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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그린 <인간 욕망의 법칙>

미송 2022. 9. 5. 15:32

 

 

어느 누구에게도 헌신하지 마라

관계의 기술

 

서둘러 편을 드는 사람은 바보다. 어느 한쪽이나 대의명분에 헌신하지 마라. 오직 당신 자신에게 헌신하라. 독립을 유지함으로써 무리의 주인이 될 수도 있다. 자기들끼리 싸우게 하고, 결국 당신을 따르게 만들어라

 

법칙 준수 사례

엘리자베스 1세의 결혼 정책

 

1558년, 엘리자베스 1세가 잉글랜드의 왕위에 올랐을 때, 여왕의 배우자를 찾는 문제가 온 나라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여왕의 배필로 손색이 없는 후보자들이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그녀는 구혼자들을 뿌리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서두르지도 않았다. 1566년, 의회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결혼하여 후계자를 낳아달라고 간청했다. 여왕은 그들과 논쟁하지도 않았고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도 않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처럼 구혼자들을 상대로 미묘한 게임을 벌이자 그녀는 남자들의 성적 환상과 숭배의 대상이 되어갔다. 그녀는 ‘세계의 여제’ 또는 ‘저 정결한 처녀좌’로 불렸는데, 그것은 그녀가 세계를 지배하고 별들을 움직이게 한다는 의미였다. 그녀는 구혼자들의 관심을 계속 자극하면서 동시에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유럽 전역의 왕과 공작들은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결혼이 양국의 동맹을 보증해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페인 국왕과 스웨덴의 공작, 오스트리아의 대공이 성혼을 시도했다. 그러나 여왕은 정중하게 그들의 구애를 모두 거절했다.

 

당시 잉글랜드에서는 스페인 영토였던 플랑드르와 네덜란드의 반란이 중요한 외교적 현안이었다. 잉글랜드는 스페인과 동맹을 깨고 프랑스를 유럽 대륙의 주요 동맹으로 택함으로써, 플랑드르와 네덜란드의 독립을 부추켜야 할 것인가? 1570년이 되자 프랑스와의 동맹이 가장 현명한 방책으로 보였다.

 

프랑스에는 결혼 상대로 적합한 두 명의 귀족이 있었다. 앙주 공작과 알랑송 공작으로, 둘 다 프랑스 국왕의 동생이었다. 양쪽 모두 장점이 있었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두 사람 모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했다.

 

결혼 문제는 해를 거듭해 계속 화재만 들끓었다. 앙주 공작은 여러 차례 잉글랜드를 방문해 대중들 앞에서 여왕에게 키스하게 했고, 그녀를 애칭으로 부르기까지 했다. 여왕도 그의 애정에 답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그녀가 두 형제와 연애 행각을 벌이는 동안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조약이 체결되었다. 1582년에 여왕은 구혼자들로부터 벗어나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여왕은 단지 외교 문제 때문에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남자의 구애를 견뎌내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의 평화가 확보되자, 여왕은 간살스러운 공작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 무렵부터는 여왕도 나이가 들어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됐다. 그녀는 남은 생애를 자유롭게 살다가 처녀 왕으로 생을 마감했다. 여왕은 비록 후계자를 낳지 못했지만, 평화롭고 문화적으로도 풍요로운 시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해석

 

엘리자베스 여왕이 결혼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사촌인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실수를 직접 보았던 것이다. 여자가 통치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스코틀랜드인들은 메리가 결혼하기를, 그것도 현명하게 결혼하기를 바랐다. 국민은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또 특정 귀족 가문과 결혼하면 끔찍한 대립 관계가 촉발될 위험이 있었다. 결국 메리는 같은 가톨릭교도인 단리 경을 선택했다. 그러자 스코틀랜드 개신교도들이 반발하면서 혼란스러운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다.

 

엘리자베스는 결혼이 자신을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혼은 자신을 하나의 파벌이나 국가에 얽매이게 할 것이다. 분쟁이 일어나 여왕을 몰락시키거나 아니면 무익한 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또한 단리가 메리를 권좌에서 제거하려고 했듯이 여왕의 남편이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어 여왕을 제거할 지도 몰랐다. 엘리자베스는 통치자로서 두 가지 목표를 갖고 있었다. 결혼하지 않는 것과 전쟁을 피하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동맹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미끼를 계속 흔들어댐으로써 두 가지 목표를 달성했다.

