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화

눈은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다

미송 2021. 1. 16. 15:38

 

 

P88~

눈에 대한 분석

 

 

눈은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다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는 것이

어떻게 다른 것을 보겠는가.

 

눈이 보는 것도 아니고,

눈이 아닌 것이 보는 것도 결코 아니다

눈에 대한 설명과 같이

보는 자도 이해해야 한다.

 

귀 코 혀 몸 생각하는 작용과

소리와 듣는 자 등도

모두 앞에서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임을 알아야 한다.

 

공성의 경지에는 눈 귀 코 혀 몸 생각하는 작용이

존재하지 않으며, 형상 소리 냄새 맛 촉감 생각된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연기공식:

-가는 작용이 없으면 가는 자가 없다.

-내림이 없으면 비가 없다

-시각대상이 없으면 눈이 없다.

 

*연기공식의 응용:

-가는 작용이 없는 상태에서 가는 자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는다.

-내림이 없는 상태에서 비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는다.

-시각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눈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는다.

=눈은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다.

 

*제2구 비판:

-어떻게 가는 작용을 갖지 않는 가는 자가 있어서 가겠는가?

-내림을 갖지 않은 비가 어떻게 내리는 작용을 할 수 있겠는가?

-보는 기능을 갖지 않은 눈이 어떻게 노는 작용을 할 수 있겠는가?

=자기 자신을 볼 수 없는 것이 어떻게 다른 것을 보겠는가?

 

 

p102~

 

발생에 대한 분석

 

만일 생생이

본생을 발생하게 하는 것이라면,

생생은 본생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어떻게 본생에서 생할 수 있겠는가?

 

만일 본생이

생생을 발생하게 하는 것이라면

본생은 생생에서 발생하는 것인데

어떻게 생생을 생할 수 있겠는가?

 

마치 등불이 자기와 다른 것 양측을

모두 비추어 드러내는 것처럼,

‘생’은 자기 자신과 다른 것들

모두를 발생하게 한다

 

등불 그 자체에는 어둠이 없다

등불이 머무르는 곳에도 어둠은 없다

어둠을 파괴하기에 비춘다고 하는데

어둠이 없다면 비춤도 없다

 

어떻게 등불이 발생하는 그 순간에

어둠을 쫓을 수 있겠는가?

등불이 처음 발생하는 순간에는

어둠에 도달하지 못하는데….

 

 

p108~

 

행위와 행위자에 대한 분석

 

실재하는 행위자는

실재하는 행위를 행하지 못한다

실재하지 않는 생위자도

실재하지 않는 행위를 행하지 못한다.

 

실재하면서 실재하지 않는 행위자가

실재하면서 실재하지 않는 것을 행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서로 상반된 것인 존재와 비존재가

어떻게 한 곳에 있겠는가?

 

행위자는 행위를 조건으로 삼고

행위는 그런 행위자를 조건으로 삼아 나타난다

어떤 것의 근거를 추구할 때

이 이외의 것은 없다.

 

 

p118~

 

주인공에 대한 분석

 

눈과 귀 따위의 모든 지각기관들과

괴로움이나 즐거움 등의 모든 느낌들은

누군가에게 소속되어 있는데

그를 주인공(자아)이라고 부른다

 

만일 눈이나 귀 등의 지각기관과

괴로움이나 즐거움 등의 느낌을 떠나서

주인공이 존재한다면,

무엇으로 그 존재를 파악할 수 있겠는가?

 

만일 눈이나 귀 등을 떠나

주인공이 존재한다면,

주인공을 떠나서

눈이나 귀 등도 존재하리라

 

법이 있음으로 인해 사람이 있음을 알고

사람이 있음으로 인해 법이 있음을 안다

법을 떠나서 어찌 사람이 있겠으며

사람을 떠나서 어찌 법이 있겠는가?

 

보는 자가 듣는 자이고

듣는 자가 느끼는 자라면

그런 지각기관들은

그 이면에 단일한 주인공을 가지리라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보는 자와 듣는 자가 다르고

느끼는 자도 역시 다르다면

무엇을 보는 때에 다른 것을 들을 수도 있어야 하기에

주인공이 여럿인 꼴이 되리라.

