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화

술이편 24-25장(備旨原本 論語 集註)

미송 2011. 2. 25. 08:39

<제24장>

 

子 以四敎하시니 文行忠信이니라

공자가 네 가지로써 가르치셨으니 글과 행함(실천)과 충실함과 믿음이니라.

 

<해설>

文은 학문을 가리키며, 시・서・육예를 널리 배우되, 살펴서 묻고, 삼가 생각하고, 밝게 분별하고, 돈독하게 행하여야 한다(博學 審問 愼思 明辨 篤行 :중용 20장). 行은 孝・弟・謹・信・愛衆・親仁(학이편 6장)을 실천하는 것이며 忠信은 德으로 나아감에 갖추어야 할 자질과 품성(『주역』건괘)에 해당한다. 즉 학문을 하여 덕행을 행하되, 이 모든 것의 바탕은 忠信이라는 뜻이다.

 

① 備旨

 

夫子之所以敎人者는 其大端有四敎焉이라 敎人以學文所以致其知也오 敎人以修行은 所以履其事也오 而且敎人以忠은 欲其無一念之不盡也오 敎人以信은 欲其無一事之不實也라 夫知行並進이라야 身心交益하니 此四者는 皆夫子之所以敎也라

 

선생께서 사람들을 가르친 바는 그 큰 단서에 네 가지 가르침이 있음이라. 학문으로써 사람들을 가르침은 앎에 이르게 한 것이고, 행함을 닦는 것으로써 사람들을 가르침은 그 일을 실천하게 하는 것이오, 또 忠으로써 사람들을가르침은 한가지 생각이라도 (정성을) 다하지 않음이 없게 하고자 함이오, 信으로써 가르침은 한가지 일이라도 실지가 아님이 없게 하고자 함이라. 앎과 실행이 함께 나아가야 몸과 마음이 사귀어 보탬이 되니, 이 네 가지는 다 선생님이 가르치시는 까닭이라.

 

② 주자

 

敎不以文이면 無由入說與事理이니 便是文이라 詩書六藝가 皆文也니 與講說이라 如何라야 是孝弟오 只是文行이니 所謂 孝弟는 方是行이라 又恐行之未誠實이라 故로 又敎以忠信이니 到得爲忠爲信하니 時全이라

 

가르침에 글로써 하지 않으면 설명과 사물의 이치가 말미암아 들어감이 없으니 (문득) 바로 이 文이니라. 文은 시와 서와 육예(禮・樂・射・御・書・數)가 다 문이니 익히고 설명함과 같음이라. 어찌해야 효제인고? 다만 배워서 행함이니 이른바 효제는 바야흐로 이 행함이라. 또한 행함에 성실하지 못할까를 두려워하므로 또한 충신으로써 가르치니 충성스러워지고 믿음직스러움에 (얻어) 이르니 이때가 온전함이라.

 

③ 程子

 

敎人以學文修行而存忠信也니 忠信은 本也라

 

글을 배우고 행실을 닦아 충실과 믿음을 보존하는 것으로써 사람들을 가르치시니, 충신은 근본이라.

 

④ 西山眞氏

 

行有餘力則以學文은 是以力行爲先이오 子以四敎는 文行忠信이니 文者는 講學之事로 主乎知오 忠信者는 修身之事로 主乎行이니 此는 又以知爲先이라 此二章은 實相表裏니 正當合而觀之컨대 大抵 致知力行이라 二者는 不可闕一 이니 旣知其理면 不可不行其事 旣行其事면 不可不知其理니라 二者幷進則爲學之功이 至矣리라

 

‘행하고도 남은 힘이 있으면 글을 배우니라(학이편 6장)’는 이로써 힘써 행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음이고, 선생님이 네 가지로써 가르치신 것은 文과 行과 忠과 信이니 文은 익히고 배우는 일로 앎을 주로 하고, 忠信은 몸을 닦는 일로 행함을 주로 하니, 이것은 또한 知를 우선으로 삼음이라. 이 두 문장은 실제 서로 표리가 되니, 정히 마땅히 합해서 본다면 대개가 앎을 이루어 힘써 행함이라. 두 가지는 하나라도 빼놓을 수 없으니, 이미 그 이치를 알면 (불가불) 그 일을 행하지 아니할 수 없고, 이미 그 일을 행하면 (불가불) 그 이치를 알지 못함이 없느니라. 두 가지가 아울러 나아가면 배움의 공업됨이 지극하리라.

