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념론(實念論)과 유명론(唯名論)의 논쟁에 끼여든 아벨라르
한 개의 개체를 몇 가지의 다른 상태로 구분하기 위해서는 동일의 개체에 특수성과 공통성이 동시에 내재해야만 하는데, 여기서 특수성은 개체의 본질적인 것이고 공통성은 개체의 형상적인 것이다. 결국 보편은 개체의 본질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형상 속에도 있는 것이다.
카톨릭 교회를 우리는 흔히 성당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카톨릭 교회가 신자들을 신 앞에 이끌어 모아놓고 빠스카(미사)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제사형식과 같은 의식에서 연유된 말이다. 그리고 그 의식은 모든 사물 자체에는 참실재인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하는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흡사한 면이 있다.
카톨릭 교회의 신은 아버지와 아들과 신령이라는 삼위일체론이지만, 만약 이 삼위에 공통의 보편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이 삼위란 3개의 신으로 각각 존재하게 된다. 아담의 죄는 십자가의 예수에 의하여 구제되었으나, 그것이 인류라는 보편이 아니라면 원조의 구원은 제 각각의 의미로 와전되어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예각도 둔각도 그리고 직각도 아닌 보편 삼각형이 실재할까? 소크라테스에게도 플라톤에게도 없는 보편인간이 실재할 것인가? 그러면 보편이란 과연 어떠한 자격을 갖고 있는 것인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답을 구하고 있는 이들 물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의 어떤 주역서에 의해 전해졌다.
거기서 보편이란 실재하는 실체인지 아니면 사고상(思考上)의 관념인지, 또 실재한다고 한다면 물체적인 것인지 비물체적인 것인지 사고상의 관념이라면 감각적인 것과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인지 그 속에 존재하는 것인지를 규명하려 하였다. 물론 거기에는 실념론적 입장과 유명론적 입장의 주장이 제각기 대립하고 있다. 여기서 실념론을 리얼리즘, 유명론을 노미널리즘이라고 한다.
최초의 스콜라 철학자라고 일컬어지는 로스케리누스는 최초의 유명론자로 간주된다. 1050년경 파리 근교에서 태어나 1092년에 소앗송의 종교회에서 이단이라고 비난받자 처형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에피소드가 정통적인 교회의 파괴적인 힘을 시사하고 있다. 그가 철회한 주장의 일부를 안셀무스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신이란 단지 소리로서만 알 수 있는 바람과도 같은 것이므로 인간의 지혜를 갖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보편에 대해서는 유명론이 실념론보다도 개체를 더 중시하였으므로 논리보다도 경험에 의한 근대의 합리주의를 탄생시키는 데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최초의 유명론자인 로스케리누스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인 아벨라르는 삼위일체론을 유명론적 입장에서 변증법적으로 논증했다. 그의 변증법은 대립하는 실념론의 의견을 들어 '그러함과 아님'이란 형식논리적인 방법이었다.
아벨라르는 12세기의 저명한 프랑스 스콜라 철학자이사 신학자로, 여제자 엘로이즈와의 연애사건으로 유럽을 떠들석하게 한 인물이기도 했다. 낭트 부근 팔레에서 태어나 22세 때 파리로 나가 A. 기윰으로부터 당시 변증법이라고 일컬어지던 논리학과 수사학을 공부했다. 한 공개토론에서 스승 기욤을 압도한 것으로 유명한 그는 파리 성당 학교의 교수로 있으면서 문필과 강연에도 크게 활약하였다.
엘로이즈와의 연애는 두 사람이 성직자였기 때문에 특히 여론을 자극하였는데, 내면의 세계를 그린
<나의 불행한 이야기>는 온 유럽 독서계를 풍미했고, 교황청 안에서도 몰래 읽혀졌다고 한다.
그의 철학은 실념론과 유명론의 중간 설인 개념론에 서서 보편은 정신이 개체에 관하여 자기 안에서 만들어 내는 관념상(觀念像)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변증술을 신학에 적용하여 '삼위일체설'을 제창하였다.
1140년 아벨라르가 상스공의회에서 다시 논란되고 이단으로 단죄되어 2년 뒤에 사망하자 그 뒤 엘로이즈는 22년 동안이나 그의 무덤을 지키다가 63세의 천수를 누리고 사망했다. 두 사람의 서한은 13세기부터 이미 유명해졌으며, 인간적인 애정이 넘쳐 흐르는 내용은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주고 있다.
보편은 형상 속에도 있다
아벨라르의 믿음과 앎으로 삼위일체론에 대한 유명론적 입장을 피력하였다.
