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 년전 가을 오후 J는 모아두었던 E의 시들을 펼쳤는데
아름다운 사람 외 일곱 편을 감상하고 있었을 때 자동로그아웃이 되어 시들이 몽땅 날아가버렸다
사랑하는 별 하나와 별의 여인숙과 티벳의 허르스름한 스님과 구름
가을 편지 외 날아가 버린 제목들
제목 하나가 남아 있긴 했는데 그 외에는 숙제로 남겨두었다
메모하지 않으면 금새 잊어버리는 기억력이란 너무도 황당하여서 열여섯 살 때 한 말을
기억해 준 친구를 두고두고 기억하기로 하였다
엊그제는 K 시인을 어제는 인상이 선량해 뵈는 K 시인을 생각했다
그 날은 인상이 선량해 뵈는 K시인의 시에 나오던 E 시인의 다른 시들을 작심하고 찾았던 것이다
그 시절엔 착한 시가 유행했으나 J는 낯가림이 심했다
오늘은 K 시인의 술래잡기를 감상하다가 노자와 공자를 떠올렸다
술래잡기 이야기를 이어서 더 하고 싶었다
울먹하고 아쉽고 아릿하고 그래서 내일엔 내일의 해가 뜬다는 노랫말처럼
내일엔 낯선 시 제목들이 다시 뜰 것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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