 

 

권력의 열쇠

어느 누구에게도 헌신하지 마라

 

권력을 유지하려면 이미지를 강화하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구속되지 않는 것이 그런 기술 중 하나다. 당신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있을 때, 상대는 당신에게 존중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 그 순간부터 당신은 강력한 존재로 보이게 되는데, 이는 대부분 사람과 달리 집단이나 관계에 굴복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을 만큼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권력의 후광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력해진다. 당신의 독립성에 대한 명성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당신을 갈망하게 된다. 갈망은 전염병과 같다. 남들이 갈망하는 사람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당신이 한쪽을 향해 서약하는 순간, 마법은 사라진다. 당신은 여느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존재가 된다. 사람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당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선물을 주고 온갖 호의를 베풀며 자신에게 구속시키려 할 것이다. 그들의 배려를 장려하고 관심을 촉구하라. 하지만 절대 서약은 하지 마라.

 

하지만 기억하라. 목표는 사람들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을 정하기 어려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경우처럼, 당신은 냄비 속을 휘저으며 흥분 상태를 유발하고, 그들의 기대감을 빼앗지 말고 사람들이 몰려들게 해야 한다.

 

때로는 사람들의 관심에 마음을 쏟아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너무 멀리 나가서는 안 된다. 냉담한 태도를 유지하라. 그러면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그들에게는 당신의 관심을 따내는 일이 도전 과제가 될 것이다. 당신이 구애자들의 희망을 계속 자극하는 한, 당신은 관심과 욕망을 끌어들이는 힘을 계속 유지하게 될 것이다.

 

 

뒤집어보기

 

이 법칙을 너무 멀리까지 추구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이 게임은 너무나 민감하고 까다롭다. 너무 많은 도당을 부추켜 서로 반목하게 할 경우, 그들은 당신의 속셈을 꿰뚫어 보고 모두가 합세하여 당신을 상대하게 될 것이다. 구애자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할 경우, 당신은 갈망이 아니라 불신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흥미를 잃게 된다. 결국 당신은 현상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한쪽에 헌신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내리게 될지도 모른다. 외형적으로나마 당신도 애정을 줄 수 있는 사람임을 입증하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판단될 때 말이다. 그런 상황에도 내적 독립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려라.

 

p198-202

 

 

적당한 때를 기다려라

물러날 때와 나아갈 때

 

결코 서두르는 것처럼 보이지 마라. 서두르는 모습은 당신 자신과 시간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다. 항상 모든 일의 향방에 대비한 사람처럼 침착한 모습을 보여라. 늘 시대정신과 트렌드를 추적하며 적절한 시점을 찾는 탐정이 되어라. 때가 무르익지 않았으면 물러서 있고, 때가 되었으면 강력하게 나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

 

법칙 준수 사례

타이밍의 달인, 푸셰

 

조제프 푸셰는 프랑스 신학학교의 별 볼 일 없는 교사였다. 하지만 그는 교회 일에만 매달리지 않았고, 사제 서약을 하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더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그는 조용히 기회를 기다렸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때 푸셰는 성직복을 벗어던지고 혁명가가 되었다. 푸셰는 혁명파의 지도자 로베 스피에르와 친분을 쌓아 반란군에서 금세 높은 지위에 올랐다. 1792년 낭트시는 푸셰를 대표로 선출해( 프랑스 공화국의 새 헌법을 기초하기 위해 구성된) 국민공회에 보냈다.

 

푸셰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혁명 세력은 온건파와 급진파로 분열되어 있었다. 푸셰는 장기적으로는 그 어느 쪽도 승리하지 못할 것을 간파했다. 권력은 혁명을 시작한 자에게나 심지어 혁명을 가속화한 사람들 손에 들어가는 법이 거의 없다. 권력은 혁명을 끝맺는 자에게 붙는 법이다. 푸셰는 바로 그편에 있고 싶었다.

 

타이밍을 잡는 푸셰의 솜씨는 절묘했다. 처음에 푸셰는 온건파로 시작했다. 온건파가 다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이 16세의 처형 여부를 결정할 때에는 시민들이 왕의 머리를 열렬히 원한다는 걸 알고 결정적인 표를 던져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올렸다. 이에 너무 가까이 붙으면 위험하다고 판단해 한동안 시골의 한직으로 물러나 지냈다. 그리고 몇 달 후 리옹의 총독에 임명되어 귀족 수십 명의 처형을 지휘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살육을 잠시 멈추었다. 분위기의 변화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리옹 시민들은 그가 이미 살육에 가담한 전력이 있는데도 공포정치에서 사람들을 구했다며 그를 칭송했다.

