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란 문학실

[소설] 두개의 房

미송 2009. 8. 29. 22:44

두개의 房 / 오정자

 

 

 

내 방이 가장 편안하다. 앉은뱅이 책상을 쓸 때부터도 난 내 방이 갖고 싶었다. 결혼 후 자신을 위해 할애할 시간을 잃어간다고 느꼈을 때도 내 방이 갖고 싶었다. 어느덧 내 블로그가 방이 되었다. 사이버 방, 가을하늘의 에두벌룬처럼 빵빵한가 싶은 공간. 방의 다른 이름은 20년 전부터 꿈꾸던 '나만의 공간'. '나만의...' 란 아주 불친절한 표현인줄 알면서도 그렇게 고집하려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대해 오랫동안 느낀 이후에도 또 다른 '나' 가 남았기 때문이다.

 

그 '나' 가 악몽의 바닷길을 걸었다. 어젯밤 일이다.

 

작년 1년 내내 우리가 왕래하던 그 바닷길을 다시 여행했다. 그리고 그 바리스타가 있는 까페는 그냥 지나쳤다. 사천 못 미쳐 경포 끝자락 솔밭에서 텐트를 치고 새벽 3시에 잠이 들었다. 잠들기 전 큰 바람이 텐트를 훌렁 걷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그래도 잤다. 어두운 바다. 그림자가 비치면 두려울 것 같은 왠지 공포 영화의 피해자가 될 것 같은 상상도 일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닝벨소리도 못 듣고 자다가 열시가 되어서야 텐트속으로 스며든 빗물을 보았다.

 

눈을 뜨고서 던진 나의 첫 물음은 "당신 몇 살이예요?" 였다

 

"나, 세븐틴..."

 

구애의 표시로 귀여움을 떨듯 그가 열일곱이라는 제스처를 보내왔다.

 

그가 요즘 삭발을 했다. 머리를 깍고나니 세상사가 시원하게 풀리는 기분이라고 리바이벌을 했다. 머리 감을 때 린스를 안 해도 되고 무엇보다 염색을 안 해도 되니 것만 해도 얼마나 경제적이냐고 삭발이후 돌아온 수혜의 가짓수에 대해 연구 자세를 보였다.

 

" 염색비 걱정 안하는 열일곱이라고, 쳇……."

 

바다를 찾기까지 나는 바다에 대해 불변할 환상을 갖고 있었다.

어젯밤 2시부터 불어 닥치던 바닷바람은 공포를 주었다.

두개의 몸 가지런히 누일 텐트를 단숨에 덮쳐 물속으로 끌고가는 건 아닐까.

 

특별히 잘난 체 한 적 없는 우리일텐데 혹여 바다가 콧구멍만한 공간마저 아싸리 삼켜버리는 건 아닐까. 그렇게 걱정했지만 아무 일 없이 우린 아침을 맞이했다.

 

성철 스님의 유언처럼 산은 산이고 바다는 바다였다.

 

악몽의 바다라고 말한 건 잘못이었다. 덤덤한 물체 앞에 경망스런 형용구를 놓은 건

내 맘일 뿐이었다.

 

범죄 심리로 말하면 자신이 범행한 장소를 한 번쯤 돌아가 보려는 것일테고

연애심리로 말하면 추억의 장소를 다시 밟아보려는 낭만이었다.

그의 말대로 열일곱 살짜리 비행이후 소년 소녀적 쾌감이라고 하자.

 

불완전함으로 완전함을 흉내내지 않겠다. 다만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듣기에 따라선 진실일수도 허구일수도 있다는 의미다. 시간이란 조각구름이다. 그 구름 속 구름 구름 원자 중에서도 지극히 단편일 뿐인 시간은 내 방만큼 작다. 시간도 이야기도 내 방도 작고 불완전하다. 꾸우벅 인사를 올려야 할 것 같다. 비로소 겸손하게. 누구에게 인사 할 건가. 내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의 하나님께 아니, 불완전하고 작은 방 하나 갖게 해 준 그에게. 다만 머리를 조아린다. 

