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물
뱃속은 경쾌했다. 얼굴로 치자면 뇌리꾀리 꾀죄죄하지는 않았단 뜻이다. 어찌나 뽀얗던지 정말로 신기했다. 의사의 결과를 듣자마자 나는 얼른 남편에게로 달려가 어수선을 떨었다. 흰 전등을 비췄으니 하얗게 뵀을 게야, 호스 끝에 붉은 전등을 달았으면...., 듣고 보니 그랬다. 불빛에 따라서 색깔이 다르게 보인다는 걸 깜박 잊고 있었다. 어쨌든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위 내시경胃-內視鏡 검사였다. 그렇게 몸의 내부를 샅샅히 들여다 본 경이로움은 일주일이나 지속되었다. 연말까지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직장의 압력에 떠밀려서 검사실을 찾았던 것인데. 피를 뽑고 소변을 받고 가슴에 달린 액세서리를 풀고 폐 사진을 찍고, 그리고 마지막에 위를 들여다 보았다. 모로 누워서 눈알은 깜박거렸고 입가에 침은 흘려보냈으며 구역질을 참지 못해 결국 우웩 했는데, 다행히도 검사는 1시간 내에 종료가 되었다. 한 일 년 마음 놓고 먹어도 된다는 거야. 남편이 야릇한 미소를 보이며 ‘당신이야 뭐 가리는 게 없으니 정작 없어서 못 먹지’ 했다.
스무 시간이나 굶고서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가 끝난 후에도 두 시간을 굶어야 했다. 들쑤시는 고역을 잘 견뎠다고 간호사가 베지밀 한 개를 주었다. 어찌나 소중하던지. 24시간 굶었는데도 이토록 절절거리니 사람이란 대체 무슨 동물인가. 그날 밤 아랫배를 살살 문지르다가 임신을 했을 때처럼 남편에게 귀를 대 보라고 했다. 우르릉 쾅쾅 꾸르륵 오만가지 소리가 들려 왔다. 전쟁이라도 발발勃發했나 시끄러운 그 소리에 내가 소우주를 품고 사는 영묘한 동물임을 새삼 느꼈다. 일상적인 투여와 배설작용이 이처럼 자연스런 현상임에야, 세포들과 기생충의 개성 있는 꿈틀거림이 기계운동을 능가함에야, 하루 세 끼를 먹어야 한다는 건 단순한 규정이 아니다. 몸은 소멸을 향해서 진화를 멈추지 않는다. 채우고 비우는 순기능을 타고났으니 이 또한 다행이다. 사람의 위가 다른 사람의 위를 먹어도 소화를 시킨다고 하니 징그럽다. 그러나 독한 액체를 뿜어 분해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위胃.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은 멀쩡할 수 있다니, 음식물과 뒤섞여 깎이어 가는 과정을 위장의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고 불러야 할까.
제 살을 깎는다는 것, 허물을 벗는다는것의 의미를 곰곰 생각해 보는 시간 고 말랑말랑한 아코디언들이 무지 고맙다.
ⓒ2010 겨울, 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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