 

눈과 귀 등

그리고 괴로움이나 즐거움 등의 느낌이

소속된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눈 귀 등도 존재하지 않으리라.

 

지금까지 분석해 보았듯이 ‘나’라는 주인공이 별도로 존재해서 ‘눈’을 이용해 무엇을 보고, ‘귀’를 이용해 무엇을 들으며, ‘코’를 이용해 냄새를 맡으며,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느낀다고 간주하는 사고방식이나, ‘눈 귀 코 괴로움 즐거움’등은 그것의 주인인 나에게 소속된 것들이라고 간주하는 사고방식 모두 우리의 생각이 제멋대로 재단해 낸 분별의 축조물일 뿐이다.

 

 

 

p131~

 

불과 연료에 대한 분석

 

만일 연료가 그대로 불이라면

행위자와 행위가 동일하다는 말이 된다

만일 불이 연료와 다르다면

불은 연료 없이도 존재하리라.

 

불과 연료는 서로 의존하여 존재한다

연료에 의존하여 불이 있고

불에 의존하여 연료가 있는 것이다.

 

만일 불이 연료에 의존하여 존재하고

연료가 불에 의존하여 존재한다면

그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미리 성립되어 있어서

불이나 연료를 존재하게 하겠느냐?

 

만일 불이 연료에 의존하여 존재한다면

성립된 불이 다시 성립하는 꼴이 된다

또 이와 같다면

불 없는 연료 역시 존재하리라.

 

 

P137

 

삶과 죽음의 선후 관계에 대한 분석

 

만일 생이 앞선 것이고

노사가 나중의 것이라면

노사 없는 생이 되리라

또 죽지도 않은 것이 생하리라.

 

만일 생이 나중의 것이고

노사가 앞선 것이라면

원인을 부정하는 말이다

어떻게 생하지도 않은 것의 노사가 있겠는가?

 

노사와 생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도 옳지 않다

생하는 순간 사망하게 되고

양자가 원인 없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비단 윤회의 경우에만

궁극적 토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존재의 경우도

그 궁극적 토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P146~

 

자아에 대한 분석

 

만일 자아가 오온이라면

자아는 생멸하는 것이리라

만일 자아가 오온과 다르다면

자아는 오온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속한 것이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나와 나의 것이 사라졌기 때문에 무아의 지혜를 얻은 자라고 부른다.

 

안에서건 밖에서건

나라든지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사라지면

취착이 사라진다

취착이 사라지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는 일도 없게 된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때로는 ‘자아가 있다’고 가르치셨고

때로는 ‘자아가 없다’고 가르치셨으며

때로는 ‘자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아가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가르치셨다.

 

 

p156~

 

시간에 대한 분석

 

만일 과거의 시간에 의존하여

현재와 미래가 있다면,

현재와 미래는

과거의 시간대에 존재하는 것이 되리라.

 

만일 현재와 미래가

과거의 시간대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재와 미래가

어떻게 과거에 의존할 수 있겠는가?

 

과거에 의존하지 않는다면

현재와 미래의 두 시간대는

성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사물을 조건으로 삼아 시간이 존재한다면

사물을 떠나서 어떻게 시간이 존재하겠는가?

그리고 어떠한 사물도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시간이 존재하겠는가?

 

 

p166

 

인과 관계에 대한 분석

 

만일 원인과 조건이 결합하여

결과가 발생하는데

그런 결합 속에 결과가 존재한다면

어떻게 결합에서 결과가 발생하겠는가?

 

만일 원인과 조건들의 결합에 의해

결과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결과는 결합 속에 존재해야 하는데

결합 속에서 결과는 포착되지 않는다.

 

만일 원인과 조건의 결합에 의해

결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원인과 조건은

원인과 조건이 아닌 것들과 마찬가지인 꼴이 되리라.

 

만일 원인이 원인을 결과에 주고서

소멸하는 것이라면

준 것과 소멸한 것이라고 하는 그 실체가

두 개인 원인이 존재하는 꼴이 된다.

