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수필] 잠들기 전, 누군가를 위하여

미송 2009. 8. 27. 01:35

 

잠들기 전, 누군가를 위하여


“그대는 아이와 같이 되려고 애쓰되 아이들을 그대와 같이 만들려 애쓰지 말라." 는 칼릴 지브란의 예언이 어제 오늘 정곡을 찌르고 있다. 그렇다 해도 너무해, 어떻게 그럴 수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고 했는가“ 가 아니라 ”누가 아이들을 순수하다 했는가“ 가 따져봐야 할 문제다. (깊은 밤 잠 못 이루며) 아이들과 지낸다는 소식을 접한 군대 간 아들 녀석이 킥 웃으며 “엄마 아이들 말 안 듣는다고 꼬집지는 마세요.” 하고 한마디 날렸다.“뭐라.....”

아들은 자기가 자랄 적 엄마에게 꼬집힌 기억이 되살아 났나보다. 배 아파 낳은 자식도 징하니 말 안들을 때가 있었다. 그게 엊그제 일이다. 미운 일곱 살 하고도 초등학교 3~4학년 때까지 그랬다. 그 때, 왜 그렇게 시키는 대로 안 하고 고집만 부리냐고 야단을 치는 도중
볼따구니를 쥐고 흔든 적이 있긴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제 성질에 못 이겨 아이를 때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닐 것이다. 분명하다.
아무튼지 간에 말 안 듣고 말썽피운 일은 입 싹 닦고 꼬집힌 기억만 꼬집듯 얘기하니(물론 웃으며 말했지만) 졸지에 자격지심이 동하여 소리의 뼈를 감지한 나는 “그땐 정말 미안했어... 미안해.....” 라고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것이 아직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면 우스갯소리처럼 저렇게 말하진 못할 텐데, 아이가 어느덧 많이 컸지 싶어 스스로 위안을 삼긴 했으나 그래도 미안한 마음, 자식을 향한 사죄는 무조건이었다.    

“칫, 지들만 욕 잘하는 줄 아나…….” 저녁식사 시간에 아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간 후 5학년 선생님에게 슬쩍 귓속말을 건넸다. “그러게 말예요, 쟤네들 아마 우리가 얼마나 다양하게 욕 할 줄 아는지 상상도 못 할걸요.” 덩치 큰 머슴애들에게 밀려 가끔씩 얼굴이 파래지는 스물네 살 선생님은 한 수 더 떴다. 자기들 방식대로 고집하다 안 되면 툭툭 뱉는 말이 ‘싫어요’ ‘몰라요’....대개가 그렇고 그러다 장난처럼 욕을 하는 아이들이 이해가 안 된다. 실은 무섭다. 어디서 저 욕을 다 배웠을까 궁금하다. 아무리 나쁜 건 빨리 배운다지만 그 앙증맞은 입에서 튀어 나오는 욕은 속수무책이다. 거짓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귀띔해주지 않으면 귀여운 여자애가 그렇게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줄 영 모를 것이다.

“그래, 넌 너무 관념적이고 추상적이야.” 스스로를 힐문하며 아이들에게 품었던 높은 기대와 부푼 꿈을 접는다. 통학버스 안에서 중학생 누나에게 욕하는 남자 아이를 보고 “얘 너 무지 잘생겼는데 왜 그렇게 거칠게 욕을 하고 그러니?” 하자 “제가 언제 잘 생겼다고 그랬어요...”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뒷다리 긁는 소리 같기도 하고 맞는 말 같기도 하나 황당하긴 마찬가지. 꾸지람의 초점은 욕 하지 말라는 거였는데 녀석은 교묘하고 이기적인 동문서답이다. 대체로 아이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을 옹호한다.

때로는 너댓명이 뭉쳐서 옹벽을 쌓기도 한다. 자기들의 권력을 키워야 한데나 뭐라나. 비겁한 어른 뺨치는 행동거지가 우습기도 하고 가엾기도 하여, “얘들아, 너희들 의사와 인권은 존중해 줄 테니 그런 시위적인 방법보다는 대화를 나누면서 목적을 이루는 게 어떻겠니…….”  “언제부터 그렇게 해 줄 건데요...?” “내일부터 새롭게 행동하기로 약속하자...응” 아이들 반응이 하나같이 잠잠했으나 그것이 ‘예스’라고 단정짓기엔 이르다. 영화 해운대에 나오는 쓰나미의 폭풍 전야인지 누가 감히 추측하랴. 그러나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겠거니(아주 구체적인 태양이 떠오르기를 바라며) 내 나름의 기대를 반쯤 접으며, 꿈속에서라도 내 아이들 만나면 설레일꺼야 하는 마음을
침실까지 품고 가는 것이다. 이제사 한 풀 꺾인 아이처럼 자러 가는 것이다.  
  
2009. 8. 27 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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