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까비르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

미송 2019. 2. 13. 15:34



달새의 머리는
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비새의 생각은
다음 번 비가 언제쯤 내릴까 하는 것
우리가 온 생애를 바쳐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

달이 내 안에서 빛나고 있다
그러나 먼 내 눈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달이 해가 내 안에 있다
울리는 이 없는 북이
내 안에서 울리고 있다
그러나 먼 내 귀는 그것을 듣지 못한다

-까비르 <달새는 달만 생각한다>(류시화 옮김)




여인의 눈동자 속 별들을 하나 둘 헤아리는 남자의 표정을 떠올려 본다. 쏟아질 듯한 별들을 올려다보는 여인. 여인의 눈동자 속 별을 헤아리는 남자. 황홀감으로 출렁이는 풀밭. 행복한 연인들은 더 이상 먼 하늘의 별들을 더듬지 않을 것이다. 포옹한 가슴 위에 별이 뜨고 달이 뜨고 해가 뜰 것이다. 


원근법에 따라 달라지는 사물의 형상. 아름다운 너로 인해 달과 별과 해는 이미 내 안에서 빛나고 있건만, 살아가고 있건만,  어리석은 연인들은 하늘에 올라 달과 별과 해를 따오려 한다. 생각 여하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듯 하나, 태생 여하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 본시가 달이었고 별이었고 해였던 존재들. 평생토록 그 생각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안에 북소리. 먼 곳으로 갔던 눈과 귀가 서둘러 오고 있다. <오>       

    

20170709-20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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