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의 기쁨

마틴 에슬린의 강연<고도를 기다리며>

미송 2011. 6. 26. 23:11


고도를 기다리며

―서양공연과 비교해 본 한국연극

마틴 에슬린



미국의 학자 스탠리 곤타스키(Stanley Gontarsky)는 최근에 미국의 어느 대학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초고를 연구한 결과 베케트가 쓴 다른 여러 희곡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중에 고쳐 쓴 원고와 비교할 때 초고에는 베케트 자신의 인생 체험에서 나온 보다 더 사실적인 자료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 테면 <고도를 기다리며>의 초고에는 지금은 에스트라공으로 불리고 있는 인물이 유태계 이름인 레비(Levi)로 되어 있는 점이 그 한 예이다. 실제로 전쟁중에 베케트 자신이 직접 겪은 체험이 이 작품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꽤 분명하다.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에서는 중립적인 입장이었던 아일랜드인으로서 지하 저항 단체를 위해 파리에서 일하고 있던 그는 결국에는 도망을 가야할 처지가 되고 만다. 그가 일하고 있던 지하 저항단체가 발각되어 프랑스 남단에 위치한 보크뤼스(Vaucluse)라는 미점령 지역(이 지역은 현재 나와 있는 불어판<고도를 …>에 언급이 되어 있다)으로 피신하여 외딴 시골의 어느 작은 호텔에 숨어서 살았다. 거기서 그들이 한 일은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전쟁이 과연 언제쯤 끝날지 예측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베케트와 스잔은 대부분이 유태인인 다른 피난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얘기거리 하나가 동이 나면 또 다른 화제거리를 찾아내야만 했다. 바로 이것이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대화의 패턴이다.

물론 이것은 곤타스키가 그의 저서 [해체의 의도](The Intent of Undoing)에서 밝힌바대로 지극히 초기적인 생각의 씨앗에 불과한 것이었다. 베케트는 원래의 사실적 요소들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서 보다 심오하고 영속적이며 본질적인 인간 상황을 추출해 내어 이 작품이 진정으로 보편성을 지니도록 만들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기다린다는 일반적인 상황은 베케트 자신이 겪은 구체적인 체험에서 추출된 것이다. 그는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렸던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우리 인간이 처한 보편적인 인생상황속에서의 기다림을 탐색하는 시발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우린 누구나 다 우리 인생의 대부분을 뭔가 기다리면서 보낸다. 학교에서 우리는 한 학년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시험결과를 기다리며, 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게 되는 날을 기다리고, 그 다음에는 누군가를 만나 결혼하는 날을 기다리고 또한 보다 나은 직장을 얻게 되기를 기다리고 이런 식으로 끝없이 계속해서 뭔가를 기다리며 산다. 하나의 기다림이 끝나면 곧 바로 다른 기다림이 시작된다. 이럼 점에서 볼 때 우리 인생 자체가 일종의 기다림이다. 존재하는 일은 시간속에서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의해서 우리 인생이 결정되어진다고 볼 때 시간 그 자체속에서 진행되는 삶이 기다림이란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예 오지않거나 오더라도 애초에 생각한 바 만큼 좋지는 않을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연극이다. 이 연극이 1960년대에 폴란드에서 처음으로 공연됐을 때 모든 사람들은 고도(Godot)가 누구인지를 알았다. 그것은 결코 오지 않을 자유, 즉 러시아인들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이 연극이 프랑스의 통치아래 있던 알제리아에서 공연 되었을 때 땅을 갖지 못한 농부 관객들은 이 연극이 그들에게 약속된 그러나 아예 실시조차 되지않은 토지개혁에 관한 것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미국의 산 퀜틴(San Quentin)형무소에서 이 연극이 공연되자 고도는 죄수들이며 누구나 다 기다리는 석방을 뜻한다는 점을 죄수들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고 감옥안에서 죄수들에 의해 발간되는 신문은 쓰고 있었다. 한국인들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우린 모두 다 알고 있다. 자신의 체험에서 얻은 사실적인 요소들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를 점차적으로 줄여나감으로써 자신의 작품이 그토록 보편적인 호소력을 갖도록 했으며 구성을 극도로 단순화시킴으로해서 그토록 뛰어난 작품을 창조해 낸 것은 베케트의 능력이다.