 

*

 

 

"야 씹할 년아 쇼핑하러 갔다가 왜 1시간이나 늦게 오는 건데...? "

"어디서 뭘 했어, 누구랑 뭐하다가 온 거야……."

그는(여기서 그는 B라고 부르자) 20년이 넘도록 신뢰를 주지 못했다. 물론 받지도 못했다. 그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도구는 다만 '씹' 이었다. 내 이름도 그래서 오라질 '씹할 년'이었다. 그에게 귀속될 경우에는 영원한 호칭으로 남게 될 주홍글씨 하나.

B는 과연 나다니엘 호오든이 쓴 신부였을까.

 

살인의 충동으로 밤잠을 설치며 독주를 마시던 한 정신과 의사를 본 적이 있다.

보았다기 보다 읽은 적이 있다. 중학교 때부터 그의 꿈은 정신과 의사였다. 당시 그의 할머니께서 정신과 의사가 되면 환자들한테 몽둥이로 맞기도 하고 뜬금없이 불려 다니기도 한다는 염려스런 말씀을 하셨다. 그 말에 그는 내 몽둥이로 미친것들을 더 패주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 얼토당토안한 말을 읽으며 농담이겠지 했다. 그 후 몇일이 지나 사선인지 빗금인지 비가 무지무지 내리는 밤 독주를 많이 마신 그가 비틀대는 모습을 보았다. 중학교 때 한 말보다 더 쇼킹한 그의 모습이었다. 정작 그의 실체가 저것이었다면 그에게 속한 환자들 (가끔 크리스마스 때나 송년회 때 테이블에 둘러 앉아 정답게 웃고 있는 환자들과의 모습을 사진으로 올려놓았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의 아내는 뉴욕 한인방송 음악 살롱 코너의 앵커였다. 세컨드처럼 아주 젊어보였다. 두 번째 부인이었다. 생머리에 싱싱한 허리선이 난쟁이보다 조금 더 큰 그의 키를 훌쩍 넘어 보였다. 퇴근하여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도 발작하며 난동을 부리는 환자가 있으면 병원으로 달려 나갔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환자를 돌보러 나간다는 건 모두 거짓말이었다. 일찍 귀가하지 않는 아내가 미워서 다른 여자와 습관처럼 포르노 찍기를 하다가 아내가 돌아온 기척을 느꼈기 때문에 나간 것이다. 나는 그의 이야기 읽기를 끝낼 무렵 그가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정신병자라는 착각이 들었다. 스틱 폿. 막대기란 뜻이 담긴 그의 공유이름이 섬뜩하다. 사실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사람들 세계 그리고 무지하게 용감한 이야기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30대 에이즈 감염 환자가 자신의 택시에 탄 여자 손님들 수십 명과 성관계를 가졌다. 그러고 나서 무모한 범행을 고백했다. 무슨 심보로 그랬을까 더 이상의 분석이 필요 없다. 그러나 나는 독주에 의존했던 그 정신과의사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야 겠다. 그는 젊은 아내를 바늘이나 칼로 폭폭 찔러죽일 듯 미워했다. 미움이 살인의 욕구로 둔갑하는 건 당연하고 그 욕구불만이 치환되어 뭇 여성과 환자들을 향해 막대기로 휘둘러졌다.

 

'세상에 모든 여자들은 나의 어머니이자 자매이자 딸이다' 라는 선량한 구호가

'세상 모든 여자들은 화냥년이고 미친년‘이라는 특수 구호로 바뀌었다. 뉴욕 맨하탄에 사는 그 정신과 의사에게만은 그랬다. 선악이 한 끝 차이이듯 정상의 기준도 그렇다. 정신과 의사의 병은 젊고 아름다운 아내에 대한 의처증에서 시작되었다. 30대 에이즈환자에게 몸을 허락한 수많은 유부녀들, 파렴치한 허깨비로 떠돌 무형의 몸들, 서글프다. 간략히 말할 수 없는 틀에 갇혀, 그녀들 지금이라도 해방을 꿈꾸기나 할지. 어느 별 한 귀퉁이에서라도 저 홀로의 빛을 찾아가길 바란다.

