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플수록 꿈의 트럼펫을 부는 시인 신현림
당신을 위로할 침대를 타고 그녀와 함께 희망을 달리다
신현림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 민음사에서 6년 만에 출간되었다. 그녀는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 등을 통해 신선한 상상력과 솔직하고 거리낌 없는 화법으로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 왔다. 허무주의적이고 비관주의적으로 세상을 비판하던 전작과는 달리, 그녀의 눈은 한층 더 깊어져 고통마저 감싸 안으며 세상을 어루만진다. 한결 성숙되고 관조적인 시선으로 도시 속의 쓸쓸한 삶, 고독한 육체와 버릴 수 없는 욕망 등을 그려내며, 시를 통해 그녀가 최고의 삶의 가치라 여기는‘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싶어 한다. 이 시집에서도 그녀 특유의 건강한 솔직함은 여전하다. 그 솔직함의 용기로 내밀한 영혼들의 소리를 풀어낸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우리 영혼의 허기를 달래 주며 치유해 준다. 그녀의 시를 읽으면 마치 침대 위에 함께 누워 그녀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그녀와 함께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따뜻한 희망을 얻게 된다. 사진작가이기도 한 시인의 감각적인 사진 17컷이 시의 감동을 더한다.
■ 진한 저녁밥 냄새가 나는 그녀의 시, 영혼의 허기를 달래다
그녀는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한다. 또 번역을 하고, 칼럼과 에세이를 쓰고, 강연을 하며 홀로 딸을 키운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바쁜 여자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그녀의 시가 기이한 생기를 뿜어내는 점이다. 그녀의 시를 다른 것들과 구분 짓는 이 대책 없는 생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문학평론가 최원식) “그의 시는 어떤 필연성도 용해시키는 우연의 용기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일종의 광기와 섬광이기도 하다.”(시인 고은) “가슴을 울리는 황홀한 내면 풍경과 외로움의 미학을 보여 준다.”(시인 이승훈) “아무것도 아닌 것의 힘을 아는 그의 시편들은 그의 인생론이 바로 시론인 것처럼 생생하고, 태아를 넣고 다니는 어미처럼 진정하다. 그는 밥 속에 헝그리 정신을 비벼 넣고 싱글 맘으로 희망의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 여성의 슬픈 등에 꽃을 피운 이 시집을 우울한 육체 위에 한 땀 한 땀 새긴 영혼의 자서전이라 말하고 싶다.”(시인 천양희)
이 폭포수 같은 찬사들은 모두 한 사람에게 쏟아진 것이었다. 바로 시인 신현림이다. 그녀는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 등을 통해 신선한 상상력과 솔직하고 거리낌 없는 화법으로 세기말의 정서를 예리하게 묘파해 내는 동시에, 시인과 사진가의 경계를 허무는 왕성한 창작력으로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 왔다. 그런 그녀가 6년 만에 『침대를 타고 달렸어』라는 매혹적인 제목의 시집을 들고 찾아왔다. 허무주의적이고 비관주의적인 색채가 강했던 전작과는 달리, 그녀의 눈은 한층 더 깊어져 고통마저 감싸 안으며 세상을 어루만지는 성숙되고 관조적인 시선을 보여 준다. 외로움과 그리움, 상처와 상실감에 매여 사는 현대인의 고뇌와 염원을 노래하며, 가슴 울리는 황홀한 내면 풍경과 외로움의 미학을 보여 준다. 또한 지혜를 구하고자 딸과 함께 떠난 여행을 통해 그녀의 시 세계는 더욱 깊고 넓어졌으며, 바로 그 시로써 우주의 광대함에 눈을 뜨고 지금 이 순간의 기쁨을 만끽하면서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침대란 무엇일까? 그녀에게 침대란 “저 웅숭깊은 사내랑 사랑을 하”(「그대 몸 달빛이 울면」)는 공간이기도, “1년째 의식불명이신 어머니”(「마지막 통화」)가 마침내 죽어 나간 공간이기도, “우리가 평생을 지나 도착할 죽음”(「그 강은 흐르네」)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렇듯 침대는 바로 “내가 태어나 사랑하고 죽어 갈 (……) 몸의 일부”인 곳이다. 그녀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홀로 침대에 엎드려 자신의 희망과 절망에 대해 기록하는, 즉 시를 쓰는 고독한 순간이다. 침대 위에서 시인은 “눈물이 잉크처럼 번지”(「아이라이너가 번진지도 모르고」)듯 자신의 슬픔과 절망을 털어놓는가 하면, “투명하게 맑아져 다시 태어나는 나”(「침대를 타면」)를 바라보기도 한다. 신현림은 바로 자신의 침대 위에서 “세상 끝까지 갈 힘을 얻”(「침대를 타면」)는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신현림은 신선하고 파격적인 상상력, 매혹적인 시와 사진으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 작가로서, 실험적이면서 뚜렷한 색깔을 지닌 작업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녀의 두 번째 시집 『세기말 블루스』는 시집으로서는 무척 드물게 10만부 가까이 팔리면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바로 그녀의 시가 술술 읽힌다는 것이다. 알 듯 모를 듯 어려운 수사학으로 숨바꼭질하지 않고, 독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 주는 듯한 시어로 독자, 즉 세상과 공감하고 소통한다.
