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화

엠페도클레스

미송 2011. 10. 19. 18:49

 



사랑과 미움의 원저자 엠페도클레스

 

 

결합과 분리라는 변화의 원리를 사랑과 미움이라 말한다면, ‘사랑은 모든 것을 결합시키고 미움은 모든 것을 분리시키는 그 어떤 보이지 않는 원소이다.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의 철저한 논증방식을 고대 희랍사람들은 좀처럼 쉽게 반론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있는 것을 없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도 없다. 실제로 이 세계에는 다양함과 변화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러했다. 만물의 근본이 되는 그 어떤 존재의 불생과 불멸은 인정하자. 그러나 공허가 즉 무()라고 하는 전제는 포기하고 공허를 원소의 이원집산으로 설명하자. 이것이 다원론에서 원자론으로 이르는 길이다.

 

시실리아섬의 한 도시 아그리겐토에서 태어난 엠페도클레스는 한편으로 피타고라스식의 신비적인 자연 철학자로서 다원론을 내세우고 있기도 했다. 그는 의사인 동시에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치가이자 변론가였고, 당대의 시인이자 철학자였다. 철학사적으로 볼 때 그는 독창적 사상가라기보다 오히려 여러 학설을 모아 새로운 하나의 학설로 조화시키려 했던 절충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스스로 신이 되고자 에트나 화산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이 신이 되었다는 것을 믿어 주길 원했으나, 그만 그의 신발 하나가 분화구에서 다시 분출되었던 탓으로 신이 되고자 했던 의도는 수포로 돌아갔으나 어쨌든 증발한 것만은 확실하다.

 

그는 이 광활한 우주는 불과 물, , 무한한 공기의 네 가지의 근원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고, ‘죽어야 하는 어떤 것에도 탄생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우리가 주저하는 죽음이란 종말이 아닌 것이다.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결합과 분리일 뿐, 탄생이란 다만 인간이 이들에게 붙인 이름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고대 중국의 오행(, , 나무, , )원리와 비슷하다. 어쨌든 그는 만유를 네 가지 기본적인 원소들, 즉 불, 공기, , 흙이 여러 가지 비율로 뒤섞여 존재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일정한 수의 궁극적인 원소들을 설정하고 나서 확정된 수학적 비율에 따른 그것들의 결합에 주목함으로써 화학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이러한 이론은 18세기 초엽까지 타당한 것으로 여겨졌다.

 

엠페도클레스는 영원하며 항존적인 실체를 주장한 파르메니데스와 생성의 이념인 변화와 운동, 변이를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의 견해를 결합시켰다. , 불변의 존재인 네 가지 원소들은 결합과 분리를 통해 재배열되는데, 이때 동력은 결합과 분리의 운동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엠페도클레스는 결합과 분리라는 변화의 원리를 사랑과 미움이라고 말하며, ‘사랑은 모든 것을 결합시키고 미움은 모든 것을 분리시키는 그 어떤 보이지 않는 원소라고 주장했다. 자연과 인간은 결국 동질(同質)의 것에 의하여 통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흙으로 흙을 보고, 물로 물을 보고, 공기로 공기를 보고, 불로 타오르는 불을 보고, 사랑으로 사랑을 보고 미움으로 미움을 보는 것이다.

 

훗날 아리스토탈레스도 유사한 것은 유사한 것에 의하여 알려진다고 공식화했다. 엠페도클레스의 주장과 유사성이 보인다. 이러한 생각은 그리스 철학 전체를 특징짓는 것이었다.

 


흙으로 흙을 본다

 

흙으로 흙을 본다는 원리를 기독교식 해석으로 풀이하자면 어떻게 될까. 철학자 헤겔의 말을 빌리면 산과 산을 바라보는 사람과의 사이는 객체와 주체의 관계이나 인간과 신, 정신과 육체 사이에는 이러한 주객체성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이것은 신과 인간의 동일시라는 비기독교적인 발상인 것 같으나 어떻게 보면 가장 기독교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권으로 읽는 철학이야기 (박성숙 편역) 中   채란 타이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