사실주의적인 표현에서 멀어지려는 요즈음의 추세는 일반 저작활동에서뿐만 아니라 무대 공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무대공연이 어떻게 점차적으로 사실주의적 경향으로부터 멀어져 왔는지를 알아보는 일은 나에겐 굉장히 흥미있는 일이다. 1955년 피터 홀(Peter Hall)이 연출한 런던 공연은 연기가 상당히 사실적이었다. 두 부랑자들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었고 포조는 누가 봐도 아일랜드 상류계층의 지주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오직 럭키만이 필요상 환상적인 인물로 처리가 된 것을 보았다. 베케트 자신은 1970년도 초기에 그가 연출하여 베를린의 쉴러 극장(the Schiller Theater)에서 공연한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두 주요 인물들이 무성영화 또는 초기의 유성영화에서 굉장한 인기를 누렸던 한쌍의 희극 배우들과 연관이 있음을 강조했다. 로렐(Laurel)과 하디(Hardy)가 가장 잘 알려진 한 예이다. 베케트는 이 두 인물들이 지닌 대조적인 특징들을 서로 뒤바꾸어 놓았다.  그는 뚱뚱한 인물을 키가 아주 작게 그리고 키가 큰 인물을 체격이 아주 야윈 인물로 바꾸어 놓아 무성영화시대에 팻(Pat)과 파타숑을 본떴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베케트는 무성영화에서 유명했던 인물들과 그 극중 인물들을 연관시킴으로해서 의도적으로 그의 인물들을 비사실적인 인물이 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현재 서울에서 공연중인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이런 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블라디미와 에스트라공은 진짜 광대로 만들었고 그들의 움직임이 서로 너무나 잘 맞아 어떤 때는 마치 발레를 보는 것 같았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했던 것 같다. 이것이 작품의 일반성을 더욱 더 강조하여 이 작품이 지닌 심오한 내적 진실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보겠다. 바로 이 점이 이 작품을 우리 시대의 주요한 신화들 가운데 하나가 되게 하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신화는 형태의 이야기보다 더 진실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양식화된 공연은 내가 볼 때 한국연극 그 자체의 전통 즉, 극동의 모든 지역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비사실적인 접근방식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여러 가지 점에서 볼 때 이러한 시도는 베케트의 작품과 매우 잘 맞았다. 베케트와 극동의 연극은 베케트 자신이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한 바있다. 아일랜드의 대 시인 윌리암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rtler Yeats)를 통해 서로 관련을 갖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다. 예이츠는 의식적으로 일본의 노(the Japanese Noh play)를 모방하여 상징적인 무용극을 창조한 바가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베케트의 희곡은 고도로 시적인 예이츠의 운문극보다 훨씬 더 사실적이다. 그러나 발레와 같은 광대의 동작을 곁들인 한국의 <고도를 …>공연을 체험하고 나니 베케트가 사용한 <고도를…>에서의 나무, <행복한 시절>(Happy Days)에서의 흙무덤, <연극>(Play)에서의 장례용 항아리등이 궁극적으로는 예이츠가 사용한 그와 같은 상징들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느낌이 더욱 짙어진다.

내가 이번 서울의 공연에서 다소 의문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 공연의 끝부분이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연극이다라는 대사가 두 번 나온다. 내가 보기에는 극의 구성자체가 이 연극의 주요 메시지를 이루고 있다. 말하자면 구조적으로 1막의 상황이 2막에서 거의 똑같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2막이 대본에 있는 대로 1막과 똑같이 끝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자}라는 마지막 대사 그리고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무대지시문으로 끝난다. 이번 서울 공연에서 두 방랑자들이 나무 양쪽에서 자세를 하고 있는 모습의 그림자 윤곽이 매우 아름다운 이미지를 이루어 마치 종교적인 초상을 보고 있는 느낌을 주는 가운데 2막이 끝났다. 아주 아름다운 이미지이긴 하나 연극이 끝이 나 버렸다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점은 끝부분에서 끝이라는 느낌을 주는 점이 전혀 없도록 하려는 베케트의 원래 의도와는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 번째 날도 첫째 둘째 날과 똑 같고, 포조와 럭키는 형태는 다를지라도 기본적으로 같은 상황이 끝없이 계속되리라는 느낌을 주도록 하려는 것이 베케트의 의도라고 본다.