 

 

 

 

"어떻게 보이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고 떠들지"

그의 신에 대한 견고한 믿음에 대해 나는 늘 의구심을 가져왔다.

오랜 의구심의 결과 나는 B가 신은 커녕 자신조차 믿지 못하며 살고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쉬운말로 떠들었지. 사랑 사랑 사랑. 너가 사랑이라면 난 차라리 미움을 택하겠다.

사랑보다 더 중요한 신뢰, 그 부재는 자기 분열을 가져온다.

 

자기 말만 떠들고 자기 말만 옳다는 고질적인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신경증을 앓는다.

 

물론 상대적인 인간에게 있어 가장 믿을 수 없는 게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연민하는 마음으로 견디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합병증은 잔인하였고 밤샘의 시달림을 전제했으므로 더 이상의 보시활동을 단호히 접었다. 단호하게 보이는 것만큼 진통과 예비시간은 길었다. 극단으로 보이는 것들의 결합이 오히려 자연스런 일이 되었다. 단호한 결정이 피상에 그치지 않는 한 내겐 목숨을 건 일이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말한다. 지금 이 곳은 8월의 막바지 여름바다가 누운 곳.

 

2012년 7월 22일은 세계여성독립기념 5주년이 되는 날이다. 법적 허가증을 받게 된 12월은 변함없이 겨울일 테고. (젠장 12월이 겨울이라는 건 세 살짜리 계집애도 안다) 부메랑처럼 날아드는 시간을 인간은 미래라 부르고 미래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인지를 예전처럼 똑같이 묻는다.

 

 

*

 

비가 언제 그쳤는지 모른다. 전날 밤 열한시가 넘어 집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한 시간 반의 주행은 고단함을 몰고 왔다. 거친 바람소리를 들으며 빗방울이 후드득 텐트를 때리는 걸 알면서도 더 이상의 방어할 의지 없이 잠에 빠졌다. 단잠이었다. 흙의 냉기에 쏘였는지 소변을 볼 때 눅눅한 기운이 휴지에 묻어났지만 체증이 가라앉은 몸은 가볍고 상쾌했다. 파도소리가 여전히 거센 아침, 모닝커피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그가 담배한대를 입에 물었다.

 

"당신은 아무래도 엄마 젖을 제대로 못 빨고 자랐어……."

 

흙빛인 아침바다가 흐린 하늘에 반사되어 더 짙게 출렁이고 있었다. 그는 그런 바다의 움직임을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날아가는 담배연기의 향방을 살폈다.

 

나도 그의 입모양을 흉내 내다 커피 자판기가 어디 있을까 야영장 밖을 기웃거렸다.

 

"촌동네... 여기는 매양 이렇게 발전이 늦어"

커피에 중독된 우리는 썰렁한 여름 바닷가에 앉아 괜스레 투덜대기 시작했다. 청정도시니 어쩌니 하면서 정겨운 포장마차는 다 걷어내고 전기세도 나올까 말까한 번듯한 횟집들만 즐비하게 살려 놓았으니 하며, 바닷가를 정 떨어진 표정으로 바라봤다. 시장을 3선이나 해먹으면서 서민들 장사꾼들 다 울려놓고 아작을 낸 돼지 한 마리의 비리에 대해 씹어댔다.

 

프로이드의 이론적 바탕에는 늘 성적인 부분이 깔려 있다. 그는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다(the child is father to the man)"라고 말했다. 이 말은 아이가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란 뜻이다. 5세경에 이미 개인 성격의 토대가 형성된다고 주장한 프로이드는 성적 충동에 따른 발달단계를 기술하였다. 즉 성적 충동이나 성적 에너지는 발달단계에 따라 특정 신체부위에 집중된다는 심리성적 단계이론이다.

