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화

라쇼몽 효과

미송 2020. 11. 10. 13:43

인간의 본질을 통한 편협한 시각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차이:
라쇼몽 효과 (Rashomon Effect)

 

햇살이 따사롭고 산들 바람이 살랑거리는 어느 오후 숲 속, 인간의 탐욕에 재물이 되어 어느 한 남자가 살해된다. 그리고 며칠 지나 이에 대한 재판이 벌어진다. 살해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나무꾼, 살해를 범했다고 주장하는 산적, 죽은 남자의 아내인 여인, 그리고 이미 주검이 된 당사자뿐이다.


영화는 라쇼몽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지금은 폐허가 된 사찰의 문에서 스님, 나무꾼, 그리고 나그네가 비를 피하기 위해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스님은 참관인으로, 나무꾼은 목격자로 재판에 참가한 후 라쇼몽 현판 아래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머리를 갸우뚱하고 있고, 나무꾼은 비를 피해 찾아들고 이들의 의아해하는 표정에 끼어들기 시작한다. 나무꾼은 나그네라면 혹시 판별을 해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과 함께 재판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건넨다.

나무꾼이 목격 체험을 이야기 한다. 그는 실제 현장에는 없었지만 나무를 하러가던 중 이미 종료된 살인 현장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 현장을 보자마자 관아에 알리기 위해 바로 달려 왔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현장에서 일어났던 일이나 남겨진 귀중품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진술한다.

다음은 타조마루가 진술한다. 그는 여자를 좋아하는 이름난 산적이다. 말을 타고 달아나던 중 낙마하여, 지나가던 이에게 붙잡혀 오게 되었는데, 죽은 남자를 살해한 범인으로 가장 유력한 인물이다. 그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물건들이 죽은 남자의 물건이며, 낙마했던 그 말도 마찬가지로 그 남자의 말이었다. 그는 나무 밑에서 쉬고 있던 중 말을 이끌고 가던 한 남자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말위에는 그 남자의 부인으로 보이는 아릿다운 여성이 앉아 있다. 살랑거리는 바람 탓에 그녀의 면사가 들쳐지고 타조마루는 그녀에 대한 욕정이 솟아난다. 그리고 이들을 유도하기 위해 거짓을 꾸미고 남자를 나무에 묶기까지 성공한다. 이후 타조마루는 그의 아내를 탐하고 함께 달아나려하자, 한 여성은 한 남자만을 섬겨야한다는 주장과 함께 서로 싸워 자신을 쟁취하기를 요구한다. 이에 여인의 남편은, 타조마루에 의하면 생에 가장 존경스러운 결투를 하게 된다. 수십 번의 칼부림 끝에 타조마루가 승리하게 되고 여인의 남편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여인은 사라진다.

 

세 번째는 여인이 직접 찾아와 이야기한다. 타조마루가 자신을 범한 후 남편의 묶인 끈을 풀어주자 남편은 경멸하는 잔인한 눈빛으로 자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당황한 자신은 남편에게 죽음을 애원하던 중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깨어난 후 남편이 죽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네 번째는 무당을 통해 이미 주검이 된 남자의 혼을 불러 진술을 들어 본다. 타조마루가 여인을 범한 후 여인은 황홀감에 빠진 눈을 하고 타조마루로부터 자신을 죽여줄 것을 주문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타조마루는 여인의 잔인함에 분노하여 여인을 죽이려 하지만 놓치고 말게 된다. 그 후 자신을 풀어주고 사라졌다고 한다. 자신은 이러한 배심감에 만물과 인생이 무상해지고 고요함 속에 자결을 하였다고 한다.