 

이제까지 푸셰가 내놓은 패는 시의적절했다. 하지만 1794년 그의 오랜 친구 로베스피에르는 푸셰가 위험한 야심을 품은 자라고 공개적으로 비방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푸셰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로베스피에르의 독재에 염증을 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지지를 확보해나갔다. 푸셰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해 온건파와 급진파 모두의 지지를 결집했다. 모두가 다음번에는 자신이 단두대에 오르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7월27일, 국민공회에서 로베스피에르는 반대파 숙청을 위한 연설을 시작했다. 그러나 공회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바뀌어 로베스피에르는 “독재 타도”를 외치는 의원들의 반발에 둘러싸였고, 바로 이튿날 공포정치의 주역들과 함께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로베르스트가 처형된 뒤에 국민공회에 돌아온 푸셰는 뜻밖의 패를 내놓는다. 로베스피에르에게 대항한 반역을 이끌었으니 사람들은 그가 온건파에 가담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로베스피에르를 처형시키고 이제 막 권력을 손에 넣으려 하는 온건파가 이번에는 급진주의자들을 상대로 새로운 공포정치를 펼칠 것임을 직감했다. 자코뱅당 편에 서는 것은 앞으로 닥칠 곤경에서 순교를 선택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푸셰는 대중을 선동해 온건파에서 등 돌리게 하고, 온건파가 권좌에서 떨어지는 그날까지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1795년 12월 온건파가 푸셰를 단두대에 보내려 체포를 명했지만 이미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사람들이 이제 처형을 반기지 않았던 것이다.

(중략)

 

해석

 

조제프 푸셰는 격변기 속에서도 예술적 경지의 타이밍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핵심적 교훈을 가르쳐준다. 첫째, 시대정신을 읽어야 한다. 푸셰는 항상 한 발 앞을 내다보고 권력을 잡게 해줄 조류를 찾아 거기에 올라탔다. 둘째, 대세를 감지한다고 해서 반드시 거기에 따라갈 필요는 없다. 강력한 사회적 움직임 위에는 막강한 반동이 일어나게 마련인데(로베스피에르가 처형된 후 푸셰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 반동이 어떤 것일지 예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푸셰는 인내심이 대단했다. 인내심을 창과 방패로 삼지 않으면 타이밍을 잘 잡아도 실패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빨을 드러내고 공격해야 할 순간도 알아야 하지만, 풀숲이나 바위 밑에 몸을 숨겨야 할 때를 알아야 하는 법이다.

 

권력의 열쇠

적당한 때를 기다려라

 

시간을 요령 있게 다루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아이들의 시간은 길고 느리며 쉽게 늘어난다. 반면 어른의 시간은 쏜살같이 빨리 지나간다. 즉 시간은 지각(知覺)하기 나름이며, 지각은 뜻대로 조정할 수 있다. 타이밍을 잡는 달인이 되고자 할 때 숙지해야 할 첫 번째가 이것이다. 감정으로 인한 내부의 소용돌이 때문에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이라면, 사건이 터졌을 때 감정적 반응을 조절하면 시간이 훨씬 더 천천히 흐른다는 결론이 나온다. 일을 이런 식으로 대하면 앞으로의 시간이 더 길게 느껴져, 두려움과 분노로 꽉 막혀 있던 가능성이 열린다. 더불어 타이밍을 잡는 데 꼭 필요한 기본기인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다.

 

타이밍을 잘 잡으려면 세 가지 시간을 다룰 줄 알아야 하는데, 각 상황마다 발생하는 문제의 해결에는 기술과 연습이 꼭 필요하다. 첫째는 ‘긴 시간’이다. 지루하게 늘어지고 몇 년이 걸리는 일은 인내심과 세심한 계획을 갖고 관리를 해주어야 한다. ‘긴 시간’을 상대하는 일은 대부분 방어적 양상을 띤다. 이때는 충동적인 반응보다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강요 시간’이다. 상대방을 서두르게 하거나, 기다리게 하거나, 페이스를 잃게 하거나, 시간관념을 왜곡시켜 타이밍을 못 잡게 하는 것이 강요 시간의 요령이다. 이 단기간의 시간을 공격 무기로 활용하여 적이 타이밍을 못 잡게 할 수 있다. 마지막은 ‘마무리 시간’으로 속도와 힘을 갖추어 계획을 실행시켜야 하는 때를 말한다. 지금까지 기다려 절호의 순간을 찾아냈으니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멋지게 인내심을 발휘하고도 두려움 때문에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뒤집어보기

 

일이 굴러가는 대로 놔두고 그저 세월에 순응해서 얻을 수 있는 권력은 없다. 어느 정도 시간을 관리하지 않으면 당신이 시간에 가차 없이 희생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이 법칙에는 반증 사례가 없다.

 

p212-218

 

타이핑_ 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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