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의 흔적들
-김기택,『껌』
김기택의 예민한 눈에는 “바늘구멍 속의 폭풍”이 보인다. 또한 그는 오랜 직장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대표작 「사무원」을 씀으로써 규격화된 작은 공간, 사무실 속에서, 나아가 도시에서 소외되었음에도 소외된 줄 모르고 살아가는 인간상을 감각적으로 보여주었다. 소위 말해 낯익은 것을 낯설게 보여주었다. 그의 투시적, 해부학적 관찰력의 수위는 언제나 우리의 상상에서 벗어났었고 다섯 번째 시집인 『껌』에서도 여전히 뛰어난 관찰력을 증명한다. 이번 시집 역시 건조한 그의 머릿속에서 억지로 짜낸 것이 아닌 그의 ‘꼴’ 그대로, ‘꼴’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으려고 한 그의 시적 노력이 작품 속 곳곳에서 보인다. 그에 따르면 마음이란 살아있는 ‘육체’이다. 미지의 것,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뚜렷한 것이 ‘마음’이다. 그는 마음이라는 육체로 씨를 썼고 쓰고 있다. 김기택의 시는 억지로 쓰여진 시가 아니다. 그는 시를 못/안 쓴다. 시가 그의 필터를 통해서 나온다.
그의 렌즈 속에 비친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은 크지 않다. 언어로 사고하는데 익숙한 인간은 동물의 열등함, 인간의 우월함을 본능적으로 느끼며 살아간다. 언젠가 그가 환기했듯이 ‘물고기’라는 말 자체는 일종의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 물 속에 사는 고기, 그것은 인간에게 ‘고기’라는 수동적인, 헌신적인 존재가 되어야만, 가치가 성립되는 생명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의 고양이는 그에게 사람으로 보인다. 그의 시선이 닿으면 고양이는 “그”라는 인격체가 된다. 긴 나무의자는 놓여지는 것이 아닌 “서 있”(「긴 나무의자」)는 독립 주체의 자격을 얻고 “버스는 온몸에서 진저리치는 소리를”(「버스」) 낼 수 있는 생명체로 승격된다. 그의 눈을 통해 보면 무생물의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동물은 물론이고 의자와 긴 나무에서 그는 소리, 말, 몸짓을 듣고 본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에서는 “말의 형태가 없는데도” “울음과 한탄 같은 것이 꿈틀거”린다. 취한 시간, 즉 일상에서 벗어난 비일상적인 차원에 들어서야지만 비로소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있다. 김기택은 “발음 달린 단어와 형태가” 없이 “억양과 리듬”만으로도 들을 수 있는 시인이다. 그는 술 취한 시인, 취한 말들을 기록하는 자이다.
「삼겹살」을 읽는다. “고기냄새는 잠깐 파리떼처럼 날아올랐다가 바로 끈적끈적한 발을 내 몸에 찰싹 붙인다.” 냄새를 그는 후각이 아닌 시각으로 맡는다. 비가시적인 냄새를 보는 눈을 가진 김기택은 냄새의 작은 입자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다. “상쾌한 바람”에 날려지다가도 “제 시신이 묻혀 있는 내 몸속으로 끈질기게 스며드”는 냄새. 비가시적인 것들의 가시화, 이미지화. 「삼겹살」은 김기택의 대표적인 작품들과 같은 노선을 걷는다. 이런 시들에서 김기택의 해부학적, 투시적 상상력은 빛나고 그의 현미경의 렌즈는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무궁화호 열차에서는 무궁화호 열차 냄새”(「무궁화호 열차」)가 나고. 황사에서는 “사막에서 햇빛에 곱게 갈린 죽음들의 냄새”(「황사」), “살과 피와 뼈들의 냄새”를 맡는다. 그는 추상의 구체화, 관념의 시각화에 탁월하다. “몸뚱어리보다 큰 울음덩어리”(「가려움」), “기체의 손가락으로 굴뚝을” 붙드는 “연기”(「화장터」), “바람 속에 아직도 차가운 발톱”(「봄」)을 그는 보고 쓴다. “거대한 허공이 나를 쳐다보고”(「보육원에서」) 있음을 느끼는 그는, “허공”의 비어있음을 무의 공간이 아닌 시각적 혹은 촉각적으로 인지되는 존재의 공간으로 환원시킨다. 인지할 수 없는 실재를 구현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자 기록이다.