그녀 시의 매력은 바로 이러한 건강한 솔직함에 있다. 그녀의 시를 읽으면 마치 침대 위에 함께 누워 그녀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어떤 방편도 예비함이 없이 세상의 황폐와 잔인 앞에
스스로의 전신을 노출시키고 있다. 이 소년스러운 천진함과 의로움으로 하여 그의 시는 어설픈 듯 상기된 가운데 놀라운 생기를 발산한다.”(시인 김사인)라는 평처럼 그녀는 자신의 치부까지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이에 대해 신현림은 “시에 나를 너무 드러낸 것 아닌가, 그래서 손해 보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지만 이 시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이고, 또 누군가의 감정이겠다는 생각을 한다.”라고 말한다. 그녀 시의 고백체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고백이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독자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게 만든다. 결국 그녀의 고백체는 우리의 고백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우리 영혼의 허기를 달래 주며 치유해 준다. 그녀의 시가 “우울한 육체 위에 새긴 영혼의 자서전”, “상실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보내는 치유의 메시지”로 평가받는 이유다. 결국 “행복은 행복하리라 믿는 일”(「꿈꾸는 행복」)이라는 시인의 다짐은, 그 진실함으로 인해 시인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살아갈 용기를 건넨다. 그녀와 함께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따뜻한 희망을 얻게 된다.
“감동하고, 사랑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사는 것”이라는 로댕의 말은 곧 그녀의 인생관이자 예술관이다. 그녀는 오늘도 “나중이란 없다, 난 지금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늘 지금 이 순간에 치열히 살며 감동하고, 사랑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우리와 함께 살아간다.
■ 작품 해설 중에서
『침대를 타고 달렸어』는 신현림의 생생한 아픔이 원천이 되어 써진 고백의 편린들이다. 그녀의 고백체는 거리낌이 없다. 이 시집의 마력은 건강한 솔직함이며, 그녀 특유의 “솔직함의 진경”은 여실히 드러난다. 강인하고 현명하지만 의외로 여린 엄마의 속내를 엿보듯, 감상적이고 섬세하지만 때로는 진중한 딸의 속내를 엿보듯, 시인의 고백을 경청하는 우리는 그녀와 함께 울고 웃으며 ‘향긋한 친밀감’에 휩싸이며 따뜻한 용기를 얻는다. “침대를 타고 달리는 시간”, 즉 ‘시를 쓰는 밤’은 그녀에게 마술 같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내 안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 시간이고, “두 번 살 수 없는 생을 시로써 수없이 고쳐 가며” 또 다른 나를 만들어 가는 시간이다. 이 시집을 통해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것은 시인 자신의 내밀한 욕망이기보다는 행복한 삶에 대한 우리 모두의 다짐이다.
— 조연정(문학평론가)
■ 추천의 말
“나를 안아 줘/ 안전벨트처럼 안아 줘”, “석류처럼 빨간 해를 보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저녁/ ……내 붉은 가방이 날아간다”, “침대에 슬픔 가득 싣고 무덤을 향해 나는 운다”, “나이 마흔이면 달이 주르르 미끄러지고”, “저녁밥 향기가 나는 바다가 보였다”, “바지 지퍼를 내리는 소리처럼/ 섹시한 파도 소리가 그리워”, “육신의 무명천을 천천히 찢어 가는 쾌감”, “그렇게 겹치고 겹치면서/ 벽보들은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었다”. 제목과 상관없이 여기저기서 뽑았으나 하나같이 절묘한 위 시행들의 연결이 보여 주듯, 이 시집은 여성과 그 아이, 그리고 (아프게 부재하는) 남성이 이룰 수 있는 장차의 신성 가족 혹은 삼위일체까지 예감케 한다. — 김정환(시인)
시가 종교나 마법은 아니지만, 시인은 시를 통해 종교나 마법처럼 현재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 현재의 세계일지라도 최소한 다른 차원의 세계를 꿈꾼다. 신현림의 시가 특히 그렇다. 그는 우리의 삶이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여행하는 것임을 다소 거칠기까지 한 언어와 폭포수 같은 리듬으로 보여 준다. “누구나 꿈속에서 살다 가는 게 아닐까/ 누구나 자기 꿈속에서 앓다 가는 거”라는 구절은 우리의 삶이 현실 속에 있지만, 그 현실의 본성이 곧 꿈이라고 웅변하는 것이다. 신현림에 따르면, 슬픔과 아픔으로 인해 우리는 살았다 할 수 있는 것이고 슬픔과 아픔 자체가 꿈꾸는 행위에 다름 아닌 것이어서, 슬픔과 아픔이야말로 ‘사랑의 비단’을 짜는 꿈의 물레이다. 슬픔과 아픔이라면 우리 모두 한가락 하는 대가가 아닌가? 신현림의 시를 읽는 것이 때로 종교보다 더 종교적일 수 있고, 마법보다도 더 마술 같을 수 있는 이유이다. 그 마법에 빠져 보시길! 결코 위험하지는 않은 신비로운 마약이다.
