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시

한강,『흰』

미송 2025. 1. 13. 13:01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들은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들은 희어 보인다. 어렴풋한 빛이 어둠 속으로 새어들어올 때, 그리 희지 않던 것들까지도 창백하게 빛은 발한다.

밤이면 거실 한 쪽에 소파침대를 펴고 누워, 잠을 청하는 대신 그 해쓱한 빛 속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흰 회벽에 어른거리는 창밖 나무들의 형상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 -이 도시와 비슷한 어떤 사람-의 얼굴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 윤곽과 표정이 서서히 뚜렷해지길 기다렸다.

 

 

만년설

 

언젠가 만년설이 보이는 방에서 살고 싶다고 그녀는 생각한 적 있다. 창 가까이 서 있는 나무들이 봄에서 여름, 가을에서 겨울로 몸을 바꾸는 동안 먼 산 위엔 언제나 얼음이 얼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열감기에 걸린 그녀의 이마를 번갈아 짚어보던 어른들의 차가운 손처럼.

 

1980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는 흑백영화 한 편을 그녀는 보았다. 주인공 남자는 일곱 살에 아버지를 잃고 조용한 성품의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스물아홉 살의 젊은 아버지는 동료들과 히말라야를 등반하다 조난당해 시신을 찾지 못했다) 성년이 되어 어머니를 떠난 그는 결벽적일 만큼 윤리적인 태도를 지니고 살아가게 되는데, 선택의 순간마다 어째서인지 히말라야의 설산에 눈이 내리는 압도적인 풍경이 그의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그는 누구도 쉽게 내리기 어려운 결정을 하고, 그 결과 끊임없이 고초를 겪는다.

 

부패가 만연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혼자서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료들에세 따돌림을 받으며 나중에는 린치 까지 당한다. 결국 모함에 빠져 직장에서 쫓겨난 뒤 혼자 돌아온 방에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아득한 설산의 계곡과 봉우리들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 가 갈 수 없는 곳, 얼어붙은 아버지의 몸이 숨겨진,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얼음의 땅.

 

 

파도

 

멀리서 수면이 솟아오른다. 거기서부터 겨울바다가 다가온다. 힘차게, 더 가까이 밀려온다. 파고가 가장 높아진 순간 하얗게 부서진다. 부서진 바다가 모래펄을 미끄러져 뒤로 물러난다. 물과 물이 만나는 경계에 서서 마치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파도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동안(그러나 실은 영원하지 않다-지구도 태양계도 언젠가 사라지니까), 우리 삶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만져진다.

부서지는 순간마다 파도는 눈부시게 희다. 먼 바다의 잔잔한 물살은 무수한 물고기들의 비늘 같다. 수천수만이 반짝임이 거기 있다. 수천수만의 뒤척임이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

 

 

진눈깨비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이마를, 눈썹을,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 얼음도 아니고 물도 아닌 것. 눈을 감아도 떠도, 걸음을 멈춰도 더 빨리해도 눈썹을 적시는 물큰하게 이마를 적시는 진눈깨비.

 

 

소금

 

어느 날 그녀는 굵은 소금 한 줌을 곰곰이 들여다봤다. 희끗한 그늘이 진 굴곡진 입자들이 서늘하게 아름다웠다. 무엇인가를 썩지 못하게 하는 힘. 소독하고 낫게 하는 힘이 그 물질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그전에 그녀는 상처난 손으로 소금을 집어본 적이 있었다. 음식을 만들다 시간에 쫓겨 손끝을 벤 것이 첫 실수였다면, 그 상처를 처매지 않고 소금을 집은 건 더 나쁜 두 번째 실수였다.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는 것이 글자 그대로 어떤 감각인지 그때 배웠다.

 

소금으로 언덕을 만든 뒤 관람객들에게 거기 맨발을 얹도록 하는 설치 작품의 사진을 그녀는 얼마 뒤 보았다. 준비된 의자에 걸터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은 뒤, 소금 언덕에 두 발을 얹고서 원하는 만큼 앉아 있도록 한 공간이었다. 사진 속 전시실은 어두웠고, 빛이 떨어지는 곳은 사람의 키보다 조금 높은 언덕의 꼭대기뿐이었다. 그늘이 져 얼굴이 잘 보이지않는 관람객이 의자에 앉아 그 언덕의 비탈에 두 맨발을 올려놓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그렇게 있었는지, 흰 소금 산과 여자의 몸이 자연스럽게 기이하게 아프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려면 상처가 없는 발이어야겠지, 사진을 들여다보다 그녀는 생각했다. 곱게 아문 두 발이라야 거기 얹을 수 있다, 그 소금산에. 아무리 희게 빛나도 그늘이 서늘한.

