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일기

붉은 엽서

미송 2015. 2. 20. 13:49

     

     

     

     

     

    붉은 엽서 / 오정자

    한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은
    태양만큼 어둠도 깊기에
    짧은 팔을 힘껏 벌려 벅찬 하늘을 끌어안아야 하느니
    끝까지 공중에 매달려 놓지 말아야 하느니
    이에는 색다른 집념이 필요할 것이라

    가까이도 멀리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어렵기에
    늘 자로 잰 듯이 고집을 부리는 자리에 스스로를 위치시켜
    그렇게 손에 잡힐 듯 한 거리만큼 떨어져 서는 일
    이 또한 극적이라서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젖은 옷자락처럼 약간의 슬픔을 머금기도 하며
    빨랫줄에 걸린 눈부심이라
    큰 기쁨은 빈 뒤뜰로 몰래 찾아오는가 하여
    나 홀로 팔 벌려 하늘을 끌어안으려 펄럭펄럭
    그렇게 웃으며 바라는 사람아.

     

     

    왜 붉은 엽서인가. 붉다는 건 살아있는 정열의 상징이리라. 동시에, 그 어떤 그리움의 맺힘이 뿜어내는 정한情恨의 빛깔이기도 하다. 멀리서 보면, 그리워 만난 일 없어도 자꾸 그리워, 뒤꿈치를 한껏 들어 바라보는 하늘이 눈부시다. 실은, 홀로 팔 벌려 그 하늘을 끌어안는 사람이 눈부시다. 스스로 맑아지는 그의 모습이 눈부시다. 사랑에 그 무슨 간격이 필요하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겠지만, 간격을 두고 상대를 고요히 바라보고 사랑하는 일도 보다 심화深化된 사랑의 한 모습일 수 있다. 그것이 비록 상대방을 향한 허무한 정서적 소모는 아닐까 하는 보상욕구補償欲求의 회의懷疑가 들더라도 사랑, 그대로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소유욕을 끊임없이 비워감으로써 최후의 긍정적인 자기인식自己認識과 만날 수 있다면, 그것 하나 만으로도 족한 일이 아니겠는가. 스스로 맑아지는 자신의 영혼 하나, 건지는 일이 아니겠는가.

    <안희선 시인>

     

    미국 産 산딸나무


     

    배경음으로 소개하는 曲은 '히토토 요 Hitoto Yo' 의 2004년 2월에 발매된 5번째 싱글,
    '하나미즈키(ハナミズキ)' 입니다.

    '하나미즈키'는 나무 이름으로 한국에서의 이름은 '미국산딸나무',
    혹은 '산벚나무'라고도 하죠.

     

     

    하나미즈키(ハナミズキ) - Hitoto Yo

    하늘을 밀어올리며
    손을 뻗는 그대, 오월의 일이죠
    부디 와 주기를
    물가까이 와 주기를

    꽃봉오리를 줄게요
    정원의 하나미즈키

    엷은 분홍빛 귀여운 당신의
    끝없는 꿈이 분명히 끝을 맺기를
    그대와 좋아하는 사람이 백년 이어지기를

    여름은 너무 더워서
    내 마음 너무 무거워서
    함께 건너려면
    틀림없이 배가 가라앉아 버릴 거예요

    부디 가세요
    먼저 가세요

    내 인내가 언젠가 결실을 맺어
    끝없는 파도가 분명히 멎을 수 있기를
    그대와 좋아하는 사람이 백년 이어지기를


    가벼이 날개짓하는 나비를 좇아
    흰 돛을 펼치고
    어머니의 날이 오면
    미즈키의 잎을 보내주세요

    기다리지 않아도 돼요
    알지 못해도 돼요

    엷은 분홍빛 귀여운 당신의
    끝없는 꿈이 분명히 끝을 맺기를
    그대와 좋아하는 사람이 백년 이어지기를

    내 인내가 언젠가 결실을 맺어
    끝없는 파도가 분명히 멎을 수 있기를
    그대와 좋아하는 사람이 백년 이어지기를


 

         

 

          20110515-201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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