베케트는 끝이 없다는 개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블라디미르가 2막 처음에 부르는 노래의 의미도 바로 이점에 있다. 독일 학생들이 부르던 오래 된 노래로서 뜻이 안통하는 노래 가사(nonsense verse) 중 초기에 유행했던 가사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어떤 개가 있었는데 이 개가 주방에 들어가서 요리사의 달걀을 훔쳐 먹다가 요리사의 주걱에 맞아 죽었는데 다른 개들이 떼지어 여러 마리 몰려 와서 이 개를 묻어 주고 무덤위에다 비석을 세우고 그 비석에 이 개가 죽게된 사연을 새겨 놓았는데 읽어 보면, 이 개가 주방에 들어가서 달걀을 훔처 먹다가 요리사의 주걱에 맞아 죽어 땅에 묻히고 그 위에 비석이 세위졌는데 그 비석에 새긴 글을 읽어 보면 이 개가 주방에 들어가서 달걀을 훔쳐 먹다가 … 등등으로 끝없이 계속되는 내용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구조 역시 이와 비슷한 순환 구조를 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번 공연에서 마지막 장면을 끝이 나는 것으로 처리한 것은 두 인물을 거의 성화속의 성인이나 또는 좌대위에 앉은 보살의 위치에 올려 놓은 격이어서 새로운 차원의 의미가 도입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것은 마치 두인물이 열방의 경지를 거쳐서 그들의 목표인 구언에 도달했다는 점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러나 아마도 베케트의 비관적 세계관은 너무 지나치게 서구적이어서 극동의 관객으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든 것인지도 모를 것이다.

물론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종교적인 의미를 찾아내려는 이 같은 욕구는 내가 유럽과 미국에서 본 많은 <고도를 기다리며>공연에서 흔히 발견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미국에서의 한 공연에서는 마시아스 그뤼느발드(Mathias Gruenewal)가 그린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의 모습과 비슷한 윤곽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대본에 나오는 십자가위의 예수와 그 좌우의 두 도적에 관한 토론은 그 나무가 어떤 점에서 십자가일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시사해 주고 있기는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곧 이 두 부랑자에게 구원이 있는 것이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베케트는 언젠가 나에게 이 희곡이 성 오거스틴 (Saint Augustine)이 한 다음과 같은 말을 토대로 한 것이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절망하지 말라, 두 도적 중의 한명은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너무 기뻐하지도 말라, 두 도적중 다른 한명은 저주를 받았느리라.}(Do not despair, one of the thieves was saved; but do not rejoice too much, one of the thieves was damned.) 내가 물어보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 희곡에 기독교적인 메시지가 있거나 아니면 당신이 기독교 신자라는 뜻이냐?}라고 그랬더니 베케트의 대답인즉, {천만에 그런 뜻은 전혀 없다. 그저 생각이 서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라는 것이다. 이런 점은 서울공연에서의 발레처럼 서로 잘 맞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좌우대칭의 무대그림이 옳다는 점을 강조해 주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마지막 장면을 끝이 나는 것으로 처리할 경우 작가의 의도에서 근원적으로 크게 벗어나게 된다는 사실을 나타내주고 있다.

럭키의 긴 대사에서 의미를 찾아낸다면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신은 인간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내용이 결국은 이 작품속에 내포되어 있는 메시지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서울 공연에서 이 대사가 다루어진 방식이 내 마음에 들었었다. 단조롭고 기계적이며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대사가 마음에 들었다. 유럽에서 공연되는 대부분의 <고도를 …>공연에서는 이 대사가 낮게 시작되어 점차적으로 더 거칠어지고 광적으로 변해간다. 럭키가 마치 작동을 멈출 수가 없게된 기계처럼 처리된 이 장면의 대사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럭키가 포조보다도 오히려 덩치가 더 크고 힘이 센 인물인 것처럼 설정이되어 있는 점도 좋았다. 유럽과 미국의 공연에서는 럭키는 체구가 아주 빈약하고 작은 반면에 포조는 덩치가 매우 크고 뚱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 포조의 모습이 식민통치자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할 때 아마도 일본의 주인(a Japanese master)과 그의 식민지 노예(his colonial slave)와의 관계와 비슷한 것일 수도 있겠다.