 

⑤ 新安陳氏

 

學文者는 致知之事요 修行者는 力行之事라 存忠信所以誠實於力行이니 而忠其體이오 信其用也라 所以謂之四敎이라

 

글을 배운다는 것은 앎에 이르는 일이고, 행함을 닦는 것은 힘써 행하는 일이라. 충신을 보존함은 힘써 행함에 성실하게 하는 바이니 忠이 그 체(體)이고, 信은 그 용(用)이라. 이른바 네 가지 가르침이라.

 

<제25장>

 

子曰 聖人을 吾不得而見之矣어든 得見君子者면 斯可矣니라

공자 가라사대 “성인을 내 (얻어) 보지 못하거든, 군자를 (얻어) 보면 이 가하니라.”

(子曰) 善人을 吾不得而見之矣어든 得見有恒者면 斯可矣니라 兦而爲有하며 虛而爲盈하며 約而爲泰면 難乎有恒矣니라

(공자 가라사대) “善人을 내 (얻어) 보지 못하거든 항상함이 있는 자를 (얻어) 보면 이 가하니라. 없으면서 있다 하며, 비었으면서 차있다 하며, 간략하면서 크다 하면 유항자가 되기 어려우니라.”

兦 없을 무

 

<해설>

공자는 위정자가 지녀야 할 덕의 단계에 따라 聖人,君子,善人,有恒者로 나누었는데, 높은 덕을 갖추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有恒者는 되어야 하지 않는가며 탄식하는 말이다. 공자 당시는 패권정치를 추구하던 춘추시대를 지나 무차별한 약육강식의 전국시대로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주공(周公)이 토대를 쌓은 예악에 바탕한 기강과 질서는 무너져 패륜적인 행위(臣弑其君 子弑其父)가 횡행하여, 공자가 이상으로 삼던 위민(爲民)정치와 덕치(德治)는 찾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공자 자신이 이미 철환주유를 통해 겪은 바이다. 주공의 정치를 존숭하여 꿈 속에서까지 늘 주공을 보며 다짐을 해오던 공자로서는 좌절과 실의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앞서 5장의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는 공자의 그러한 심정을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위 문장의 ‘공자가 聖人을 보지 못했다’는 말과 통한다.

『주역』건(乾 : )괘에 의하면 聖人은 군주의 자리에 비유되는 九五 자리의 大人으로서 天地와 日月과 四時(사계절) 등의 자연의 이치와 인간사의 吉凶작용을 깨달은 사람이다. 이에 聖人은 ‘나아가고 물러나고, 보존하고 망하는(進退存亡)’ 이치를 알고 순리대로 살기 때문에 결코 그 바름(正)을 잃지 않는다. 또한 군자(君子)는『주역』건(乾)괘에 의하면, 신하의 자리에 비유되는 九三 자리의 군자로서 忠信과 修辭立其誠(말을 닦고 그 정성을 세움)을 바탕으로 進德修業(덕에 나아가고 바탕을 닦음)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군자는 ‘이를 때는 이를 줄을 알고, 마칠 때는 마칠 줄을 알기에 기미하여 의리를 보존하며’ ‘윗 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아래 자리에 있어도 근심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에 공자가 당시 세태에 九五 大人과 같은 聖君을 보기가 난망하니, 九三 군자 즉 위정자(爲政者)라도 많이 나타나서 정치를 잘 펼쳤으면 하는 바램을 나타내고 있다.