 

숲 속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은 너무나 분명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진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진술은 모두 인간이 가진 이기심과 탐욕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나무꾼은 그 현장으로부터 훔친 물건을 숨기기 위해, 타조마루는 자신의 위신을 과시하기 위해, 여인은 스스로의 탐욕과 지조 있는 여인상을 유지하기 위해, 죽은 남편은 남자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사회적 위상을 지키기 위해 사실을 위장하여 모두 스스로의 이기심과 탐욕에 걸 맞는 포장을 하여 이야기를 한다. 영화중에는 라쇼몽 현판 아래 귀신들은 인간이 무서워서 이미 모두 달아나 버렸다는 말을 언급한다. 그만큼 인간의 탐욕에 의한 이기심은 극치에 달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나무꾼의 숨긴 이야기가 또 다시 시작되지만 마찬가지로 사실인지 알 수 없는 또 다른 이야기 일뿐이다. 이야기가 끝나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그네가 아이의 옷을 벗겨 가려 하자 나무꾼과 스님은 이를 말린다. 나무꾼은 마치 회개라도 하듯 아이를 맡아 키우기로 결정한다. 비도 멈추고 햇살이 충만하다. 나무꾼은 아이를 안고 길을 나선다, 마치 희망을 보여주듯이.

 

‘라쇼몽’(Rashomon)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일본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1950년 제작한 영화이다. 다른 영화처럼 그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인간의 본질을 경고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인간의 본질적 의미 외에도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각도, 칼싸움 장면의 실제적 표현 등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포함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학문적으로 텍스트의 해석에 다양성을 제시하는 ‘라쇼몽 효과’라는 개념을 통해 의미의 구성, 창출, 차이 또는 차연적 성격을 규명한 영화로서 더욱 유명하다. 즉, 우리의 일상에서 진행되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현상에 대한 해석에도 다양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우쳐 준 영화라 할 수 있다.

이번 달에는 이러한 ‘라쇼몽 효과’의 의미가 우리 일상에 어떠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지, 개략적인 설명과 함께 영화 ‘라쇼몽’ 소개를 마치고자 한다. 먼저 우리가 살아가면서 재현해 내는 현상들에 대한 속성을 이해해보자. 우리는 나무라는 객관적인 물체를 ‘나무’라고 부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 또한 이와 같은 것을 나무라 칭하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의 개관적인 나무를 보고 이들이 이야기하고 인식하고 있는 나무는 과연 같은 나무일까? 아마도 모두 자신들의 과거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형성된 하나의 틀로부터 이해되고 인식하는 나무들과 실제로 보고 있는 나무를 비교하여, 두 장면의 충돌에 결과로서 인지하는 각각의 다양한 의미로서 나무들일 것이다. 즉, 각각의 경험에 따라 하나의 ‘객관적 나무’를 보고 서로 다른 ‘나무들’을 이야기하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다양한 경험 속에 그 순간의 시점에서 일시적 관계를 통해 임시적 공간에 각각의 경험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나무의 의미들을 쏟아내어 하나의 나무의 개념을 구성하거나 창출하고, 서로의 차이로서 이해하며, 스피노자식의 표현을 빌리면 ‘객관적인 나무’ 속에 숨겨져 있던 다양한 나무의 의미들이 차연 되어 재현되는 현상을 통해 나무라는 의미와 이해가 해석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무라 하면 모두 같은 나무를 인식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나무에 대한 한 가지 인식, 즉 대표성에 의해 마치 다양한 나무의 의미를 하나의 나무처럼 인식하는 습성은 나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포함한 모든 현상들을 바라보는 방식이며, 이에 대한 어떠한 검증이나 통제 장치 또는 기제를 두고 있지 않다. 어쩌면 그러한 검증, 통제, 기제를 두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녹슬어 있는지 모르겠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 인간들은 이러한 습성에 지배와 통제를 받아 오며 살아왔고 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태도보다는 안주하려고 하는 태도에 익숙하다.

 

지금은 지구촌이라는 공간 속에 모두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보편적 경계를 무너뜨리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도모하고자 한다. 하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는 습성은 하나의 현상을 하나의 의미로 이해하고, 이로부터 타인에 대한 배려를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을 항상 잠재하고 있다. ‘라쇼몽 효과’, 즉 하나의 객관적인 현상일지라도 그것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의미는 다양할 수 있다는 카오스(Chaos)식의 현실에 대한 해석을 통해보는 세상의 의미를 우리는 살아가면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철학과 신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은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다  (0) 2021.01.16
중론(中論)  (0) 2020.12.22
법정 <말과 침묵>  (0) 2020.11.03
금강경(사유를 뛰어 넘다)  (0) 2018.07.20
틱낫한의 사랑법   (0) 2018.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