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떨림에 대한 섬세한 기록, 천운영『명랑』
예민하고 날카롭게 작동하는 감각기관
천운영의 신작 소설집 명랑(문학과지성사 2004)은 첫 작품집인 바늘(창작과비평사 2001)이 보여준 생생하고 감각적인 묘사의 힘을 새삼스럽게 환기시킨다. 문명적 제도와 일상의 형식이 부여하는 압박감을 벗어나려는 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희구하는 강렬한 생의 에너지는『명랑』에서도 중심적인 모티프가 되고 있다. 천운영 소설의 인물들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도 훨씬 예민하고 날카롭게 작동하는 감각기관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의 육체적 반응은 그 어떤 언어보다도 예민하게 삶의 비의를 꿰뚫는다. 그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어떤 냄새를 맡고, 무엇을 만지고, 어떤 음식을 먹는지가 중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여자는 때때로 살아 있는 꽃게를 삶아 살을 일일이 발라낸 다음 게살죽을 끓이곤 했다. 뼈에서 가닥가닥 살을 발라내고 죽을 끓이는 데 한나절이 걸렸지만, 여자는 팔꿈치까지 흘러내리는 찝찔한 국물 맛을 느끼면서 오래도록 게살을 발랐다"(114면).「모퉁이」의 한 장면에서 주인공은 '손의 감각'을 통해 헤어진 연인을 기억한다. 그녀가 헤어질 때 마지막으로 게살죽을 만들어 주었던 연인은 '잘 숙성된 수제비 반죽처럼 희고 몰캉몰캉한 손'을 갖고 있던 남자였다. 남자가 돌아간 후 식은 죽을 손으로 떠먹는 주인공의 행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결핍과 불안을 생생하게 드러내준다.
천운영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표현하는 감각의 세계는 인물들을 사로잡는 불안과 결핍, 강박관념을 대변한다. '보드라운 멍게 살'을 함께 음미하면서 삶의 온기를 나누는 여성들이나 (「멍게 뒷맛」) '날계란을 넣고 비빈 밥'을 먹으며 가족을 떠올리는 여성(「그림자 상자」)의 모습 등은 그 구체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가족사의 모티프
육체적인 감각의 소설적 부각과 더불어『명랑』이 전작(前作)에서 나아가 심화하고 차별화하는 것은 가족사의 모티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소설집에서 「명랑」「늑대가 왔다」「세번째 유방」「모퉁이」「아버지의 엉덩이」는 인물들의 내면적 결핍과 환상의 원인이 가족적 질환에서 기원함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직접적인 가족 모티프를 다루지는 않았지만 「멍게 뒷맛」「입김」「그림자 상자」역시 타인의 욕망을 통해 자아의 결핍과 욕망을 체험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주제의식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바늘』에서도 확인한 바 있듯이 천운영 소설에서의 가족은 사회적인 갈등관계보다도 운명적인 인연의 형식으로 포착되고 있다. 핏줄로 연결되어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는 질긴 사슬로 표현되는 가족의 의미는 『명랑』에서도 자주 변주되는 주제이다. 『명랑』이 다른 점이 있다면 가족의 배경이 구체적인 결핍과 상실의 체험을 제공하며, 이것이 주인공의 욕망을 형성하는 데 구심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왕성한 생명력의 상징 '할머니'
『명랑』에서 가족사를 모티프로 다룬 일련의 소설들은 '할머니'의 존재를 상징적인 연결고리로 부상시키고 있다. 이전 작품인「숨」(『바늘』2001)에서도 본 것처럼 천운영 소설 속의 '할머니'는 시들어가는 육체 속에서도 징그러울 정도로 집요하고 노골적으로 삶의 열기를 불태운다.『명랑』에서도 노쇠한 육신 속에 깃든 끈질긴 생의 집념은 소름끼칠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를 관찰하고 해석하는 주인공의 시선일 것이다.
「명랑」에서 딸과 손녀와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삭힌 홍어찜'이 먹고 싶다고 호소한다. 노쇠한 그녀의 육체에 어울리지 않는 보드라운 발과 분홍빛 유두는 '진화와 소멸이 함께 살고 있'(15면)는 삶의 한 풍경을 암시한다. 가난과 피로에 지친 모녀가 살고 있는 적막한 일상의 풍경은 할머니를 통해 알 수 없는 활력을 얻는다. 할머니의 사고사 후에야 모녀는 자신들을 지켜왔던 삶의 에너지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를 실감한다.
