편엽서 한 장 같다. 나뭇잎 한 장 같다. 훅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저 별이 아직은 은하계의 오아시스인 모양이다. 우주의 샘물인 모양이다.

 

지구 여관에 깃들어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만원이다. 방이 없어 떠나는 새· 나무· 파도· 두꺼비· 호랑이· 표범·

돌고래· 청개구리· 콩새· 사탕단풍나무· 바람꽃· 무지개· 우렁이· 가재· 반딧불이…… 많기도 하다.

 

달 호텔 테라스에서 턱을 괴고 쳐다본 지구는 쓸 수 있는 말만 적을 수 있는 엽서 한 잎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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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스토리로 봐도 좋을 화엄경은 석가모니불의 '깨달음의 상태(正覺)'에서 출발한다. 지구 출신의 붓다가 우주로 올라가 강력한 빛의 시그널로 설법을 하였다는데. 깨달음의 절정에 이른 순간 인간의 불타가 빛의 불타로 변신하여 석가불로부터 유체 이탈한 비로자나불이 지구 위 허공에 머물자, 온 우주에서 몰려온 보살군단이 이 극적인 상황에 참여하면서 화엄경의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데. 언어가 아닌 정신감응(텔레파시)으로 말이지.....

 

픽션을 타고난 인간이 집단적 허구인 객관물을 지구로 놓고 바라보는 장면이 흥미롭다. 달 호텔에서 내려다 본 지구에는 여관으로 가득하다. 호텔 대 여관이라..그나마 여관방엔 사람들로만 그득하여서, 어울려 살아야 할 자연이나 동물들은 모두 떠나갔다니, 엽서 한 잎 같은 지구라는 표현이 어울릴만 하다. 인간들의 욕망에 점점 반비례하는 지구의 크기, 그 보잘 것 없음의 비애로움을 누가 막을까나.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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