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사운드 트랙 / 이은규
움켜쥐었던 손이 하루를 놓는다
서둘러 숨을 곳을 찾는 빛,
사라지는 것으로 어둠과 하나가 되려는
푸른 잎맥이 광합성을 잊을 때쯤
천천히 기지개를 켜는 나는 야행성
밤이 불안의 중심을 서성이면
기억은 항상, 이미 읽혀진 상태로 다가온다
밤하늘보다 먼저 펼쳐지는 노트 속엔, 흐르는 별 대신 돌멩이를 옮겨 놓던 우리가 살고 있지
돌멩이 하나에 우주가 기우뚱할 수 있다는 걸 몰랐을까, 모른 척했을까
돌멩이라고 적힌 페이지를 찢어
밤의 유리창에 던지면 기억이 깨질까
왈칵 쏟아질까, 눈물이
구름을 떠나는 비처럼
내 별은 야행성
별이 흐르는 소리를 들어 본 적 있냐는 물음에
입을 모으는 사람들, 별소리 다 하네
그가 앉았던 탁자에 그의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펼쳐 놓는다 왜 어느 별은 궤도를 이탈하는
순간 가장 빛나는지, 우리를 떠도는 이름 하나가 기억의 회전주기를 바꿔 놓을 때까지
모든 별들이 음악 소리를 낸다는 가설을 믿는다
사라지는 별의 꼬리 쪽으로
한 뼘 더 가까워지는 어둠 사이
귀가 아프도록, 아름다운 별의 사운드 트랙
—《문장웹진》2011년 4월호
이은규 / 1978년 서울 출생. 광주대 문예창작과 및 대학원 졸업. 2006년〈국제신문〉신춘문예 당선, 2008년〈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 현재 계간《시와 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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