유럽과 미국에서 내가 본 <고도를 기다리며>공연과 이번 서울에서의 공연을 비교해서 얘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쉬운일이 아니다. 베케트의 대본은 너무나도 엄밀 정확하고 경제적으로 절재되어 군더더기가 전혀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다양하고 새로운 해석이 허용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가 도입될때마다 오히려 작품을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베케트 자신도 이런 문제에 관한한 매우 엄격하다. 얼마전 미국의 보스톤에서 있었던 <마지막 게임>공연을 둘러싸고 큰 시비가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연출가가 이 작품의 전체적 배경을 3차대전 후의 뉴욕 지하철역으로 옮겨 설정을 했기 대문이었다. 베케트는 이 공연을 아예 금지시키려고 했었는데 결국에는 프로그램에다 이 공연의 내용이 베케트의 의도와는 상반되는 것이라는 내용과 무대 지시문에 있는 원래의 무대 배경 묘사를 인쇄해 넣는 것을 조건으로 타협을 보았다. <고도를 기다리며>에 관한한 이런 식으로 기본적인 무대배경을 바꿔 공연한 예가 있었다는 말은 아직 들어 보질 못했다. 적어도 길이 있어야 하고 또 나무가 꼭 있어야만 하니까 변화가 있다면 그 대부분이 나무와 관련된 것들이다.

 