 

 

레이스 커튼

 

얼어붙은 거리를 걷던 그녀가 한 건물의 이층을 올려다본다. 성근 레이스커튼이 창을 가리고 있다. 더렵혀지지않는 어떤 흰 것이 우리 안에 어른어른 너울거리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정갈한 사물을 대할 때마다 우리 마음은 움직이는 것일까?

새로 빨아 바싹 말린 흰 베겟잇과 이불보가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거기 그녀의 맨발이 닿을 때, 순면의 흰천이 무슨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당신은 귀한 사람이라고. 당신의 잠은 깨끗하고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잠과 생시 사이에서 바스락거리는 순면의 침대보에 맨살이 닿을 때 그녀는 그렇게 이상한 위로를 받는다.

 

 

반짝임

 

사람들은 왜 은과 금,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광물을 귀한 것으로 여기는 걸까? 일설에 의하면 물의 반짝임은 옛 인간들에게 생명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빛나는 물은 깨끗한 물이다. 마실 수 있는 생명을 주는- 물만이 투명하다. 사막을, 숲을, 더러운 늪지대를 무리지어 헤메다가 멀리서 하얗게 반짝이는 수면을 발견했을 때 그들이 느낀 건 찌르는 기쁨이었을 것이다. 생명이었을 것이다.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다.

 

 

빛의 섬

 

그녀가 무대에 오른 순간, 강한 조명이 천장에서부터 쏟아져내려와 그녀를 비췄다. 그러자 무대를 제외한 모든 공간이 검은 바다가 되었다. 객석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다. 그녀는 혼란에 빠졌다. 저 해저 같은 어둠 속으로 더듬더듬 걸어내려갈 것인지, 이 빛의 섬에서 더 버틸 것인지.

 

 

언니

 

언니가 있었다면, 생각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나보다 꼭 한 뼘 키가 큰 언니. 보풀이 약간 일어난 스웨터와 아주 조금 상처가 난 에나멜 단화를 물려주는 언니.

 

엄마가 아플 때면 코트를 걸치고 약국에 다녀오는 언니. 쉿 조용 조용히 걸어야지, 자신의 입술에 집게손가락을 대며 나무라는 언니. 이건 아주 간단한 거야, 쉽게 생각해봐. 내 수학문제집 여백에 방정식을 적어가는 언니. 얼른 암산을 하려고 찌푸려진 이마. 발바닥에 가시가 박힌 나에게 앉아보라고 하는 언니. 스텐드를 가져와 내 발 언저리를 밝히고, 가스레인지 불꽃에 그슬려 소독한 바늘로 조심조심 가시를 빼내는 언니. 어둠 속에 웅크려 앉은 나에게 다가오는 언니. 그만 좀 해, 네가 오해한 거라니까, 짧고 어색한 포옹. 제발 일어나 밥부터 먹자. 내 얼굴을 스치는 차가운 손. 빠르게 내 어깨에서 빠져나가는 그녀의 어깨.

 

 

모든 흰

 

당신의 눈으로 흰 배춧속 가장 깊고 환한 곳, 가장 귀하게 숨겨진 어린 잎사귀를 볼 것이다.

낮에 뜬 반달의 서늘함을 볼 것이다.

언젠가 빙하를 볼 것이다. 각진 굴곡마다 푸르스름한 그늘이 진 거대한 얼음을, 생명이었던 적이 없어 더 신성한 생명처럼 느껴지는 그것을 올려다볼 것이다.

자작나무숲의 침묵 속에서 당신을 볼 것이다. 겨울 해가 드는 창의 정적 속에서 볼 것이다. 비스듬히 천장에 비춰진 광선을 따라 흔들리는, 빛나는 먼지 분말들 속에서 볼 것이다.

그 흰,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마실 것이다.

 

 

 

채식주의자와 흰. 뉴스로만 접해오던 작품을 읽었다. 작품으로 독자와의 만남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그녀를 경험하게 된 팔월, 여름의 끝을 향하고 있다. 20180815<>   

 

기록들을 저장해두지 않았다면, 그 저장을 훑어보았다는 타인들의 발자국이 없었다면  다시 읽기나 다시 타이핑하기가 어려웠을지 모른다. 아니 기억조차 못했을 수도.  지속적으로 찍힌 발자국을 보면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이 많구나 알게 된다.  물론 그 숫자가 7년 전과 비교할 수 없게 불어났을 테지만,  20250113<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