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가을이다.
"가을에는 편지를 쓰겠어요." 유행가의 한 구절이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시의 한 구절이다. 유행가 가사와 시의 품격은 이렇게 다르다.
흔히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거의 유행가와 대동소이한 수준의 인식을 보여주는 세속적 언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 말은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가을나무 아래에서, 우수수 낙엽이 떨어지는 만추의 정취 속에서,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 한적한 곳에 호젓이 앉아 책을 읽는 자태야말로 얼마나 우아한가!' 정도의 인식을 담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독서를 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가을이 아니라 뜨거운 여름이나 냉혹한 겨울이다. 더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추워서 역시 밖에 나다니기 곤란한 두 계절이야말로 책을 가까이하기에 가장 알맞다는 말이다. 꽃 피고 새 지저귀는 봄이나 만산천홍이 눈부신 가을은 독서보다도 원족을 가기에 더 적합한 철이다. 초등학교로부터 고등학교까지, 심지어 대학에서도 각 학과별로 산으로 들로 끼리끼리 소풍을 다니지만, 그게 다 ‘봄소풍'이고 ‘가을소풍'인 점만 보아도 가을이 실제로 독서보다 산놀이 들놀이에 더 어울리는 계절이라는 관습적 결론 아닌가. ‘독서의 계절', ‘독서 주간' 같은 구호나 정책이 생겨난 것은 결국 사람들이 워낙에 독서를 하지 않은 결과라는 말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가족의 날, 노동자의 날 등등, 무수한 ‘날'들이 제정된 것도 대략 그와 같다. 개천절, 광복절, 제헌절, 삼일절, 한글날 등은 역사적으로 바로 그 날 그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지만, 어린이날 등은 그런 연유도 없고, 그저 그 대상을 소중히 여기고 받드는 정성을 갈고 닦자는 선언적 의미를 지녔을 따름이다. 여느 날 가릴 것 없이 날마다 어린이를 인간적으로 잘 대우해왔다면 새삼스럽게 어린이날 따위를 제정할 필요는 없는 까닭이다. 어버이날도 마찬가지이다. 스승의 날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살아야 인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지식과 교양은 무엇인지를 자상하게 가르쳐주는 스승이 어찌 날마다 고맙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스승의 날을 굳이 만들어 갖가지 번잡한 행사를 벌이고, 급기야는 언론과 여론의 지탄을 받는 지경에 이르는 것은 평상시에는 별로 존경심도 없이 지냈으면서 그 날만 생색을 내려는 사람들 때문에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움인 것이다. 독서주간 역시 다를 바 없다.
무엇 때문에 독서주간을 만들고,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예찬하나. 날마다 책을 읽어야 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독서를 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무엇 때문에 그리 호들갑을 떠나. 평상시에 그토록 책을 멀리하고, 독서를 철저히 외면시해 왔다는 증거를 그렇게나 드러내고 싶은가.
주희의 말을 들어보자.
(봄에) 푸른 빛이 창에 비친다.
풀을 뽑지 않고 놓아둔다.
오직 독서가 낙이다.
(여름에) 훈풍에 거문고를 뜯는다.
오직 독서가 낙이다.
(가을에) 달을 바라본다.
서리가 하늘에 가득하다.
오직 독서가 낙이다.
(겨울에) 두어 송이 매화 천지의 마음이다.
오직 독서가 낙이다.
과연 그렇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니, 어느 철을 가릴 것 없이 손에서 책을 놓아서는 안 된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하루도 빠짐없이 신체의 양식인 밥을 먹어야 육체적 건강이 유지되듯, 어지간한 날엔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말아야 정신적 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으라. 언제나 책을 읽으라. 쉼 없이 독서삼매경에 젖어들라. "남의 책을 읽는 데 시간을 보내라. 남이 고생한 것에 의해 쉽게 나를 개선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말이다. 독서를 생활화하면 그만큼 나한테 좋다는 지적이다. 행여라도 그대여,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정말 생각하지는 않으시리라. 날마다, 그 날 그 날, 봄 여름 가을 겨울 구분없이, 당연히 모든 날이 한결같이 독서의 계절이니, 부지런히 책을 가까이 하시라. 오죽하면 옛 현인들이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했으리. 지식기반사회를 책 없이 사는 것은 ‘눈 뜬 봉사'가 되어 밤길을 걷는 것과 같을지니, 마음의 양식을 잔뜩 먹고 잔뜩 살찌시라.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했느니, 짐승은 몸이 살찌고 사람은 마음이 살쪄야 비로소 인간이 만물의 영장 노릇을 제대로 할 것 아니겠는가.
정만진(소설가) | 200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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