표제작인 「껌」과 「산낙지 먹기」에서는 탄력성, 유연성이 힘에 대해 우위가 있음이 증명된다. 단단하고 견고한 “이빨”에 맞서는 “껌”은 부드러운 강자이자 승리자이다. 산낙지는 죽은 후에도 탄력성을 잃지 않음으로써 생명력을 재확인한다.
시집을 읽다보면 최근의 시집과는 달리 직유법이 상당히 많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직유법은 세련되지 못한 것, 쉬운 수사법으로 폄하되고 있는 이 시대에 그는 여전히 직유를 고집하고 있다. 물론 “뱀 아가리 속같이 길고 컴컴한 당신의 목구멍”(「삼계탕」), “활처럼 땅을 향해 가늘게 휘어지는 허리”(「봄」)와 같이 쉽고 태만해 보이는 직유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나, 김기택은 특유의 시적 상상력으로 직유를 효율적이게 쓰고, 뛰어난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병원에 간 주인을 기다리는 늙은 개의 눈처럼”(「죽은 사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킁킁거리며 찾는 코처럼” 뚫린 “구멍” 등과 같이 오랜 관찰과 새로운 상상에서 나오는, 은유에 결코 뒤지지 않는 세련된 직유법을 그는 구사한다. 그는 낡아 보이는 공구를 고집하는 장인처럼, 직유를 붙들고 시를 써가고 있다. 그는 시 쓰는 장인이며, 그의 시는 장인 쓴 시이다.
그는 “이십년 전의 무궁화호 열차를 오늘”(「무궁화호 열차」) 탈 수 있다. “아직도 비명과 발악이 남아 있는 비린내”(「삼겹살」)를 맡는다. 그에게 시간은 되풀이되며 지속된다. 어제가 오늘 혹은 내일이 될 수 있음을 그는 안다. 그는 믿을만한 눈을 가진 관찰자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본다. 따라서 그의 관찰력은 곧 상상력이다. 그가 보았던 자리는 시 속에 기록되고, 그의 클로즈업은 흔적을 남긴다. 김기택의 상상력은 클로즈업의 흔적들이다. 흔적이란 말 속에는 희미함이 내포되어 있다. 뚜렷한 흔적은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한 인상을 준다. 흔적은 희미하다. 그런데, 그가 지나간 흔적은 뚜렷하다. 그의 기록은 지나간 것들을 되살린다. 김기택의 시선이 닿았던 자리는, 남겨진 희미한 이미지들은 그의 시로 비로소 뚜렷해진다.
껌 / 김기택
누군가 씹다 버린 껌,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껌,
이미 찍힌 이빨자국 위에
다시 찍히고 찍히고 무수히 찍힌 이빨자국들을
하나도 버리거나 지우지 않고
작은 몸 속에 겹겹이 구겨넣어
작고 동그란 덩이로 뭉쳐놓은 껌,
그 많은 이빨자국 속에서
지금은 고요히 화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껌,
고기를 찢고 열매를 부수던 힘이
아무리 짓이기고 짓이겨도
다 짓이겨지지 않고
조금도 찢어지거나 부서지지 않는 껌,
살처럼 부드러운 촉감으로
고기처럼 쫄깃한 질감으로
이빨 밑에서 발버둥치는 팔다리 같은 물렁물렁한 탄력으로
이빨들이 잊고 있던 먼 살육의 기억을 깨워
그 피와 살과 비린내와 함께 놀던 껌,
지구의 일생 동안 이빨에 각인된 살의와 적의를
제 한몸에 고스란히 받고 있던 껌,
마음껏 뭉개고 갈고 짓누르다
이빨이 먼저 지쳐
마지못해 놓아준 껌,
-<문예중앙> 2006. 봄
-시집 <껌> (창비, 2009.2)
-17회 대산문학상 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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