시들어가는 할머니의 육체적 이미지가 일상을 견디고 위로하는 상징적인 육체적 기호가 되고 있는 것은「세번째 유방」에서도 나타난다. 연인의 유방에 집착하여 칼까지 휘두르게 되는 주인공 남자의 기억 속에는 부모와 떨어져 할머니의 젖꼭지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얻어야 했던 유년시절이 저장되어 있다. 할머니의 기억은 주인공이 연인에게 집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보상받지 못하는 그의 욕망은 결국 살인으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성차를 초월한 절대적인 생명력의 기원
『명랑』의 단편들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왕성한 생명력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성차를 초월한 절대적인 생명력의 기원을 상징한다. 이 할머니는 굳이 '여성'이라는 공간 속에 포섭되지도 않는다. 생식과 성의 좁은 의미를 뛰어넘는 할머니의 형상은 제도적인 어머니가 포획되어 있는 가부장적인 가족제도를 가볍게 뛰어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천운영 소설이 꿈꾸는 초월적 생명력의 세계는 할머니의 상징적 존재를 통해 주인공들의 환상적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다. 할머니의 존재는 인물들이 욕망의 기원을 들여다보게 하는 매개자로서 기능한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가족서사가 인물들의 결핍과 불안을 설명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는 점은「늑대가 왔다」에서도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숲에서 늑대의 환상을 보는 소녀의 심리는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간 아버지에 대한 결핍과 원망을 환상으로 대체하는 과정을 반영한다. 무책임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적의, 동경과 그리움은 늑대라는 환상으로 표출된다.「아버지의 엉덩이」나「모퉁이」역시 유년기의 부모에게 느낀 분리불안의식이 주인공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렇듯 선명한 가족서사의 상처는 때로 의도적인 해석으로 연결된다. 가령「세번째 유방」과「늑대가 왔다」는 잘 짜여진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심리적 충동을 설명하는 계기가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어 주제적인 흥미로움을 반감시킨다. 대조적으로 「명랑」「아버지의 엉덩이」와「모퉁이」 같은 단편이 이 소설집에서 빛나는 이유는 일상의 세밀화 속에 욕망에 대한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기 때문이다.
욕망의 떨림에 대한 섬세한 기록
「명랑」에서 명랑가루를 털어넣으며 하루하루를 견뎌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름답게 포착되는 것은 결국 그녀를 건사하고 보살피는 어머니의 현실적이고 강인한 일상이 그 속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노쇠과정과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엮어서 보여준 「아버지의 엉덩이」역시 인간이 본능적으로 지니는 생명의 욕구를 담담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낸다. 홈쇼핑 중독증에 걸려 각종 건강식품을 사모으는 아버지를 혐오스럽게 바라보던 아들은 어느 순간 아버지가 뿜어내는 생의 의지에 매혹된다. 여자의 손길 앞에서 아버지가 보여주는 육체의 떨림과 해맑은 미소를 바라보던 아들은 상실감과 당혹감을 느낀다. 아버지의 욕망은 남성의 것도, 여성의 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생명과 욕망에 대한 본능적인 경외심이 무엇인지를 아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가 보여주는 간절한 생명지향성은 아들의 마음 한구석을 건드린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은 낯선 여인의 도움으로 등목하는 아버지를 남몰래 바라본다. 아버지의 욕망을 인정하게 되는 아들의 심리변화가 돋보이는 이 장면은 욕망의 떨림에 대한 섬세한 기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깊은 여운으로 다가온다.
"여자의 손이 지나갈 때마다 아버지 마른 등에는 부끄럽게 홍조가 올랐다. 아버지 등에 물살을 그리며 물이 뿌려진다. 기름기 없는 살갗이 물을 머금었다가 이내 뱉어버린다. 아버지의 쭈글쭈글한 엉덩이 골짜기로 말간 물이 방울져 내린다. 여자는 수건에 비누를 묻혀 등을 닦기 시작한다. 아버지 등에 거품이 가득 인다.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얇고 긴 치맛자락이 아버지의 젖은 엉덩이에 휘감긴다. 수줍은 듯 치맛자락을 잡아당겼다가 놓는 아버지 엉덩이가 어린아이처럼 한껏 부풀어 올랐다." (「아버지의 엉덩이」190면)
[창비 웹매거진/2004/11] 글/ 백지연
'평론과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0) | 2009.10.09 |
---|---|
박형준<뒤란의 빛> (0) | 2009.10.09 |
클로즈업의 흔적들: 김기택,『껌』 (0) | 2009.10.06 |
프로이트의 고고학적 상상력과 문학비평 (0) | 2009.10.06 |
백지연 <배수아, 존재를 증명하는 글쓰기> (0) | 2009.10.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