원래 아주 키가 작고 빈약한 나무라야 하고 2막에서 잎사귀가 몇 개 생겨 나는 데 그 잎사귀조차 아주 볼품없이 작고 초라한 것이어야 한다. 내가 본 공연중에서 이 부분을 임의로 마구 바꾸어 놓는 자유를 누린 공연이 한 두어 건 있었다. 십자가 위의 예수의 모습이 되도록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나무가 등장하는 공연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가 있다. 다른 공연에서는 잎이 파아랗고 무척 많이 달린 나무를 등장시켜 2막 전체가 굉장히 낙관적인 상징이 되도록 바꿔 놓은 공연도 본적이 있다. 서울 공연의 경우 모든 것을 좌우대칭을 만들려는 욕구가 어쩌면 약간 지나치게 강했던게 아닌가하는 느낌을 받았다. 나무가 무대 정중앙에 위치해 있었을뿐만 아니라 흙무덤 위에 세워져 있어서 나무가 이 연극의 중심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느꼈다. 또한 나무에 매달린 잎사귀도 정확하게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글쎄, 베케트가 좌우대칭을 굉장히 좋아했다는 사실을 연출가가 명확하게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베케트 자신이 직접 연출한 <고도를 기다리며>의 공연에서는 나무의 위치가 중앙에서 약간 벗어난 곳이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유럽과 미국에서 공연되는 <고도를…>에서의 광대 짓거리는 보다 더 잔학스럽고 익살과 재담 역시 온화하고, 발레같은 서울 공연에 비해 훨씬 더 야만스럽다. 예를 든다면 베케트 자신이 방광이 다소 약해서 평소 남보다 훨씬 자주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약한 방광을 블라디머에게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방광이 약하면 웃을 때 고통을 느끼게 된다. 베를린에서 있었던 베케트 자신이 연출한 공연과 니콜 윌리암슨(Nicol Williamson)이 블라디머 역을 맡았던 런던 로양 코트 극장(Royal Court Theatre)에서의 공연에서는 블라디머가 웃을 때마다 동시에 고통으로 인해 묘하게 일그러지던 그의 얼굴 표정이 기억난다. 이 희곡의 장르(genre)를 기가 막히게 잘 표현해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희곡의 부재가 비희극(a tragic-comedy)라고 되어 있으니까. 이와 비슷하게 처음에는 포조와 럭키 그 다음으로 블라디머와 에스트라공이 땅에 쓰러져 눕는 장면 역시 내가 본 대부분의 서양 공연에서는 훨씬 더 잔혹하고 고통스럽게 연기되어지고 있다. 이번 서울 공연에서는 포조와 럭키가 땅에 쓰러져 그냥 가만히 누워 있었다. 다른 공연에서는 이들이 고통에 못이겨 신음하고 울부짖는다. 그럼으로 해서 엄청난 고통 가운데 쓰러져 누운 이 네사람의 인물들이 {무너져 내려} 상실된 인간성을 나타내는 매우 강력한 상징이 되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서의 공연에서 이 장면이 이토록 잔혹하게 처리되는 이유는 베케트의 작품은 유럽의 ― 주로 아일랜드와 영국 ― 음악당 (music hall)에서 공연되던 오락 연애물이나 미국의 익살극(burlegque)에 의존하는 바가 많다는 사실 때문이다. 둘 다 하류층의 가난한 노동자 무산계층(proletariat)을 그 대상으로 하는 신체적으로 매우 격렬한 형태의 민속극(folk theatre)이다. 럭키가 에스트라공을 발로 차는 동작은 익살극의 광대(burlesque comics)가 상대방을 잔인하게 느껴질만큼 사정없이 걷어 차는 행위에서 유래된 것이다. 대사가 몹시 조잡하고 거친 점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점 때문에 런던에서는 처음에 관객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만약 한국에도 이와 유사하게 거칠고 조야한 민속연극의 전통이 있다면 이 같은 측면을 한국 관객이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지는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뮤직 홀이나 버레스크의 전통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영화가 생겨나고 부터였다. 채플린(Chaplin), 버스터 키턴(Buster Keaton), 로렐과 하디 (Laurel and Hardy) 막스 형제들 (the Max Brothers) 등이 이러한 유형의 코메디를 보편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크게 공헌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현대의 위대한 극작가들 중에는 이들 코메디안들에게서 영감을 얻은 극작가들이 여러명이다. 채플린은 브레히드(Brecht)가 가장 좋아하던 배우였으며 브레히트식 연기방식도 채플린을 모델로 하여 창안해 낸 것이라고도 한다. 베케트가 유일하게 영화를 한편 제작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 그는 그 당시 매우 나이가 많았던 비스터 키턴을 선택하여 주역을 맡기기도 했다. 코메디 영화와의 이러한 연관관계는 베케트와 같은 극작가들이 쓴 희곡작품들이 갖는 주요한 특성중의 하나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베케트 자신도 1930년대의 한때에 영화인이 되기를 원해 모스크바의 아이젠쉬타인(Eisenstein)의 지도 아래서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지원서를 낸 적도 있었다. 바로 이 점이 후기에는 베케트가 점진적으로 탤레비젼 극본을 쓰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하게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베케트가 후기에 쓴 가장 주요한 작품들 중 여러편이 <Ghost Trio> <But the Clouds> <Nacht Und Tr ume> <Quad Ⅰ and Ⅱ> 등에서 보게되는 바와 같이 대사에 의존하는 비중이 점차적으로 줄어들면서 대신 이미지에 보다 더 많이 의존하는 길이가 짧은 텔레비젼 극본들이다. 초기의 코메디 영화에서 흔히 사용되던 재담과 재주(gags)는 비사실적이라는 점에서 어느 시점까지는 다분히 양식화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이와 동시에 실제보다 훨씬 더 사실적이었고 어떤때는 현실보다 훨씬 잔혹하고 위협적인 것이었다.