 

프로이드는 각 발달단계마다 독특한 목표가 있다고 가정했다. 이러한 목표를 해결하는 방법이 성격을 형성하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고착'이다. 한 발달단계에서 욕구가 지나치게 만족되거나 좌절될 때 고착이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고착이 일어나면 고착된 욕구를 지나치게 강조하게 된다. 태어나서 2세까지는 깨물고 빨고 삼키는 행위로 성적욕구를 충족한다. 프로이드 학파의 한 갈래에 있었던 에릭슨이란 학자는 신체가 무척 왜소하였다. 지난 여름 강의시간에 에릭슨의 열등감에 대해 들으면서 나는 에릭슨이 그래서 스승인 프로이드와 대립된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을 내 놓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내 소설 속에다 갑자기 프로이드의 이론을 끼워 넣는 이유는 담배연기의 자극 때문만이 아니다. 사람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 중 가장 해로운 기호식품이 담배라는 걸 인정하지만 그 보다 더 오염스러운 건 역시 입 밖을 떠도는 검은 잎들의 유영이다. 양귀비를 종이에 싸고 돌돌 말아 입으로 빨고 삼키고 한들 그것은 자신의 몸을 파괴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입 밖을 나와 낙인이 되어 돌아다니는 단정적인 의식과 그에 딸린 언어들은 자신의 열등을 넘어 대인의 피를 빠는 흡혈귀 같은 것이다. 물론 흡혈귀들은 자신의 정체를 자신도 모르게 숨기며 산다. 고착된 흡수력은 요망한 달이 바닷물을 한껏 부풀려놓는 것과 비슷하다. 발정 났을 때만 수컷을 찾고 새끼를 낳은 후엔 여권의 세계를 수호하는 암컷 코끼리 같은 행위다. 성교가 끝나면 수컷을 잡아먹는 암 사마귀도 그렇다. 세상이 제 고집대로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하는 어린애나 여자들은 인권보호의 대상이자 지구상의 가장 우울한 집단이다. 다이내믹한 시간을 벌어들이려고 드세게도 살아간다. 포기를 모르는 돌진만이 생존전략인 존재들,

 

"우리나라 여자들 드센 건 세계적이지...."

 

툭하면 배신을 당했니 남자로부터 사기를 당했니 하면서도 원형적으로 그렇게 생겨먹은 여자는 또 다른 남자에게로 달려가 같은 방법으로 빨고 기대고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절이나 교회에 가면 70프로 이상이 여자다. 우리나라 1500년 불교사에서 나타난 고려시대 사찰들의 타락의 행태가 요즘 교회라는 조직 속에서 뚜렷하게 재현되고 있다. 세속화는 허용해도 세속주의는 안 돼요. 언제 적 개풀 뜯던 신학자들 소린가. 이미 자본주의로 물든 성직자와 교회가 돈 아니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차라리 길거리에 나가 비렁뱅이 옷으로 구도를 하든지 리어카 행상을 벌이던지 더는 이래선 안 된다. 타락을 전제로 한 부흥이 악취를 거두지 않을 때 드센 척 저항하는 것은 바보 짓이다. 안개처럼 실종하자.

 

*

 

대관령 정상에 오르면 유월도 간간 눈밭이다. 풍력을 이용하려는 날카로운 풍차가 휭휭 공중곡예를 한다. 그리고 그 곳은 다시 안개로 희미하다. '엄마를 지켜줘' 라는 책 제목을 매스컴에서 한창 떠들기 시작할 그 무렵  고샅길을 넘던 나는 그 곳 안개에 휩싸인 자동차 핸들을 꽉 잡은 채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명징해지는 거리가 실제의 거리라고 믿었다. 순간 하늘과 땅의 간극이 사라지고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딱, 하며 불러도 좋을 낮은 하늘이 열렸다. 그 때 모세가 들었다던 시내산의 음성이 내게도 울려 퍼졌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 4악장 환희가 짚시치마폭에 싸여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차마 눈뜨고 못 볼 일이란 없다. 그러나 눈 감았을 때만 보이는 세계도 따로 있다. 한 번 더 눈 먼자가 되는 것이 확실히 눈을 뜨는 한 과정이기도 하였다.

