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일기

희선 <견해 9>

미송 2010. 11. 27. 18:04



『보랏빛 소묘』의 책장을 넘기듯 용담의 보라 꽃에서 내 젊디젊은 꿈빛을 다시금 보며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꽃에 대해 말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싶었다.


 

보라색 광채 / 오정자

얼룩무늬 젖소
몇 마리 노니는 대관령길에서
초저녁에 감미로운 음악을 들었지
죽음처럼 감미로운 음악을

옷 다 벗은 자작나무 가지 사이로
바닷물 냄새 오징어 냄새 물씬하더니
너를 향한 숱한 의문부호들이
둥실 두둥실 동해바다 물 위에
떠오르는 거야 흰 물거품으로

별빛 쏟아지기 직전
대관령 가장 높은 정상에서
설레이는 보라색 광채를 보았지
꽃잎들이 저녁하늘 프레임을 뛰쳐나와
깊은 동해바다 속으로 함몰했지
아늑하게 황홀하게


 

오래 전의 일이지만.

급하게 강릉에 갈 일이 생겨서,
새벽녘의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대관령 마루 턱에서
때 마침 내리는 함박눈에 차를 세우고...
들판에 나와 눈을 맞으며, 한참을 서있던 기억이 나네요.

이색적이었던 건...

여명黎明 탓이었는지 몰라두, 雪景의 배경색이
마치 보랏빛 같았다는 거.
(근데, 노을빛 저녁에도 대관령은 그 배경색이 비슷한가 봐요)

시와는 다소, 동떨어진 얘기지만.

암튼, '보라색 光彩'라는 데서...
문득 그때의 기억도 새로워서.


죽은 시인의 청탁

시마(詩魔)도 떠나 오지 않고
속에서 일어나야 할 영감도 깨지 않는 언제
겨울에도 꽃대 꺾어 꽃잎을 물고
익숙한 입맞춤에 일어나는 나는
삭발한 머리 위 빨긋한 노을이 뜬
주름살 깊은 이마와
안경 너머 눈빛이 나무인
너에게 나를 보인다
붕 뜬 관념이다
넌 언제나 나를 지적하지
대부분의 사람들
습관에 젖어 산다고
깨어나라고 하는 너
너도 프랜시스 잠의 목소리가 그리우니
재방송에도 지치지 않는
원스어게인원스어게인
회색 안개들은
제 안에 제 길을 직관치 못해
쓰고 있을 뿐, 공중에 올라
네 것이니 네가 다 가져
관념의 눈으로만 더듬거리네 부앙
그만 좀 더듬으세요
음모와 술수는 없더라도
박박 긁는 손톱이 아무리 결벽해도
그것 역시 불필요한 것
불빛은 자꾸만 가뭇해져 방을 다 닦는 동안
시체로만 돌아다닌 시간의 동공,
쇼파에 기댄 단 오 분의 직관 속에서만
살았다는 톨스토이여
꽃잎 주검들 속으로
오소소오소소.

 

 

시인 자신을 겨냥한,
비평안比評眼이 선명히 드러나 있다고 할까.
근데, 이런 類의 자아비평은 詩魔의 등쌀 끝에 확실하게 殞命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인데.
却說하고.
脫觀念性 - 말하자면, 현실에 대한 민감성의 발로이기도 한데요.
사실, 어떤 면에선...
오늘의 시들은 실생활에 있어서 효용성效用性 여하로
존재의 가치가 결정되는 이 시대에 있어, 임종 직전이라 할까.
(아니, 이미 죽어버린 시들도 넘 많고)

죽은 시인의 청탁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깨어난 꿈 하나 가슴에 간직하는 건,
아직 살아있는 시인들에게
그다지 큰 허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이 비록, 지금의 이 계산計算자 같은 세상에서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直觀이라 하더라두요.