"나는 종교회의에서 배척당한 철학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또 그리스도에 멀리 떨어진 아리스토텔레스가 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그의 처녀작인 <삼위일체론>은 종교회의에서 소각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만년에는 이단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벨루타뉴의 낭트 근처에 있는 소영주의 장남으로 태어난 아벨라르는 기사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으나 오히려 학자의 길에 뜻을 두어 상속권마저 포기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고 학문의 여신 미네르바의 뜻에 따랐다. 검(劒)의 힘보다도 펜의 힘 쪽이 승리할 가능성이 많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그 후 유명론자들의 기사가 되어 그는 보편에 대한 논쟁을 되풀이하며 각지를 편력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적들을 만들어만 갔다.
어떤 논자(소앗송의 죠스랑)의 주장은 이러하다.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에서 우리가 얼른 추측해 낼 수 있는 형상적 모습은 소크라테스라는 존제의 외부의 그 어느 곳에서도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소크라테스라는 실체를 유지하고 있는 그 인간의 본질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유명론자들에게는 소크라테스 내부에만 있는 인간의 본질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아벨라르의 부장은,
"실념론이나 유명론이나 모두 동일의 본질 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형상적으로 각각이 다른 국면에 놓여 있다. 즉, 한 개의 개체를 몇 가지의 다른 상태로 구분하기 위해서는 동일의 개체에 특수성과 공통성이 동시에 내재하여야만 하는데, 여기서 특수성은 개체의 본질적인 것이고 공통성은 개체의 형상적인 것이다. 동일한 개체를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는 것은 개체 그 자체에 보편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결국 보편은 개체의 본질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형상 속에도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아벨라르는 보편을 '억견(臆見)', '혼란했던 표상(표상)' 이라고 기사처럼 자신감에 들떠 '나는 어떠한 논쟁의 적을 만나도 두렵지 않다. 이제 이 세상에는 나의 논리에 대적할 만한 철학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한 번은 파리의 노틀담 참사회원인 휴르베르가 이 고명한 철학자에게 재색을 겸비한 17세의 조카 엘로이즈의 교육을 맡겼다. 물론 그것은 그녀에게 철학교육을 가르친다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사랑을 가르치는 실마리가 되고 말았다. 책은 펼쳐 놓았으나 수업에 관한 것 보다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고, 격언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행동하는 쪽이 더 많았다.
아벨라르의 손은 점점 책보다는 그녀의 가슴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드디어 두 사람은 아벨라르의 고향으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밤, 숙부 휴르베르에게 매수된 괴한들이 아벨라르를 습격하였다. 그리고 그는 사마천이 받았던 것과 같은 궁형(남자의 성기를 자르는 형벌)을 당하였는데, 그것도 자신의 손으로 자르고 말았다고 한다. 이데 대해 프랑소와 비용은 이렇게 노래했다.
지금 어느 곳에 있을까. 아름다운 엘로이즈.
그녀 때문에 거세된 아벨라르는
지금 성(聖)도니의 승방(僧房)에 깊이 숨어 있다네
이 모두 사랑의 인과응보
하지만 작년에 내렸던 눈은 올해도 내릴 텐데
뿌리도 줄기도 없는 아벨라르에 관한 소문에 의하면 그 이야기는 이러하다. 어느 날 밤 아주 힘이 센 남자들 두 명이 아벨라르의 방에 침입하였다. 그 중 키가 큰 한 남자가 아벨라르의 머리에 일격을 가해 정신을 잃게 하고는 그의 몸을 검은 천으로 된 푸대자루에 담아 조용히 어둠 속 어딘가로 옮겨갔다. 아침이 되어 의식이 돌아온 아벨라르는 자신의 헛간과 같은 곳에 처박혀 있고 주위에는 건초더미가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옆에서 한 남자가 칼을 날카롭게 갈고 있었다. 그때 그 남자가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는 휴르베르였다. 갈고 있는 날카로운 칼이 그의 손에서 번쩍 빛나고 있었다.
"당신은 신에게 봉사하는 나를 죽이려 하는가요?"
아벨라르는 그렇게 소리치며 몸을 일으켰으나 이내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성기가 교묘하게 만들어진 족쇄로 채워져 헛간의 기둥에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분 나쁘게 히죽거리고 있던 휴르베르가 말했다.
"네 놈의 성기를 내 손으로 자를 순 없어. 그러나 너는 선택을 해야만 할 것이다."
휴르베르는 칼을 아벨라르의 손이 미치는 곳에 가만히 놓고는 밖으로 나갔다. 멀어져 가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뭔가 타는 냄새가 풍겨왔다. 연기가 가득차며 건초더미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상황은 급박하였다. 선택의 여지가 있을 수 있었을까.
*한권으로 읽는 철학이야기 (박성숙 편역) 中 채란 타이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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