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나는 살아 있는 인간이 가장 무섭다. 살아 있는 인간에 비하면 장소는 아무리 소름 끼쳐도 장소에 지나지 않고 아무리 무서워도 유령은 죽은 인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일 무서운 발상을 하는 것은 늘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요시모토바나나 <하드보일드하드럭>
삶이 어렵고 힘들다 해도 살다 보면 살아진다. 살다 보면 힘겨움에도 적응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일들도 겪다 보면 감당할 수 있는 것처럼 여져지게 된다. 알래스카의 혹한도 열대 지방의 무더위도 살다보면 적응해 살아갈 수 있다. 삶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란 없다. 다만 견딜 수 없는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박현욱 <아내가 결혼했다>
그가 행운을 가져다주는 마스코트를 만들 수 없게 되어도 나는 술장사든 뭐든 할 수 있고 가난도 두렵지 않다. 다만 두려운 것은 버드나무 가지가 햇볕을 쬐고 나서 다음 순간에 거센 바람에 흔들리듯이 벚꽃이 피었다가 지듯이 세월이 흘러간다는 것. 석양이 쏟아져 들어오는 이 방에 뒹굴며 비디오를 보고 있는 그의 등에 그리고 이 공기에 이별을 고하며 밤이 찾아오는 것. 그것만이 가장 슬플 뿐이다.
요시모토 바나나 <도마뱀>
세상이란 건요 행복의 모습은 대개 거기서 거기로 비슷하지만 불행의 모습은 제각각 다르답니다. 저마다 자기만의 특별한 고통을 짊어지고 있어요.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다 똑같아요. 그러니까 당신만 무슨 특별한 사람은 아니라고요. 만약 당신만 특별히 고통스럽다고 한다면 그건 그렇게 믿는 당신 스스로가 특별히 불행한 거예요.
아사다 지로 <파리로 가다>
우리들의 인생은 단순히 밝은가 어두운가 하는 것으로 쉽게 구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 어둠과 밝음 사이에는 그늘이라는 중간지대가 있잖아. 그 그늘의 단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 건전한 지성이야. 그리고 건전한 지성을 획득하려면 그 나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어?
무라카미 하루키 <어둠의 저편>
어째서 모두 이렇게까지 고독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든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고독해져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고 각각 타인의 내부에서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지금까지 고독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 혹성은 사람들의 적막감을 자양분으로 삼아 회전하고 있는 것일까.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
모아이가 중얼거렸다. 인간의 해악은 9볼트 정도의 전류와 같은 거야. 그것이 모여 누군가를 죽이기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 거지. 그래서 다들 다수인 척하는 거야. 이탈하려 하지 않고 평형으로 병렬로 늘어서는 거지. 그건 길게 오래 생존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야. 전쟁이나 학살은 그 에너지가 직렬로 이어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만 볼트의 파괴자가 남아 있을까. 학살을 자행한 것은 수천 볼트의 괴물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전쟁이 끝난 후에 남는 건 모두 미미한 인간들이야. 독재자도 전범도 모두가 실은 9볼트 정도의 인간들이란 거지. 요는 인간에게 그 배치를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이기가 있다는 거야. 인간은 그래서 위험해. 고작 마흔 한 명이 직렬해도 우리 정도는 감전사할 수 있는 거니까.
박민규 <핑퐁>
20140901-20230127 타이핑 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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