 

 

 

시(詩)와 시(時)의 무계약
-도서관에서

시간도 사라진다 너와의 약속과 함께
심장 혹은, 머리 어딘가에 붙어 다녔을 너와 아니
나와 지하 1층으로 내려간다
샛길 불빛 아래 책들이 모여 있다  
쇼파에 앉은 나도 먼 여행을 떠난다
안개 낀 오늘이나 시계가 보이지 않고 멈추고
그럼 이젠 짐승 같은 시장끼도 사라지겠네요 즐겁게      
자문을 하려는데 바스락 빵 봉지가 움직인다 잼이나
버터에 빵을 찍어 먹으면 왜 나는 꼭 비빔국수가
떠오를까 왜,

멋진 약속까지 깨뜨리고 종아리 곧은 사람을
플라스틱 지붕 아래 온종일 기다리게 두고 호올로
시를 썼다는 K*를 읽는다 웃으며
맛이 사라질 때까지 빵을 뜯는다
급기야 너구리라면까지 휙휙 지나가는
다섯 시와 여섯 시 사이 야수의 저녁
쉽게 발효되지 않는다 너는 그렇게
거식과 폭식 사이 헛헛한 빵으로 육화되면서
지상의 시간도 사라진다
너와의 약속은 어디로 가고 있나.

 

* 김현승의 '시의 맛' 한 구절.

 

 

문학적 바탕에서 <시쓰기>를 하는 사람치고,
자신의 人生을 시와 계약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아니, 그 계약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라 할까.

하지만, 그 약속을 이행한다는 건
얼마나 지난至難한 일인지.

돈이 사람의 人格마저 좌지우지하는 이 때에
시쳇말로,
시라는 게 돈이 되길 하나 밥이 되길 하나.

더욱이, 이 虛妄한 시대에...
시라는 걸 써서 과연 사람 대접이나 받길 하는가.
심지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조차도.
(그러니까, 기혼자의 경우엔 아내나 남편을 의미)

생각하면, 참 외롭고 막막한 존재인 것이다.
이 시대에 (헐렁하고, 알량한)시인으로 산다는 건.

시인은 도서관에서 시를 읽다가,
짐승 같은 시장끼에 쉬이 굴복하는 시간이 울컥 미웠나 보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소리 안 나는 빵을 먹는다는 건
참 탁월한 선택)

오죽하면, 헛헛한 빵으로 육화되는 야수와도 같은 시간이라 했을까.
좀처럼 발효醱酵되지 않을 것 같은 먼 약속의 시간들...

파기하고픈, 계약.
그래서, 차라리 詩와 時는 '無계약'이었어야 한다니.
시인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지상의 시간도 사라진다
너와의 약속은 어디로 가고 있나'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나도 아프다.
왜냐하면, <빵>과 <너구리라면>은 차치하고...
소라도 한 마리 먹을만큼 배가 고파서.

 

 

바람이 남긴 말

 

당신 손을
슬쩍 떨쳐버릴까 하는데요
홀로 홀가분한 의지로
지향 없이 걸으려 하는데요

꽃잎이 흩날립니다
숲 속에 빽빽한
실수투성이 나무들이
외로운 내색도 없이
무거운 어깨를 서로 비비고 있습니다

이쯤 해서 당신 손을
슬그머니 놓아버릴까 하는데요
등이 따갑도록 당신의 눈길을
듬뿍 의식하면서
다소곳한 의향으로
당실당실
춤을 추듯 걸으려 하는데요

 

 

바람이란 무엇인가?
그건 허공의 목소리요,
동시에 정체의 구속으로 부터 활보의 자유로 向하는 소리이다.
그런 바람에 시인의 모든 걸 맡겨 버린, 정신적 환타지 Fantasy라 할까.

그 어느 날, 나도 불쑥 치솟는 그리움 때문에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하던 일을 멈추고 등을 벽에 기대고 한참동안 눈을 감고
내 정신의 거울 속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나를 본 적이 있다.

하여,
때론 나를 구속하는 그리움으로 부터 자유롭게 놓여지고도 싶은 것.
그래서 불가에서 말하길, 그리움마저 집착이라 한 걸까.
비록, 등이 따갑도록 그리움의 눈총을 받더라도
바람처럼 指向없이 걷고 싶다.

아, 바람이여.
너의 정처없음이여.
네 흐름 속에 나를 머물게 하라.
그 머물음 속에서 나를 벗어 버리게 하라.
나를 벗어 버리려는 그런 나마저 또 벗어 버리게 하고,
永遠의 자유에 들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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