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의 기쁨

세바스챠오 살가도의 작품세계

미송 2011. 9. 22. 17:54

 

S#1-Modern Times

 

오늘은 <세바스챠오 살가도>의 작품세계를 살펴 봅니다.

그의 사진집 중에서 저를 가장 사로잡았던 'Uncertain Grace(불확실한 은혜)' 연작에서 이미지를 뽑아보았습니다. 살가도는 다양한 국가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노동과 인간의 소외라는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강제 수용소에서 기아에 허덕이며 죽어가는 수많은 아이들의 모습과 금광에서 온갖 종류의 노동착취속에 짐승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 복잡한 기계공정 속에서 철저하게 부품화된 삶으로 전락된 노동자의 모습이 그의 렌즈 속엔 담겨있습니다.

 

 

 

S#2-Unfailing Grace

 

저는 개인적으로 경영학 중에서 집단과 개인, 그리고 조직이라는 실체를 연구하는 '조직행동'이란 분과의 학문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학문은 다양한 주제들을 다룹니다. 인간의 노동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어떠한 변수들을 사용해야 하는 가를 묻는것에서 부터 시작해서 거대한 변화 앞에서 어떻게 인간이 효율적으로 적응할수 있는가를 다루기도 하고 자신이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어떻게 삶의 의미들을 찾고 그것을 기업의 자산으로 변화시킬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들을 하기도 합니다. 요즘처럼 노동시장이 유연화되고 더이상 직장이란 곳이 내 삶의 부분을 담보해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을 하나씩 깨달아 가는 지금에도, 생산성 향상이란 이름앞에서 끊임없이 대치되어 가는 기계속의 인간이라는 명제 앞에서도 여전히 우리에겐 깨달아야 할 희망이 있음을 봅니다.

 

 

 

S#3-Uncertain Grace

 

위/아래 사진은 특히 Serra Pelda 금광에서 하루 20시간 이상의 노역에 처해졌던 노동자들의 비참한 모습을 찍은 것입니다. 살가도는 누구보다도 경제학의 원리에 대해서 밝았던 사람입니다. 경제학의 수많은 지표들, 숫자들. 이것이 과연 정말로 인간의 행복을 표현해주는 매개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가 태어났던 멕시코는 60-70년대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최고의 경제성장을 달성했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10명중 7명의 아이들이 기아로 죽어 갔고 한편에서는 한사람이 8천달라를 벌어들일때 한사람은 한푼의 페니조차도 얻질 못했습니다. 독재정권과 비효율적인 경제체제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둘씩 저 암흑의 대지 속으로 묻혀야 했습니다.

 

"The kind of fasting I want calls you to free those who are wrongly imprisoned and to stop oppressing those who works for you. Treat them fairly and give them what they earn. If you do these things, your salvation will come like the dawn. Yes, your healing will come quickly. Your godliness will lead you forward, and the glory of the Lord will protect you from behind."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제가 참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요즘 하나 같이 교회들이 성공지상주의에 빠져서 <규모 키우기>와

<자기들만의 하나님을 만들기>에 바쁜 시대일수록, 저 태고적 선지자 이사야의 불호령이 머리 속에 명징하게 남습니다. 자신의 의와 성취만을 강조하고 자신의 물질적 성공에 대해서 정신적인 위안이나 받기에 혈안이 된 세대. 목자들은 하나 같이 성공한 자에 대한 찬양과 실패한 자에 대한 우롱으로 가득해버린 황량한 말씀을 선포하며, 자신들의 값싼 설교집이나 마케팅 Marketing 하는 세대.

 

 

 

 

이런 세대일수록 내 안에 계신 분이 약속한 꺽이지 않는 절대적인 은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 스스로 그 은혜의 무게를 가볍게 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는지 물어보지 않을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대하여 바보가 되어야 그는 내 안에 계신 분의 기준에선 훌륭한 자일수 있음을... 그 역전의 법칙을,
바보의 법칙을 오늘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다소 무거운 이미지로 가득한 살가도의 사진을 살펴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 안에 자신들에게 외쳐 보길 바랍니다. 아직까지 내 안에서 꺽이지 않은채 불타고 있는 희망을 바라보자고 말이죠. 그리고 그 희망의 원천이 과연 어디에서 오는것인지 잊지 않는 우리가 되길 바래봅니다.

-김홍기의 '사진 읽어주는 남자' 中에서


 [그래도, 희망을 꿈꾸어야 할까. 그래야 하겠지. 이따금,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게 부끄러워진다.
굳이, 천주.기독교에서 말하는 原罪 (Original Sin)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오직, 인간들에게만 있는
끔찍한 사악함과 잔인함의 본성을 본다. 그러면서도, 인간들의 입에는 줄창 사랑이 달려있다.

정직한 동물이나 식물들은 감히 그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그 가증스러운 거짓됨.

인간의 파괴성, 기만성, 이기심, 사악함, 거짓됨, 증오심, 동종同種에의 殺意心, 시기, 질투 等만 생각하더라도...인간존재가 동물이나 식물, 혹은 광물鑛物보다 가치있고 우월하다는 근거는 하나도 없다.

같은 種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죽이는 것도 이 광활廣闊한 우주에서 오직 인간밖에 없다. 인간존재에 있어 唯一한 구원의 근거는 오로지 사랑인데, 불행 중 다행인지 몰라도 그것만이 동물이나 식물 또는
광물에게는 없는 유일한 정신작용이요, 감정이다. 그런데, 지금의 인간세상은 인간존재의 유일한 이유인 그것마저 희미해지거나 사라져 간다.

조물주에게 만약, <自己意識>이란 게 있다면 지금쯤 인간을 만든 걸 지극히 후회할 것이며 그의 실수를 최종으로 확정하는 순간 우주의 평화로운 靈性의 질서회복을 위해 하등의 망설임 없이 모든 인간들의 영혼을 회수함으로써 그 존재를 滅할 것이다. 따라서, 인류에게 있어 (조물주가 그들에게 부여했던 사랑)의 회복만이 최후의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조물주가 그의 실수를 최종적으로 인정하기 전에...아니, 이미 인정하고 그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안희선)
]


 

신존재 증명이나 배경의 이론을 떠나, 인간과 사회에 대한 회의(懷疑)감의 반증은 인간들끼리도 충분하다. 누구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상처입은 자라고 말을 하지만 - 마치 중2병(우울한 이유는 몰라도 되고, 무조건 자신이야말로 최고로 우울한 존재라고 집착하는, 그런 류의 病症) 걸린 어른아이들처럼-  따지고 보면 우린 피해자인 동시 가해자이다. 좌절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도무지 일어나지 않는 기적 중 하나인 '서로를 묶은 쇠사슬을 풀지 않고 (무덤이나 죽음 직전까지) 간다는 사실. 우리가 우리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않는데 그 어떤 신이 개입될 수 있나. 공허한 신. 20년 전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숨어계신 신'으로 존재한다. 이성으론 개념이 안 잡힌다.  (오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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