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정약용 <나를 지키는 집>

미송 2017. 3. 14. 22:50

 

 

 

 

나를 지키는 집 / 茶山정약용

 

 

수오재(守吾齊), 나를 지키는 집은 큰형님이 자신의 서재에 붙인 이름이다. 나는 처음 그 이름을 보고 의아하게 여기며, “나와 단단히 맺어져 서로 떠날 수 없기로는 보다 더한 게 없다. 비록 지키지 않는다 한들 가 어디로 갈 것인가. 이상한 이름이다라고 생각했다. 장기로 귀향 온 이후 나는 홀로 지내며 생각이 깊어졌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러한 의문점에 대해 환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하 만물 중에 지켜야 할 것은 오직 뿐이다. 내 밭을 지고 도망갈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니 밭은 지킬 필요가 없다. 내 집을 지고 달아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니 집은 지킬 필요가 없다.

 

내 동산의 꽃나무와 과실나무들을 뽑아갈 사람이 있겠는가? 나무뿌리는 땅속 깊이 박혀 있다. 내 책을 훔쳐 가서 없애버릴 수 있겠는가? 성현(聖賢)의 경전은 세상에 널리 퍼져 물과 불처럼 흔한데 누가 능히 없앨 수 있겠는가. 내 옷과 양식을 도둑질하여 나를 궁색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천하의 실이 모두 내 옷이 될 수 없고, 천하의 곡식이 모두 내 양식이 될 수 없다. 도둑이 비록 훔쳐 간다 한들 하나 둘에 불과할 터, 천하의 모든 옷과 곡식을 다 없앨 수는 없다. 따라서 천하만물 중에 꼭 지켜야만 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유독 이 라는 것은 그 성품이 달아나기를 잘하며 출입이 무상하다. 아주 친밀하게 붙어 있어 서로 배반하지 못할 것 같지만 잠시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가지 않는 곳이 없다. 이익으로 유혹하면 떠나가고, 위험과 재앙으로 겁을 주면 떠나가며, 질탕한 음악 소리만 들어도 떠나가고, 미인의 예쁜 얼굴과 요염한 자태만 보아도 떠나간다. 그런데 한번 떠나가면 돌아올 줄 몰라 붙잡아 만류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천하 만물 중에 잃어버리기 쉬운 것으로는 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니 꽁꽁 묶고 자물쇠로 잠가 를 굳게 지켜야하지 않겠는가?

 

나는 를 허투루 간수했다가 를 잃은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는 과거 시험을 좋게 여겨 그 공부에 빠져 있었던 것이 10년이다. 마침내 조정의 벼슬아치가 되어 사모관대에 비단 도포를 입고 백주 대로를 미친 듯 바쁘게 돌아다니며 12년을 보냈다. 그러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어 친척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 한강을 건너고 문경새재를 넘어 아득한 바닷가 대나무숲이 있는 곳에 이르러서야 멈추게 되었다. 이때 도 땀을 흘리고 숨을 몰아쉬며 허둥지둥 내 발뒤꿈치를 쫒아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나는 에게 말했다. ‘너는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가 여우나 도깨비에게 홀려서 왔는가? 바다의 신이 불러서 왔는가? 너의 가족과 이웃이 시내에 있는데 어째서 그 본 고장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그러나 는 멍하니 꼼짝도 않고 돌아갈 줄을 몰랐다. 그 안색을 보니 마치 얽매인 게 있어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수 없는 듯했다. 그래서 를 붙잡아 함께 머무르게 되었다. 이 무렵, 내 둘째 형님 또한 그 를 잃고 남해의 섬으로 가셨는데, 역시 를 붙잡아 함께 앉아 계신다. 본디부터 지키는 바가 있어 를 잃지 않으신 때문이 아니겠는가이것이야말로 큰 형님이 자신의 서재 이름을 수오재라고 붙이신 까닭일 것이다. 일찍이 큰형님이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의 자()를 태현(太玄)이라고 하셨다. 나는 홀로 나의 태현을 지키려고 서재 이름을 수오라고 하셨다이는 그 이름 지은 뜻을 말씀하신 것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무엇을 지키는 것이 큰 일인가? 자신을 지키는 것이 큰 일이다라고 하셨는데, 참되도다. 그 말씀이여! 드디어 내 생각을 써서 큰형님께 보여 드리고 수오재의 기문(記文)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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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형님: 다산의 큰형님은 정약현(丁若鉉)이다. 신유박해(1801)로 집안이 풍비박산 났지만, 자신과 집안을 잘 지켜냈다.

장기: 경상북도 포항시 장기면. 다산은 신유박해로 인해 그 해 3월에서 10월까지 장기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소내: 소천,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현마을. 마현, 마재, 두릉, 능내 등으로 불린다.

둘째 형님: 정약전(丁若銓)이다. 신유박해 때 신지도로 유배 갔다가 나중에 다시 흑산도로 옮겨져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태현: '심오하고 현묘한 이치'를 뜻하는 말.

 

 

다산 정약용의 메모의 방법 5가지

 

1. 책을 읽을 때에는 왜 읽는지 주견을 먼저 세운 뒤 읽고, 눈으로 읽지 말고 손으로 읽어라.

   부지런히 초록하고 기록해야 생각이 튼실해지고 주견이 확립된다.

   그때그때 적어두지 않으며 기억에서 사라진다. 당시에는 요긴하다 싶었는데 찾을 수가 없게 된다.

 

2. 늘 고민하고 곁에 필기도구를 놔둔 채 깨달음이 있으면 반드시 기록하라.

 

3. 기억을 믿지 말고 손을 믿어 부지런히 메모하라. 메모는 생각의 실마리. 메모가 있어야 기억이 복원된다.

   습관처럼 적고 본능처럼 기록하라.

 

4. 평소 관심이 있는 사물이나 일에 대해 세세히 관찰해 기록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라. 

 

5. 메모중에서 쭉정이는 솎아내고 알맹이를 추려 계통별로 분류하라. 그리고 현실에 응용하라. 속된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을 정리한 지식체계와 연관시켜라. 

 

 

    우리에겐 미래가 있다. 우리 하나 하나가 작품이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 가능성이 열리느냐 마느냐는 어쩌면 아주 작은 노력, 반복하는 무엇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중 확실한 한 가지는 메모의 습관일 것이다 2009318일에 타이핑했던 정약용의 수필을 다시 타이핑해 본다소화도 시킬 겸 정약용의 나를 지키는 집이란 제목의 글을 타이핑하자니 처음에는 밋밋한 감도 들었다거듭 읽고서야 깊은 맛의 글감이 시야에 잡힌다. 시력은 갈수록 떨어지나 시각만큼은 살아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드는 순간 나는 나를 향해 조용히 웃는다. 수필이니까 유배생활 중에 쓴 옛 선인의 글이니까 마음으로 읽어야지 다짐하지 않았어도 끝내 마음으로 읽게 되고 수긍하게 된다댓돌 위에 흰 고무신처럼 비질이 끝난  너른 마당의 참새 한 마리처럼 들풀의 하늘거림처럼 말로 할 수 없는 숫처녀의 수수한 매력처럼 소박한 글. 글은 이토록 마음으로 쓴 자의 마음을 마음으로 읽고 또 손끝으로 토닥거릴 때 와락 안겨드는 것이다. 실체가 없으나 실체가 있으며 형상이 없으나 형상이 있는 문장의 위력은 소박하고 조용하여서, 수오재 한 채 짓고 돌아서듯 읽는 이의 마음에 평온을 선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