— 차창룡(시인 ․ 문학평론가)
■ 차례
프롤로그
침대를 타고 달렸어
슬픔도 7분만 씹고 버려
백수의 나날
아름다운 손님이 찾아올 거야
난 지금밖에 없어
슬프고 외로우면 말해, 내가 웃겨 줄게
Ⅰ나를 잡아, 나를 놔
나를 잡아, 나를 놔
두 평 반 인생
내가 못 본 이야기를 해 봐요
쏠 테면 쏴, 쏴도 안 죽소
당신이 가까이 오면
The hole
침대를 타면
당신들이 사라진다
아이라이너가 번진지도 모르고
어머니의 장례식
엄마의 유언, 너도 사랑을 누려라
붕붕, 당신은 언제 올 거지?
봄날 하늘 물고기
비에 정드는 시간
애무 한 벌
묵정마을 정류소
Ⅱ 내 슬픈 왕릉은 따뜻해
쓸쓸한 당신들이 사랑을 풀어 가는 방법에 대하여
아직도 가야 할 길
슬퍼하는 자는 깨달음이 있나니
때때로 외로움은 재앙이다
나약함에 대하여
슬픈 사람의 기도
고마워, 미안해, 용서해 줘, 사랑해
붉은 가방이 날아간다
시를 쓰는 밤
내 슬픈 왕릉은 따뜻해
—죽은 자의 향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
—연인이 생기면
—서랍 하나
—성(性), 마음이 나는 자리
아, 다시 헝그리 정신
그 강은 흐르네
Ⅲ 포르투갈에서 주운 라디오
비밀스런 길 하나를 따라간다
실크로드에서 만난 돌풍
Where are you from?
열애의 감정을 솟게 만드는 대서양 앞에서
베이징의 밤
누란의 미녀
인도 순례기 1
인도 순례기 2
포르투갈에서 주운 라디오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가닿는다
이스탄불 거리에서
캄보디아에서 운 가슴
카자흐스탄 우스토베로 가는 길
—술기운처럼 번지는 것
—사랑하고 기억하고 슬퍼한다
프라하에서 길을 잃다
Ⅳ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시간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시간
당신이 나를 생각한다
재첩국
내가 그립다고 말해 줘
사과 맛 키스
그대 몸 달빛이 울면
당신이란 말
비누
향긋한 친밀감을 위하여
흰색 셔츠 한 장
Ⅴ 곧 잃어버릴 것들을 사랑하고
졸리고, 따뜻하고, 쓸쓸한 저녁에
곧 잃어버릴 것들을 사랑하고
마지막 통화
어머니의 푸른 반딧불
중환자실의 낮과 밤
코끼리 열쇠
불륜의 사랑, 믿지 마요
먼저 격려하고 축복하는 세상이 그리워
사랑으로 만든 건 망가지지 않는단다
꿈꾸는 행복
자, 멋진 시작이야
작품 해설 / 조연정
고백의 힘, 그리고 침대의 위무
■ 작가 소개
신현림(abrosa@hanmail.net )
경기도 의왕에서 태어나 아주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상명대 디자인 대학원에서 사진학과 순수사진을 전공했다.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 치유 성장 에세이 『내 서른 살은 어디로 갔나』, 사진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창』, 미술 에세이 『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 박물관 기행 산문집 『시간 창고로 가는 길』, 동시집 『초코파이 자전거』, 역서 『러브 댓 독』, 『비밀 엽서』 , 『포스트잇 라이프』 등이 있다.
자서
나는 침대를 타고 밤거리를 질주한다. 힘들 때면 어디든 날 수 있고, 건널 수 있다.
희망의 트럼펫을 불면 물고기도 나비도 내게 날아온다.고단함도 슬픔도 뛰어넘게 하는
이것이 꿈이든 현실이든 뭐가 중요할까. 누구나 자기 꿈속에서 살다 가는 게 아닐까.
상상력과 환타지는 삶의 절망, 소외감, 혼란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이다.
내 안에 갇히지 않고 침대를 타면 탈 수 있고, 물고기가 날면 나는 것이다.
그렇게 남과 우주까지 흘러가며 나누는 시의 축제를 나는 꿈꾸곤 했다.
내 안에 참 많은 사람들이 산다. 솔직함의 용기로 내 안의 내밀한 영혼들의 소리를 풀어내곤 했다. 시집속의 화자는 나고 당신이다. 처지비슷한 동시대인들이다. 나약함과 깨어짐, 외로움과 그리움, 먹이 걱정과 상처와 상실감...에 매여사는 현대인들의 고뇌와 염원을 풀고 싶었다. 이는 가장 깊이 전해질 요소며, 누구라도 공감될 이야기라 믿는다. 누군가의 삶을 치유하듯, 부족한 나도 치유하며 삶이 바뀌는 것을 느낀다. 내 시로 사람들이 희망을, 사랑을, 사람다운 삶의 감정들이 되살아나면 좋겠다.
무엇에든 올인하게끔 끝없이 슬픔과 자극을 주셨던 어머니. 사랑하는 엄마의 무덤위에 이 시집을 바친다.
-2009년 여름. 신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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