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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J. 리버만 <나에겐 분명 문제가 있다>

미송 2017. 5. 28. 00:23

 

 

 

가장 친한 친구가 남자친구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마음 한구석에서 묘한 기쁨을 느낀다. 죄책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감정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백만장자가 파산했다는 소식이나 헤어진 연인들의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에 대해 질투나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실패를 통해 만족이나 위안을 얻는 경우이다. 특별히 다른 사람을 괴롭힐 만한 일을 하거나 악의를 품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도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불행이 닥쳤다는 사실 자체에 즐거워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삶에 만족을 느끼기 위해서 자기보다 뒤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곤 한다. 주변의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더 낫다면 성공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자신은 그들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으니까. 말하자면 소의 꼬리보다는 닭의 머리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이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라는 것을 상대적으로 상기시켜줄 수 있는,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모든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는 하나의 거대한 경기장이라고 생각한다. 일정 단계마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실패하면 자신이 성공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고 여긴다. 누군가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자신이 그 불행에 걸려들지 않았다는 사실에 무의식적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질투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인생에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노력의 결실을 거두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새삼 자신은 아직까지 아무것도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는 적극성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저 생계를 이어가기 위하여 자신의 희망과는 관련이 없는 일을 맛보고 있는가?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성장할 기회가 있는가?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 만한 사람으로 성장해 가고 있는가?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지금 당장 이 질문들에 대답을 해보고,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적어 보자. 어떤 직업이 자신의 목표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지, 어떤 종류의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은지,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자신의 꿈을 그려본다.

이러한 자신의 비전과 목표를 매일 '점검할 수 있는' 형식으로, 이를테면 테이프, 그림, 도표, 포스터 등으로 만들어서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해 보자. 이렇게 자신의 새로운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바로 그 순간 삶에 대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며, 단지 목표를 거머쥐는 것뿐만이 아니라 도달하는 과정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가 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의지하지 않고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인생이란 적과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전쟁터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실패가 곧 자신의 행운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통해서 위안을 받으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생각이다.

다른 사람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난다고 해서 자신이 실제로 한걸음 나아가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란 한순간의 안도감 외에 아무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내딛는 한 걸음이다.

오히려 한 사람의 승리가 모두의 승리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한 사람이 일구어낸 결과가 모두에게 돌파구가 되기도 한다.

올림픽에 출전한 수영선수가 세계 신기록을 수립할 때마다 다른 선수들은 이에 자극을 받아서 최선을 다하고, 새로운 기록을 수립하기 위해 그 이상의 일을 해낸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 존 던이 말했듯이, "인간은 어느 누구도 외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인 것이다. 누구의 죽음이건 그것은 나 자신을 악화시킨다. 나 또한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아내려고 사람을 보낼 필요는 없다. 그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

인생이란 두 사람이 만들어낸 득실의 합계가 항상 제로 상태가 되는 재로섬 게임이 아니다.

 

20~23쪽

 

 

 

내 현재의 일을 추천해 주었던 사람. 내게 맞는 일이고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응원해 주었던 사람. 그 사람이 이 책을 주문하였다. ' 너에겐 아무 문제가 없어'고 거의 10년 간 그리고 최근 4월까지도 줄곧 같은 말로 응원해 주었던 그가 오월 어느 날 아침 이 책주문하여 내 앞에 내 놓았다. 

 

주말. 토요일 하루만이라도 사무실 컴퓨터와 단절하자 결심을 하고,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 일 외에도 밀린 일이 많아서 화장실 청소하기, 이불빨래하기, 마당 쓸기, 희대의 미치광이 히틀러 다큐 보기, 장보기, 옷가게 들르기, 세금계산서 사기, 무좀약 사기 등,  소소하나 중요한 일을 마무리 짓고, 타이핑을 시작한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하는 것을 따질 필요가 있을까. 꼭 필요할 것이라 추천해 준 책을 스스로 타이핑 하는 일. 타이핑하며 다시 가슴에 새겨보는 내용들. 그리고 그 이전 마무리 지었던 일상들. 다 중요하다.

 

그저 내가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일을 선택하였는가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본다.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어느 순간 그러한 사람으로 (기계와 근친한 사람처럼) 전락하게 되었는가.  나는 맡겨진 일에 있어서 완주하기로 다시 약속한다. 완주의 때와 시기는 중요하지 않다. 빵이냐 이상이냐 하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다만 스스로 목표를 정비하여 다시 달려보기로 할 뿐. 부정에서 긍정으로 나의 잣대에서 너의 기준으로 외면에서 공감으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열림을 시도하기로 한다. 완주의 목표는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바로 자신과의 조율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