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화

중용(中庸)

미송 2010. 12. 25. 09:27

 

중용(中庸)

 

 

유학의 시선에서 보면 노장과 불교, 기독교는 *교각살우(橋角殺牛)의 혐이 있다. 우상을 숭배하고, 환상에 취한 인간의 집단적 병증을 치료하자고 너무 독한 약을 쓴 나머지, 그만 든든히 딛고 서야 할 일상의 경계를 넘어서 버리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유교는 두 극단을 피해 중용을 기획했다. 의미는 오직 생활 속의 규율과 일상적 습관에 있다. 바로 그 신기할 것도 없고, 통속적인 바로 그 삶의 자잘한 현장이 의미가 구현되는 성소다. 거기서 보상도 기대도 없이 올리는, 자신을 향한 예배가 중용이 일러주는 인간의 길이다.

 

중용의 도는 부부에서 출발한다. 가장 비근하고 친근한 기거와 놀이를 의미로 승화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렵다. 그래서 높은 지위와 많은 재물을 사양할 수도 있고 흰 칼날을 맨발로 밟기는 쉬워도 중용을 지키기는 정말 어렵다. 이쯤에서 다들 묻는다. 중용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유학은 공자 이래 그 핵심을 충서(忠恕), 즉 동정과 배려로 요약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길은 이 상호성의 원리를 생명이 다할 때까지 짚신이 헤어져서 더 이상 신을 수 없을 때까지 밀고 나가는 영웅적 도정이다.

 

유학에서의 맹자가 주장한 사단 칠정론 

 

길은 사람을 떠나 있지 않다. 사람 너머에 있다면 그것은 길이다. " 도끼 자루를 깍을 때, 뽄이 어디 멀리 있으랴." 손에 든 도끼 자루를 흘낏 보면 얼만큼 깍아야 할 지 알 수 있는 것을.... 그런데도 사람들은 멀찌감치를 기웃거린다. 마찬가지로, 군자는 사람을 교화함에 상식을 기준으로 할 뿐,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길은 동정과 배려에 있다. 나한테 싫은 것은 남에게 지우지 마라. 군자가 완성해야 할 것이 넷 있는데, 나 공구(공자)는 그 중 하나도 철저하지 못했다. 아들한테 거는 바로 그 기대로 내 아버지를 모시지 못했고, 신하에세 거는 기대로 군주를 섬기지 못했다. 동생이 내게 해 주었으면 하는 일들을 정작 나는 그들에게 해 주지 못했다. 

일상의 행동과 말에서 이 기준에 부족하다 싶으면 과감히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벗어난다 싶으면 아차, 자제해야 한다. 말할 때는 행동을, 행동할 때는 말을 돌아다 보라. 군자는 이 일에 성심을 다해야 한다.  

 

*뿔을 바로잡으려다가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 곧 조그만 일을 고치려다 큰일을 그르침을 의미한다. ≒ 小貪大失(소탐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