 

만일 원인이 원인을 결과에 주지 않고서

소멸하는 것이라면

원인이 소멸한 다음에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니

이런 결과는 원인이 없는 꼴이 될 것이다.

 

만일 원인과 조건의 결합과 동시에

결과가 출현하는 것이라면

발생케 한 것과 발생된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꼴이 된다.

 

만일 결과가 원인과 조건의 결합보다

먼저 나타나는 것이라면

그런 결과는 원인과 조건을 벗어난

무인의 결과가 되리라.

 

원인과 결과가 동일하다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원인과 결과가 다르다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p175~

 

여래에 대한 분석

 

여래는 오온도 아니고 오온과 다른 것도 아니며,

여래에서 오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온에 여래가 있는 것도 아니며

여래가 오온을 갖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여래이겠는가?

 

만일 오온을 취하지 않은 채

그 어떤 여래가 존재한다면

그는 이제 오온을 취하려는 희망을 갖고

오온을 취하여 존재하리라.

 

그러나 오온을 취하지 않으면

그 어떤 여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온을 취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자가

어떻게 오온을 취할 수 있겠는가?

 

 

*제2구 비판

 

-내림을 갖지 않은 비가 존재한다면, 그런 비가 내림이라는 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림이라는 작용이 없으면 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림이라는 작용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비가 어떻게 내림이라는 작용을 할 수 있겠는가?

 

-오온을 취하지 않은 여래가 존재한다면, 그런 여래가 오온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온을 취하지 않은 여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온을 취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여래가 어떻게 오온을 취할 수 있겠는가?

 

금강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만일 겉모습으로 나를 보려 하든지

음성으로 나를 찾으려 하는 사람은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이니

여래를 볼 수 없느리라.

 

여래이신 부처님의 모습이나 음성을 부처인 줄 알았던 사람은 부처를 제대로 분 것이 아니란 의미이다. 불전에서는 부처님의 몸에는 서른두 가지 특징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발바닥이 평평하고 몸은 금빛이며 치아가 가지런하고 혀는 길고 넓으며 목소리가 청아하고 정수리에는 상투가 있다. 그러나 이는 부처님의 외모일 뿐이다. 나의 겉모습이 참된 내가 아니듯이 부처님의 겉모습인 서른두 가지 특징 역시 참된 부처님일 수가 없다.

 

부처님의 오온 가운데 어느 하나를 부처님이라고 보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갖가지 번뇌만 생길 뿐이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다음에 어딘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도 그런 무지로 인해 생긴 번뇌일 뿐이다. 이를 용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잘못된 세계관에 사로잡혀

여래가 존재한다거나

여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분별하는 자는

열반에 대해서도 그렇게 분별하리라.

 

여래는 희론을 넘어선 분인데

사람들은 여래에 대해 희론한다

희론은 지혜를 파괴하니

그들 모두 부처님을 보지 못한다.

 

여래의 자성은

바로 세간의 자성이다

여래는 자성이 없으며

세간도 자성이 없다.

 

희론이란 온갖 망상분별을 의미한다. 그리고 망상분별은 어떠하다 어떠하지 않다 어떠하면서 어떠하지 않다 어떠하지도 않고 어떠하지 않지도 않다 의 네 가지 형식의 판단으로 표현된다. 열반 이후의 부처님의 존재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어딘가에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는 네 가지 판단 중 어느 하나는 선택하여 자신의 불교관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들 모두 망상분별일 뿐이다. 이런 판단들의 사슬을 풀어헤쳐야 여래이신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위 게송에서 말하는 자성이란 실테 또는 그 자체를 의미한다. 여래 그 자체가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 그 자체이다. 여래가 열반 후에 존재한다 든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분별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이 세상이 그대로 부처님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여래에 대해 그 어떤 규정도 할 수 없었듯이 이 세상에 대해서도 우린 그 어떤 규정도 할 수 없다. 여래도 자성이 없고, 이 세상도 자성이 없다. 여래도 공하고 이 세상 모든 것도 공하기 때문이다.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 타이핑 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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