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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차림의 기적

미송 2022. 12. 8. 23:54

생각 쉬기

여러분은 의식입니다. 나도 의식입니다. 의식은 크기, 색, 모양, 위치가 없으므로 근거가 없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의식이 우리안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매우 협소한 관점입니다. 의식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식 안에 살고 있고, 우리가 곧 의식입니다. 우리의 의식은 끊임없는 놀이를 즐깁니다. 그런데 간혹 그 놀이가 의식 자신이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 것임을 잊은 채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헤매게 됩니다. 바로 그 망각이 갈등, 문제점, 투쟁을 낳고 끊임없이 반복되게 하는 근본적 망상인 것입니다.

하지만 의식은 깨달음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의식은 불현듯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고 망각에 의해 만들어진 족쇄를 끊을 수 있습니다.

의식이 광대한 놀이를 하는 가운데 망상과 알아차림이 모두 생깁니다. 알아차림이 생기면 해탈과 열린 마음과 사랑이 드러납니다.

반대로 의식에서 망상이 일어날 때는 악몽 같은 슬픔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근본에는 오직 의식만이 있을 뿐입니다.

깨달음과 얽매임, 행복과 괴로움은 모두 우리의 의식 속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망각에 빠진 의식상태인 망상으로부터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단지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은 망상에 빠졌을 때, 다시 깨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외적, 내적 조건을 취합니다. 이를테면 바른 가르침과 수행의 길에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랜 전통들에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참스승은 우리가 깨달음을 얻기만을 바랍니다. 참스승은 우리의 본래면목과 내면의 순수의식을 비추어 주는 맑은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고, 자신이 구원자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참스승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참모습 아닌 모든 것을 놓아 버리게 하는 여건을 조성할 뿐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순수 존재만 남게 됩니다. 그런 참스승을 만날 수 있다면 정말 큰 행운입니다. <중략>

티베트불교의 스승 짱빠 갸리는 "마음을 쉴 줄 아는 사람에게 지극한 기쁨이 찾아온다."고 말했습니다. '지극한 기쁨'이란 순수한 기쁨을 의미합니다. 알아차림이란 삶 자체이며 우리에게 끊임없이 자비를 베풀어 주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집중 명상은 가장 효과적인 수행입니다. 주의 집중 명상을 통해 우리는 판단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매 순간을 알아차릴 수 있고, 그 알아차림 속에서 우리의 의식은 쉴 수 있고 깨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바로 지금 이 순간 만물의 근거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알 때 우리는 반야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반야란 진리를 직접 보는 것, 직접 깨닫는 것입니다. 그 의식 상태가 곧 불성, 깨어난 마음, 순수 알아차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만물의 근거에 끊임없이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최고의 수행입니다.

만약 곧장 만물의 근거에 주의를 집중할 수 없는 경우에는 다른 대상에 주의를 집중하는 수행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문제를 지어내고 지속시키는 과정을 중단하게 할 수 있는 대상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의 가르침은 주의 집중 명상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것은 호흡, 소리, 성스러운 형상, 여러 가지 움직임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움직임이란 흐르는 강, 흔들리는 나뭇잎, 지저귀는 새, 소리들 사이의 고요 등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수행을 하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칠 줄 모르는 부지런함과 열의를 가지고 수행하는 동안 우리의 마음속에서 주의 집중 명상과 알아차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자라납니다. 그러면 우리의 내면이 놀라울 만큼 진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만간 우리의 전념도 진화합니다.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내면에서 알아차림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므로 이제는 주의를 집중하기 위해 애쓸 필요 없이 전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른바 깨달음의 여명을 보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아직 깨달음에 도달한 건 아닐 테지만 자유를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p121-130

 

진리와 잠깐 마주하기

대개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사실 마음이 지어낸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천을 짜듯이 윤회, 즉 마음속 괴로움의 세계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면 그것은 스스로 살아 움직이며 우리의 경험을 좌우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만 윤회라는 천을 짠 실을 잘라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의 힘은 그칠 줄 모르는 갈망으로 나타나서 그 실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윤회의 과정이 계속되게 합니다. (중략)

끊임없는 자기 집착이 멈출 때 깊은 통찰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 만물이 존재하는 방식, 공을 직접 보는 것입니다. 어떤이들은 공, 초월적 실상, 만물의 합일 같은 불교의 교리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만물의 합일에 대한 믿음은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최선의 믿음일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이란 여전히 관념적 지식일 뿐이므로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자아에 사로잡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뛰어넘어서 합일, 궁극적 진리, 시대를 초월한 붓다의 가르침을 직접 체험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쁨, 장, 해탈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더 이상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체험이 됩니다. 꿀을 맛보거나 기분 좋은 음악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건 없는 행복, 기쁨, 그런 여러 가르침에서 들었던 온갖 멋진 말들은 문득 아주 현실적인 것이 됩니다. (중략)

우리의 마음이 더 이상 생각에 얽매이지 않을 때, 끊임없이 슬픔의 세계인 허상을 지어내기를 멈추고 쉴 때, 진정한 내면의 쉼인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는 진리를 언뜻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진리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깊은 앎은 더할 나위 없는 해방감을 줄 수 있습니다. 드디어 큰 신비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붓다로부터 조건 없는 행복을 얻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그 순간까지 우리는 행복이란 늘 외부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행복은 밖에서 찾아야 하고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갑자기 우리 내면에서 고귀한 행복의 샘이 솟어오르고 넘쳐서, 그것을 우리 안에만 담아 둘 수 없게 됩니다. 즉 우리 안에서 샘솟는 행복을 세상과 나누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행복을 찾아 다니고 행복을 만들려고 애씁니다.

p135-143

 

실제 삶으로 깨어나기

우리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은 괴로움의 악순환을 멈추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모든 괴로움이 멈추기를 바라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불교에서는 반복해서 악순환 되는 인간의 괴로움을 끝내는 걸 매우 강조합니다.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바람입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괴로움을 끝내려고 지나치게 애씁니다. 또 그 생각에 늘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바람을 앞으로 십 년 혹은 이십 년 동안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있고, 그러면 괴로움을 끝내려고 애쓰는 것이 또 하나의 괴로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면증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불면증 자체보다 불면증을 걱정하는 것이 더 괴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대상보다 두려움 자체를 더 두려워하고 불안 자체를 더 불안해 하는 것과 같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바람이 유용하긴 하지만 그것이 괴로움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어떤 동기나 열망을 가져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동기와 열망은 바로 보리심입니다. '보리' 혹은 '붓다'는 '깨어난' 이란 의미이고 '시타'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보리심이란 '깨어나려는 바람이나 마음'을 의미합니다.

'깨어나다'란 말은 경전에 나오는 말 중에 가장 시적이고 아름다운 말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날 때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 기적 같은 이 세상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우리는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꽃향기를 맡습니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함께 춤을 추고, 때론 먹구름도 춤을 춥니다. 아침은 그 완전한 순간에, 바로 그 순간에 밤새 우리를 괴롭혔던 악몽은 끝납니다. 우리가 깨어나는 순간은 그토록 아름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면에서 깨어남을 이와 같은 이른 아침의 깨어남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후 삶이 시작되고, 그 삶에는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가 가득할 것입니다. (중략)

명상이란 진정한 삶으로 깨어나는 것입니다. 인위적이거나 관념적인 삶이 아니라 신비적이고 동시에 마술적인 삶으로 깨어나는 경이로운 것입니다. 삶은 초월적 실상입니다. 왜냐하면 삶이란 있는 그대로 본래 경이롭고, 기적적이고, 성스럽다는 것을 이성적인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삶은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p187-192


20221208 타이핑 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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