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일기

물방울 속 물방울

미송 2015. 3. 22. 08:21

 

 

물방울 속 물방울 / 오정자  

道可道非常道名可名非常名
도덕경에 이른 노자의 말이나 당신 목소리나
맹신의 손가락을 도구로 삼기는 마찬가지다
솔개가 아닌 이상 창공만 휘젓다 사라질 수 없는
비명도 침묵도 인간도 운명이다 우주라는 커다란 물방울
큼지막한 물방울 속 내 연애하던 풀잎 물방울
추억 속 그 물방울 안에는 수많은 눈물이 들어 있다 
무너뜨리거나 갈가리 끊어버릴 수 없는 먼지들
어딘가에 매달려 있어야 살 수 있는 맑디맑은 존재들이란  
수많은 물방울이자 유일한 물방울
잎-잎 발성됨과 동시에 놓쳐버릴 곡두穀頭의 배신
한 꺼풀 영혼의 벽에 기댄 당신 한사코 포옹하려는
마지막 언어는 무엇인가.

 

시의 모두冒頭에 道可道도가도 非常道비상도 名可名명가명 非常名비상명을 말하고 있어, 적잖이 예사로운 느낌은 아닌데. (도를 도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이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항상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시를 일견一見하니 무엇보다, 이 詩의 백미白眉는 ‘ 물방울 속의 세상 ’과 ‘ 물방울 밖의 세상 ’의 소통疏通에 있다 할까.

 

마치, 풀잎 끝에 맺힌 물방울 속 모습에서 나와 우주라는 물방울의 존재를 인식認識하는 것처럼. 이런 설정은 불가佛家의 화엄사상과도 그대로 맞닿아 있다고 보여지는데. (비록, 기독교 신학을 전공한 시인이 詩的 설정에서 염두念頭하지 않았다고 유추類推하더라도 ---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화엄경華嚴經의 뜻을 압축해 풀어낸 의상대사의 법성게法性偈는 이 시를 적절히 설명해주는, 단초端初인 것도 같구.

 

‘ 一中一切多中一 一則一切多則一 /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 하나 안에 일체가 있고 일체 안에 하나 있어,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니라 / 한 티끌 그 가운데 온 宇宙를 머금었고, 낱낱의 티끌마다 온 우주가 다 들었네 ’ 결국, 일체一切가 지니는 실상實相에는 본질적本質的으로 시간 및 공간의 한정적인 개념이 성립되지 못한다는 거. 시인이 詩에서 한사코 포옹하려는, 마지막 言語도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안희선> 20110820-20150322

 

 

 

 

 

 

 

 

 

 

 

 

 

 

'바람의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게도 사랑이  (0) 2015.10.26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0) 2015.04.13
붉은 엽서  (0) 2015.02.20
붓질이거나 춤  (0) 2015.01.24
커튼이 있는 방  (0) 2014.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