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유시인

오정자 <죽지않는 꽃>

미송 2017. 8. 6. 09:46

 

  

 

 

죽지않는 꽃 / 오정자

 

여덟 살 조막손 잡고 교문에 들어서던 엄마도 여덟 살이었다
만국기 펄럭이는 하늘 아래 호루라기 소리에 놀라 정신없이 뛰다가
퍼억 엎어져 작은 무릎이 깨졌을 때 엄마는 딸기밭 고랑처럼 붉은 물을 흘렸다
툭하면 앓던 앙바틈한 계집애 억척스레 엎고 조퇴라도
키던 엄마는 개근상을 무지 좋아했다
살다가 게 걸음질 쳐 아닌 샛길로 영 사라지려던 여자
한없이 한 자리에 주저앉히던 엄마는 보봐르도 신사임당도 아니었다

엄마가 되고서야 20년이나 흘러서야 엄마를 제대로 생각한다
곁에 두고 오래 그리워한다 영원성을 두고 불러도 간격 없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른다
여자이기 전
, 인간이기 전, 아니 그 이후로 더 고귀하고 순결해진
어머니 어머니 나의 이름.

 

 


 

 

 

 

 

 

 

 

 

 

 

 

 

 

 

 

'음유시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병률 <찬란>   (0) 2014.09.05
유하 <농담>  (0) 2014.07.31
이성복 <입술>  (0) 2014.07.04
이기철 <추억은 혼자 분주하다>  (0) 2014.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