善人에서 善의 개념을『주역』계사전에 의하면, 공자는 ‘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 善也(한번 음하고 한번 양하는 것을 道라 하고, 이를 계승하는 것이 善이라 : 계사상전 5장)’고 하였다. 따라서 善人은 천지자연의 이치인 음양원리에 순종하여 이를 따르며 사는 사람을 뜻한다. 즉 다시 말해 善人은 천지자연의 이치를 본받아 인륜의 道를 정립한 유가의 道를 실행하며 사는 사람을 일컫는다. 善人이 백 년간 정사를 펼치면 죽이는 짓 등의 잔악한 행위를 없앨 수 있다(자로편 11장)는 것은 만물을 화육(化育)시키는 자연의 이치에 순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자는 이러한 善人도 보기 힘들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有恒者는 어떠한 사람인가? 공자는 이를 적어도 인간 사회에서 ‘兦而爲有 虛而爲盈 約而爲泰’ 하다고 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하였다.

흔히 三痴(삼치)라 하여 어리석은 행위 세가지를 ①없어도 있는 체하고 ②못나도 잘난 체하고 ③모르면서도 아는 체하는 것을 든다. 이 三痴(삼치)와 공자가 말한 ‘兦而爲有, 虛而爲盈, 約而爲泰’는 서로 통한다. 따라서 有恒者란 이러한 어리석은 행위를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속에서 君子 大人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주역』뇌풍항(雷風恒 : )괘 대상전에서 공자는 ‘君子以立不易方(군자가 이로써 세워 방소를 바꾸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번 뜻을 세우면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고 천지의 도가 항구한 것처럼 꾸준히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를 받아 맹자는 ‘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항상 생산함이 없으면서도 항상하는 마음을 두는 자는 오직 선비가 능하니라 : 『맹자』양혜왕 상편 7장)’이라 하였다.

 

한편 맹자는 공자가 말한 위정자의 단계를 좀더 구체적으로 나누어 밝혔다. 맹자는 제자인 악정자(樂正子)가 노나라에 등용된다는 소식을 듣고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기뻐한다. 이에 제자들은 악정자가 과단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크게 지혜롭거나 사려깊지도 않은데다 견문과 학식도 높지 않은 인물로 알고 있던 터라 맹자의 이러한 태도에 의아해 한다. 공손추가 이를 문제삼자, 맹자는 ‘그 사람됨이 선을 좋아한다(其爲人也 好善)’고 하였다(『맹자』고자하편 13장). 또한 맹자는 제나라 사람인 호생불해(浩生不害)가 악정자에 대해 물었을 때도 악정자를 善人이자 信人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善人은 덕을 갖춘 자에 대한 맹자의 분류상으로는 가장 아랫 단계이다. 맹자는 그 단계를 善人 信人 美人 大人 聖人으로 설정하고는 마지막으로 神을 두었다(『맹자』진심하편 25장). 즉 맹자는 위정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好善’을 갖추어야 한다고 보았다.

 

① 주자

聖人은 神明不測之號요 君子는 才德出衆之名이라 子曰字는 疑衍文이라 恒은 常久之意라 三者는 皆虛夸之事니 凡若此者는 必不能守其常也라

성인은 신명불측함을 이르고 군자는 재덕이 출중함을 이름이라. 子曰이라는 글자는 연문인 듯하니라. 항(恒)은 떳떳하여 오래하는 뜻이라. 세 가지는 다 헛되게 과장하는 일이니 무릇 이와 같은 자는 반드시 능히 그 떳떳함을 지키지 못하니라.

愚는 謂有恒者之與聖人은 高下 固懸絶矣라 然이나 未有不自有恒而能至於聖者也라 故로 章末에 申言有恒之義하시니 其示人入德之門이 可謂深切而著明矣로다

우는 이르기를 항상함이 있는 자와 더불어 성인은 높고 낮음이 진실로 현저하게 끊어지니라. 그러나 스스로 항상함이 있지 않고도 능히 성인에 이를 자는 있지 아니하므로 이 장의 끝에 거듭 항상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을 말씀하시니, 사람들에게 덕에 들어가는 문을 보여주심이 깊고 간절하여 밝게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도다.

 

② 張橫渠

有恒者는 不二其心이오 善人者는 志於仁而無惡이라

항상함이 있는 자는 그 마음이 둘이 아니고, 善人이라는 것은 仁에 뜻을 두고 악함이 없음이라.

 

③ 張敬夫

聖人君子는 以學言이오 善人, 有恒者는 以質言이라

성인과 군자는 학문으로써 말하고, 善人, 有恒者는 바탕으로써 말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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