 

이런 류의 익살극(gag-comedy)이 [찰싹 막대기 희극(slap-stick comedy)]이라고 불러워졌던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이런 류의 공연에서는 으레껏 힘껏 그리고 아주 요란하게 서로 때리고 얻어 맞는 소리가 많이 나게 마련이었고 상대방의 얼굴에 크림 파이를 집어 던지는 일도 매우 흔한 일이었으니까. 내가 보기에는 이번 서울공연에서 이러한 재담과 익살스런 동작(gags)이 보다 부드럽게 보다 고도로 양식화되어 다루어졌다고 생각된다. 이로 인한 이점도 있다. ― 즉, 앞서 말한대로, 이 연극을 보다 더 상징적이며 보다 더 철학적인 공연이 되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더욱 더 꿈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이 연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잠자면서 꿈을 꾸고 있는 에스트라공을 내려다 보며 블라디머가 자기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한 바가 있다. 어쩌면 그 자신도 사실은 지금 이순간 꿈을 꾸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꿈을 꾸고 있는 블라디머를 내려다 보며 꿈을 믿는 짓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 보고 있는 장면이다.


이 연극이 공연되고 있는 극장안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거기에는 관객들이 앉아서 블라디머를 쳐다보며 누군지도 모르고 아예 오지도 않을 고도라는 꿈속의 인물을 기다리는 블라디머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바로 이때 블라디머는 흥분하여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다가 마악 기다리는 일을 포기하기로 결심을 굳히려는 순간에 작은 소년이 등장하여 고도로부터 온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기다림은 그냥 계속된다.

서울 공연은 부드럽고 발레와 같은 움직임과 고도로 양식화된 몸짓으로 이 작품에 나타나는 이러한 꿈같은 특질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볼 때는 이번 서울공연에서의 작품해석 방식은 매우 정당한 것이라고 하겠다. 연기 역시 대단히 능숙하다고 느꼈다. 블라디머와 에스트라공이 취한 성화속의 예수와 같은 자세가 시사해주는 의미, 고양이 다리를 하고 어기적거리며 걷는 블라디머의 걸음걸이에서 나타나는 그의 무력함, 영원한 어린 아기같은 에스트라공의 움직임등은 보다 매우 의미 심장했고 대본에 보탬이 되는 바가 매우 많았다고 하겠다. 이 작품을 해석하는 여러 방식들 가운데 하나는 상을 이루는 두 인물들은 각각 한 성격의 양면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다. ― 블라디머는 우리 인간의 마음 중 이성적인 면을, 그리고 에스트라공은 시인이라고 했고 도자기 이름이 커탈럿(Catullus, B.C. 1세기의 로마 서정시인:번역자 주)라고 말하기도 하니 감정적이고 시적인 면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포조는 야만적이고 육체적인 면을 뜻하며 포조를 위해서 [생각한다]고 말하는 럭키는 동일 인물의 지적인 측면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서울 공연에서는 이러한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매우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이 두쌍의 인물들은 인생에 대한 두가지 기본적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그냥 앉아서 뭔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태도와 끊임없이 움직이며 항상 새로운 출구를 찾아내려는 활동적이며 기업가적인 태도가 그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것을 동양과 서양간의 대조로 볼 수도 있다. 한편에는 자기 부정과 사색을 주장하는 극동의 전통 철학이 있고 다른 편에는 개선과 기술적인 진보를 끝없이 추구하는 서구의 파우스트적인(Faustian) 태도가 있다. 물론 끝없이 뭔가를 추구해도 소망하는 목표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든 성공은 단지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실망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베케트는 이러한 갈등을 제시하고만 있을뿐 어느 한쪽을 편들고 있지는 않는다. 그러나 포조의 태도에는 고통과 잔혹한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은 분명하다. 포조는 자기 노예에게 잔인했고, 눈이 멀어버림으로써 스스로 잔인하게 처벌을 받은 셈이니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동양과 서양간의 차이점(contrast)에 대한 희곡이며 다분히 우리 시대의 문제를 다룬 작품(very much a play for our time)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견해가 수세기동안 에스트라공의 방식으로 사색을 해오다가 이제는 포조가 가는 길로 들어선 한국과 같은 나라의 청중에게 받아들여질런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내가 매우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을 단호하게 부인했고 그의 희곡이나 소설속에서 매우 반종교적인 태도를 표명해온 베케트 자신은 마음 깊숙한 곳에 일종의 신비주의자(a mystic)적인 면을 많이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 그의 이러한 신비주의는 힌두교, 불교, 도는 도교와 유사한 점이 많다. 베케트 자신은 자기 작품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을 않겠으니까 비평가들 마음대로 해석하라는 태도를 항상 고집해 왔다. 내 견해를 말하자면 마지막에 가서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에는 사색적인 삶의 태도를 갖든, 활발하게 무엇인가 추구하고 노력하는 삶의 방식을 취하든간에 둘 다 환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블라디머는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기로 결정하려는 순간 그가 가졌던 꿈에서 깨어나는데 이는 사색하면서 기다리는 삶과 격렬하게 무언가 추구하며 사는 삶 중 그 어느 것도 아무런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점을 깨닫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 견해로는 우리가 쳐다보아야 하는 것은 멀리 있는 목표가 아니라 [여기와 지금]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 베케트가 주창하는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달리 말하자면 인생의 매 순간 순간을 마치 그것이 유일하고도 마지막인 것처럼 여기고 살라는 것이다. 내일 온다는 어떤 것을 막연히 기다리며 살지말라는 것이다. 이런 류의 착각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둘다 어김없이 실망으로 귀착된다는 것이다.

