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의 그리움 (Fernweh)

먼 곳에의 그리움 (Fernweh)

그것이 헛된 일임을 안다.
그러나 동경과 기대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무너져 버린 뒤에도 그리움은 슬픈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나는 새해가 올 때마다 기도 드린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어떤 엄청난 일, 무시무시하도록 나를 압도시키는 일.

한마디로 '기적'이 일어날 것을 나는 기대하고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모험 끝에는 허망이, 여행 끝에는 피곤만이 기다리고 있을 줄을 잘 안다.

그리움과 먼 곳으로 훌훌 떠나 버리고 싶은 갈망,

바하마의 시구처럼 '식탁을 털고 나부끼는 머리를 하고' 아무 곳으로나 떠나고 싶은 것이다.

 

 

먼 곳에의 그리움(Fernweh)!

모르는 얼굴과 마음과 언어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은 마음! 텅 빈 위胃와 향수를 안고

돌로 포장된 음습한 길을 거닐고 싶은 욕망.

아무튼 낯익은 곳이 아닌 다른 곳.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나에게는 있다.

 

포장마차를 타고 일생을 전전하고 사는 집시의 생활이 나에게는 가끔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노래와 모닥불가의 춤과 사랑과 점치는 일로 보내는

짧은 생활, 짧은 생. 내 혈관 속에서는 어쩌면 집시의 피가 한 방울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혼자 공상을 해 보고 웃기도 한다.

내 영혼에 언제나 고여 있는 이 그리움의 샘을 올해는 몇 개월 아니 몇 주일 만이라도 채우고 싶다.

너무나 막연한 설계, 아니 오히려 '반설계'라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플랜은 그것이 미래의 불확실한 신비에 속해 있을 때에만 찬란한 것이 아닐까?

이루어짐 같은게 무슨 상관 있으리요?

 

동경의 지속 속에서 나는 내 생명의 연소를 보고

그 불길이 타오르는 순간만으로 메워진 삶을 내년에도 설계하려는 것이다.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특권이야말로 언제나

새해가 우리에게 주는 유일한 선물이 아닌가 나는 생각해 본다.

- 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에서.

 

 

 

Fernweh : 멀리라는 뜻의 'Fern'과 아픔이라는 뜻의 'weh'가 합쳐진 말로 "먼 곳에 대한 뜨거운 동경"을 의미. 

 

  You' ll Never Walk Al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