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그리 빨리 가시나요!"
[노무현을 기억하며] 나는 이렇게 이별식을 치른다
" 나를 못난이 삼형제로 그려주시오"
노무현 의원은 주저 없이 말했다. 당시 그는 종로구 국회의원이었다. 평창동 나의 화실을 찾은 그는 "냉장고나 벽, 컴퓨터등 그 어디에도 붙여놓고 병따개나 핸드폰, 쇠고리 등 그 무엇으로도 쓸 수 있는 캐릭터로 자기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였다. 나는 너무 놀랐고, 감동하였다. 예상을 하긴 하였지만 이렇게까지 내쳐갈 줄은 예상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는 서민에게로, 서민에게로 다가가야한다고 말했다. 이 계획은 그가 정치 일번지 종로구를 포기하고 홀연히 부산으로 떠나면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점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그는 부산으로 가지 않을 수 없는 그의 심경을 담담하게 말했다.
"결국 다시 낙선하겠지만 그래도 지역주의를 타파하려면 피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나는 아쉽지만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도 1999년의 일이었을 것이다.
▲ ⓒ임옥상 |
봉하마을에서 전화가 왔다. 노 대통령이 보자고. 나는 반신반의 했다. 5년 대통령 임기 내내 한번 연락도 없더니 이제 왜 뒤늦게 나를 찾나? 지워버린 이름이지만 그래도 옛정 때문에 봉하로 향했다. 지난 11월의 일이다. 반겨주었다. 늘 함께한 친구처럼 따뜻했다. 임기를 마친 심경, 그리고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특히 봉하마을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내가 문화우리 등의 활동을 하면서 공공미술운동을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동네 여기저기를 함께 거닐었고, 점심을 먹고는 그 유명한 자전거를 타고는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우리는 지역문화운동, 녹색운동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시원섭섭하시죠?"
"잘 한 게 있어야 시원하고 섭섭한 게 있지요".
그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그 답지 않게 느리고 가라앉은 톤으로 먼 곳으로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을 이어갔다. 기회가 기회이니 만큼 한두 가지는 꼭 몰아붙여 어설픈 변명이라도 집적 듣고야 말겠다는 나의 속내를 이미 간파하고라도 있는 듯 그는 나의 공격적 예봉을 사전에 시나브로 꺾어 버리고 말았다. 불가항력적인 그 무엇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사실 그를 잊었으나 잊은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얼마나 기대감으로 충만했던가!!!
나는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그의 인생역정을 열렬하게 지지하고 사랑한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의 그는 아니었다. 물론 그의 단심(丹心)은 안다. 허지만 너무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실기한 것이 너무나 많다. 그가 "시장으로 권력이 넘어 갔다"했을 때는 절망이었다. 한미 FTA 그리고 나서 정권 재창출에 뒷짐을 지고 돌아서는 모습을 목도하면서는 나도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봉하에 간다고 나섰다. 나도 가고 싶었다. 허나 나는 나대로 나의 방식으로 그와 하직해야 할 것 같았다. 계속 눈물이나 짜면서 지낼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캔버스 앞에 앉았다. 수백 장의 사진 중에서 고른 한 장의 사진을 손에 들고.
이별식을 이렇게 치른 적이 없다. 보고 또 보고... 컴퓨터에서 출력한 사진은 희미하다. 애매한 부분을 복원하고, 환기하고, 가물가물한 기억을 소환하면서 뚫어지게 눈이 시도록 붙잡고 늘어졌다.
▲ ⓒ임옥상 |
그렇게 가면 안 된다 원망이 하늘을 찌르다, 그래 누구도 한번은 간다 체념하다, 왜 이런 식이냐 넋두리 하다, 머릿속이 허옇게 비워지고 비워지고.... 그는 쉽게 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까탈스러웠다. 미궁으로 잡아 끄는가 하면 이리저리 끌고 당기면서 짓궂게 굴기도 했다. 아주 작은 한조각의 추억을 내비취는 듯하다 이내 사라지기도 했다. 그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듯 딴청이었다. 가까스로 제 모습을 찾아냈다고 휴 숨을 내쉬는 순간 적막이 함께 오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나를 잡고 늘어졌다. 여명이 밝아오면서 그도 서서히 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나의 붓 끝에서 살아나왔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우리의 상념과 원망과 회한을 넘어,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의 경계를 넘어, 이렇게 나의 앞에 살아 나왔다.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면서 어디론가 급히 가고 있다. 춤추고 있다. 사뿐사뿐 가볍게, 경쾌하게 나르듯 비상하고 있다.
그래 이별이 이별이 아니다.
죽음이 죽음이 아니다.
그대가 우리의 곁을 떠나도 우리가 그대를 떠나보낼 수 없으니 그대는 우리 곁을 떠날 수 없는 법, 당신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 수밖에 없어라.
나는 이렇게 이별식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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