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이 있는 방 / 오정자
차양이 넓은 모자를 쓴 여자가
천정 높은 엘리베이터 거울 속 얼굴
화장을 슬쩍 점검합니다
금방 면도를 마친 남자가 거울 속 얼굴
양쪽 구레나룻 길이를 재빨리 확인한 후
서둘러 벽을 관통하여
방사선에 힘입어
자기의 진면목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사람들의 등허리며 허리가
뚜렷하고 날렵합니다
흐드러진 꽃잎 같은 그녀의
앞섶이 더더욱 느슨해지는 순간
중심을 잃은 사람들의 체온이
벽 속으로 말끔히 씻겨져 사라지고
이제는 아무도 없는 방입니다
고요하게 커튼이 드리워진 방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타고 내리는 엘리베이터. 어찌보면, 참으로 심상尋常한 일상日常일 수도 있습니다. (그 심상함이 지나쳐, 저 같은 경우는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그저 답답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가끔, <시인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곤 하는데. 시인을 일반인과 구분하려는, 그러니까... 특화特化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지만서도. 삶 속에서 마주하는 수 많은 대상對象들에 <자기 자신>은 물론, <너와 나> <세상의 모든 것>까지를 결부시켜 형상화形象化 하려는 매력적인 견해와 시각을 갖고 있는 이색적인 존재라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네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 저 역시, 이따금 그들에 대해 제 나름의 생각이랄까 짐작 같은 걸 할 때가 있는데... 가끔은 그들의 인생을 그 짧은 시간에 훔쳐 읽어보려는 엉뚱한 충동도 느낍니다. 하지만, 저마다 무표정의 굳건한 커튼이 드리워져 충동 그 자체로 머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요. 혹여, 내 삶이 섣불리 읽히지는 않을까 하는... 그들의 본능적 방어기제防禦機制가 만만치 않기도 하고 해서.
어쨌던,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은 대체로 무표정한 서먹함이 가득한 곳인데요. 시인은 용케도, 그 어색하고 좁은 공간 안에서도 짧은 시간에 참으로 많은 걸 읽고 있군요. 사실, 그와 같은 '바라봄'은 경직된 사고思考로는 힘든데요. 뭐랄까... 마치, 어른스러움 속에 아이다운 맑은 시야 Sight라 할까. 그런 시야視野야 말로 대상對象을 <불투명한 전제前提> 혹은 <가로막음>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일 수 있기에... 좁은 공간 안에서 짧은 시간 동안 오가는 사람들의 묘妙한 심리心理 . (저 개인적 느낌으로는... 그 어떤 성적 충동도 가미加味되어 있는 듯한) 그들이 그렇게 한바탕 등장했다가 벽 속으로 모두 사라진... 하여, 이제는 고요한 커튼이 드리워진 엘리베이터. 대상에 관한 관조觀照의 자세가 시인의 심상사고心像思考를 통해, 보다 감각적으로 형상화된 시 한편이란 생각을 해보며... <안희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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