 

"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이란 스님의 꿈이야기 말이야...." 

 

현실이 실재하는 한 악몽을 곱씹는 일도 계속된다.

그가 지난 한 해 바닷가를 배회하며 힘겨워했던 일을 되뇌었다.

그것은 필시 악몽이었다. 상처 입은 한 여자를 경영하는 일은 역행을 꿈꾸다 서까래에 맞고 깨어났을 때 느꼈을 악몽이었다. 미안하다. 과거는 한 고비의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에 이슬처럼 말끔히 사라질거라 여겼으나 사금파리로 살아온 자에게 새로운 꿈이란 야수의 먹이일 뿐이었다. 의식이 몸의 이동을 못 쫓아오는 불행을 일일이 겪어내야 하는 시간을 차라리 미래라고 못 박고 싶었다. 그리고 내 비통함에 눈길 하나 주지 않는 인간들을 증오했다. 세계는 오로지 자기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쳇바퀴인 냥 고집불통의 교활한 교황들은 곳곳에서 불화살을 쏘아대는 듯 했다. 누구나 자기가 세웠다고 믿는 세계에선 왕이고 왕비이고 공주니까.

 

*

 

"넌 정상적인 인간이야...

그동안 유일하게 내 손을 들어준 사람은 그 뿐이었다.

"우리가 지란지교를 꿈꾼다고 말하지만 그런 사람 하나 가질 수 있다는 건 꿈같은 일일거야...."

찢어진 슬리퍼를 끌고나가도 부담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 고춧가루 낀 이빨을 살짝 보여도 부끄럽지 않을 사람, 그런 친구는 없고 문우는 많았다. 함께 밥을 몇 번 먹었다고 해서 내 편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살갑게 인사 나누던 사람들이 더 직접적인 심판자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너나 잘하세요." 라고 타이르자 숙덕거리던 살풍경들이 검불처럼 사라졌다.

 

"넌 그냥 계산착오를 하며 살아온 거야……."

"세상을 제대로 읽지 못하도록 틀 안에 가두어 둔 결과지..."

 

그랬다. 나의 수도원 생활 21년은 그렇게 검은 옷을 벗고 나온 순간 백지화 되었다.

오거리에 날리는 종이쪼라기처럼 무효가 되었다.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사람이 이승으로 되돌아온 후에는 말이 많아지고 살이 3Kg 이상이나 불었다. 유념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은 세상이 시시해 시를 썼다. 그것 역시 쓰레기더미로 쌓일 어젯밤 꿈 이야기임을 알면서도 나는 귀순용사의 용맹성을 쉬 떨쳐내지 못한다. 전향하라. 빨갱이 아니면 이단자로 손가락질 받는 일 외에 내가 선 이 땅에서 더 정죄 받을 죄목은 없다.

 

"자자, 지난 악몽은 다 잊고 우리 악수나 나눠보지"

건달 말투로 되돌아 온 그가 배고픈 목소리로 말했다.

냉장고의 맥주를 한 잔 따라주며

"으흠...쭈욱 들이켜보지" 하고 추파를 던진다.

"저 주둥이를 콱!" 나는 그 다음 레퍼토리를 알기에

"그래 힘껏 맞대 보지" 하며 맥주잔을 쨍 부딪친다.

 

가스렌즈위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닭장을 가로지르는 지평선위에 작은 방 하나 걸어놓고 들어와야겠다.

하늘은 오늘도 흐리다. 그렇다고 젖은 텐트가 마르지 않으리란 법은 없겠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