인생에 대한 베케트의 태도는 유쾌한 허무주의(cheerful nihilism)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을 즐기되 그것이 짧고 거기에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점을 알고 그 점에 대해 다른 환상을 갖지 않는다는 태도이다. 베케트는 굉장히 열렬한 스포츠 애호가이다. 그는 지금쯤 올림픽 경기 장면을 텔레비젼으로 열심히 지켜 보고 있을 게 틀림없다. 언젠가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고 난 후 그가 내게 하는 말이, {브라질 팀이 경기하는 모습을 보셨어요? 마치 음악 같애요.}라는 것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또 한가지의 운동 경기는 영국의 국기인 크리켓이다. 오스트렐리아 선수들이 시험경기를 갖기 위해 영국에 올 때는 베케트는 그 시합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종종 런던까지 갔다. 수년전 어느 화창한 여름날 아침에 베케트는 그의 친구 (내 친구이기도 해서 내게 이 이야기를 해준)한 사람과 크리켓 경기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 중의 하나인 리젠트 공원(Regents Park)이었다. 아마도 날씨가 매우 좋았고 잔디가 파아랗고 새들이 지저귀고 도처에 온통 꽃이 만발해 있었을 것이다. 베케트가 참 아름답다고 말하자 친구가 {그래, 샘, 이런 날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야}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베케트가 대뜸 {글쎄, 나라면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을 걸}라고 대꾸하더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설명하자면, 좋은 날씨를 즐기되 언젠가는 고통과 죽음이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지는 말라는 뜻이 아닌가 한다.  이점 역시 <고도를 기다리며>에 담겨 있는 메시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모든 점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를 내게 준 임선생의 아름다운 공연에 고마움을 느낀다. 이 훌륭한 작품에 관한 나의 추억의 창고에 이번 서울에서의 아름다운 공연이 추가될 것이며 나는 어느 다른 최상의 공연 못지않게 이 공연을 오래오래 선명하게 기억할 것이다. 임선생께서는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을 내게 주었다. 그 점에 대해 새삼 감사드린다.

[위의 글은 한국연극학회초청으로 1988년 9월 7일 문예진흥원 대강당에서 가졌던 마틴 에슬린의 강연회를 류영균이 통역한 후, 그 원고를 번역하여 월간 한국연극에 게재한것이다.】

 

 

 

 

San Quentin you've been living hell to me
You've called at me since 1963
I've seen them come and go and I've seen them die
And long ago I stopped asking why

San Quentin I hate every inch of you
You've cut me and you've scarred me through and through
And I'll walk out a wiser, weaker man
Mr. Congressman, why can't you understand?

San Quentin what good do you think you do?
Do you think I'll be different when you're through?
You bend my heart & mind and you warp my soul
Your stone walls turn my blood a little cold

San Quentin may you rot and burn in hell
May your walls fall and may I live to tell
May all the world forget you ever stood
And the whole world will regret you did no good

San Quentin you've been living hell to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