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한 거리
"얘들아 제발 붙어 싸우지 좀 마 엉" 쌍둥이 같으면서도 너무 판이한 두 아들은 연년생이다. 13개월 차이로 세상에 나왔다. 저것들이 저리 다른 두 종자(?)가 자그만 내 자궁을 경과해서 세상에 빛을 보다니. 나는 한동안 애들이 다 자라서 품을 떠날때까지도 의아했었다. 큰 애가 초등학교 5학년쯤 되서야 싸움이 좀 잦아들었다는 기억이 어렴풋. 아예 상대를 안 해 줬을까 그럴까 하는 우스운 기억이다. 주변에 막내들은 지천명을 넘겼어도 개붙는 게 특징이다. 툭하면 땡깡을 부리는 와이프 골칫덩어리는 막내인 경우가 많다. 그 기질을 평생 갖고 가다보면 어른 아이란 말을 듣게 되고 마마보이로 오인되기도 한다. 전화목소리를 들어봐도 작은 아이는 낙천이 뚝뚝 흐르고 큰 아이는 뭐가 그리 무거운 짐을 지혼자 다 졌는지 체액이 묻어나는 끈끈한 목소리다. 물론 과제물에 알바에 눈칫밥에 세 시간 통학시간에 엄마에 대한 불쑥불쑥 튀어 오르는 의문점과 그리움에 그럴 수도 있지 충분히 그럴 거야 하면서도 아이와 전화를 끊고 나면 난 맘 한쪽이 항상 저리다. 그에 반해 작은 애는 정반대다.
엄마의 건강과 안부를 챙기는 척 하는 분위기도 둘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작은 애는 그저 자기 기분에 들떠서 큰 아이는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면서 기계음을 삑삑 넣어가면서도 그 어떤 분위기와 자기 사유를 실어서 안부를 묻곤 하는데 녀석이 예술을 제대로 하긴 하는 모양이다 하면서도 한편으론 배려가 좀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얘야 좀 더 조용한 분위기일 때 전화하지 그래" 라고 말하고 얼른 지하철에 태워 보내지만 여운이 남는 건 큰 애의 그 끈적거리는 얼굴(지금은 여드름이 다 사라졌겠지만) 씽긋 웃기만 하고 자랐던 그 귀족스런 미소다. 흔한 사랑의 고백을 접어두어도 좋은 관계란 얼마나 편안한 거리인지. 거리에서 일터에서 일상의 싱크대와 각자의 서재에서 아무 때나 툭툭 던질 수 있는 안부와 가벼운 키스와 그리운 이에 대한 스치는 인사란 또 얼마나 평범한 공기입자인지.
거리에서 우리는 거리를 찾으며 살아간다. 도대체 너와 나란 실존적 관계 안에서 얼만큼의 거리가 더 필요한가 날마다 눈금을 재는 슬픈 본능들은 뜨거운 여름에도 서늘한 가을길 마로니에거리를 거닌다. 그러나 조금의 간격과 사랑의 천칭 침묵과 대화의 균형 서로의 사생활에 대한 배려 은밀한 세계의 자유를 위한 수긍심과 페이소스는 또 얼마나 필요한 삶의 요소인가. 아침에 일어나 앙코르와트를 여행했던 김경미 시인의 여행가방을 읽고 동화 이야기를 쓴 김지은의 글을 읽는다. 집으로 돌아와 책상 옆에 놓아둔 여행가방을 보면서 그녀가 지었을 미소와 뒤풀이와 여행지와의 해후를 그려보노라니 인생에 여행 아닌 길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치유와 전복을 꿈꾸는 동화 이야기처럼 우리 삶 곳곳에 동화는 살고 있고 때론 자신이 그 동화의 주인공으로 살고자 하는 꿈도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서
동화를 지어낸 사람들은 어른일지 몰라도 동화를 읽고 동화처럼 살아가는 자는 정작 어른과 아이의 구분이 없을 것 같다. 청초한 빛의 거리와 간격 안에 떨림을 들여다보노라니 저 음악 위에 숱한 할 말과 사랑고백과 해묵은 침묵까지 고요한 숲으로 흐르고 있단 느낌이 든다. 빌딩 앞 두 남녀의 형상은 도시의 세련된 외모를 갖추었으나 저들 마음의 공간은 숲 속에 서 있듯 보인다. 말없는 두 새의 고개 숙인 숙연한 자태가 밀레의 만종을 연상케 한다. 고요한 소리는 두 사람의 거리에서만 들리는 눈물과 한숨과 회한과 환희와 떨림의 소리가 아닐까. 그만 주절대야 겠다. 내 안의 말들과 내 밖의 말들과의 간격 그 거리의 아름다운 출렁임을 위해서라도. 아이들은 붙어 있는 만큼 싸우고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싸움의 횟수가 줄어 들었다는 화두로 인해, 거리에 대한 푸념이 길어졌다. <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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