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뮈도 공무원이었다…전업작가가 될 수 없다면?
[나도 책 쓴다]<3> 불어로 책을 쓰든가
회사를 그만 둘 때 우리는 꿈을 꾼다.
큰 유리창으로 된 카페에 앉아 있다. 따뜻한 햇살과 커피. 맥북을 꺼내 놓고 음악을 듣는다. 잠시 후 당신은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때는 화요일 오후 1시, 사람들은 종종 걸음으로 회사로 향한다. 웃는 얼굴로 여유 있게 화면으로 눈을 돌린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작가는 시간을 지배한다. 직장인이 주어진 시간에 산다면 작가는 자신이 계획한 대로 글쓰기를 하게 된다. 독자는 책 속의 시간에 갇힌다. 이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작가라는 로망을 갖는다. 자신이 만든 시간에 글을 쓰고 자신이 만든 시간에 독자를 가둔다. 그러나 현실에서 전업작가와 직장인은 일하는 시간대만 다르다. 대필과 기고로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쓸 수 없다. 시간을 내지 못한다. 게다가 강의까지 하면 직장 생활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은 '유형2'로 살 수 밖에 없다. (유형2는 전회 연재에서 확인하시길…) 일단 본업은 가지고 있고 부업으로 저자를 해야 한다. 직장 생활하면서 글을 쓰려면 얼마나 힘들까? 힘들고 지치고 스트레스에 술도 먹어야 한다. 자기계발도 해야 한다는 주변의 잔소리에 심리적인 위협까지 받는다. 부업작가로 살기도 만만치는 않다. 작은 결론을 내본다.
작은 결론.
하나. 작가는 힘들다.
하나. 작가의 99%는 부업 하는 전업작가와 직장인 부업작가 두 종류로 나눈다.
하나. 작가의 1%는 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와 정년퇴임한 작가와 부업 하는 전업작가를 대필작가로 고용한 사용자이다. 혹은 배우자가 훌륭한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부모가 훌륭한 사람도 포함된다.
많은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가난하게 시작한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의 저자 김훈은 책을 쓰는 이유를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강연에서 밝혔다. 1000만 부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은 태어난 아이와 생활비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때 남편은 감옥에 있었다. 독자와의 소통을 하고 독자가 감동을 받고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책에서 우리는 배고픔을 느껴야 한다. 조앤 롤링의 배고픔은 유모차에 누워있는 아이가 있어 더욱 슬프다. 스티븐 킹도 아이가 열이 39도까지 올랐는데 병원에 갈 돈도 없이 집을 나서야 했다. 그래도 이들 모두 성공했으니 신화처럼 이야기가 전해진다. 성공도 그냥 성공이 아니다. 김훈, 공지영, 조앤 롤링, 스티븐 킹이다. 수억에서 수백억의 인세를 받고 있는 작가들이다.
유명 작가이고 이미 부자가 된 작가가 인세 문제로 출판사와 다툰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돈을 밝히는 작가'는 오명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촘촘히 박혀있는 가난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가난은 본인 뿐 아니라 가족과 주변을 힘들게 했다. 이문열은 어릴 적 배고픔 때문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후에도 거실에 쌀가마니를 쌓아두었다고 고백했다. 거실을 지나다 괜히 쌀가마니를 발로 건드리며 흐뭇했다는 그의 글에서 우리는 작가의 기억을 만나게 된다.
어떤 영화 시나리오 작가는 굶어 죽었다. 이 죽음에 대해 많은 영화인들과 예술인들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들은 후회하고 자책했다. 예술을 대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도 했다. 향후 예술인의 생활대책에 대한 정책적인 논의도 되었다. 우리 집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그가 죽은 이유보다 죽었다는 사실에 내 부모님은 더 관심을 가졌다. 한나라당 당원 아버지는 '죽긴 왜 죽어. 뭐라도 해서 먹고 살아야지.' 민주노동당 지지자 어머니는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라고 말했다.
가혹하게 말하든 불쌍히 여기든 그가 받았을 고통에 숙연함을 갖는다. 문자가 생긴 이후로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작가는 굶어 죽는 위협에 시달린다. 그리고 굶어 죽기도 한다. 이것이 작가가 만든 결과일 수도 있고 사회가 만든 상황일 수도 있다. 원인과 결과를 따지기 전에 이미 작가는 위협에 시달리며 산다. 이것이 사실이다.
작가 선언만 하면 차비와 밥값을 주는 정부는 없을까? 불어로 쓰면 가능할 수도 있다. 한글로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은 하지 말자. 못된 생각이다. 프랑스에서는 작가 지원제도가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부족하지만 한국보다는 많다. 한국도 등단한 작가를 위해 초중고에 작가 파견 사업을 하거나 각종 공모를 통해 지원금을 주고 있다. 소수 작가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작가 김현진은 생식배달을 했다. 전업작가의 생활이다. 작가에게 연재는 첫 번째 행복이다. 안정된 고료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연재가 없다면 언제 올지 모르는 원고청탁을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고정 수입이 없는 전업작가가 선택한 길은 생식배달이다. 김현진의 글은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에서 볼 수 있다. 시사in에서도 한겨레21에서도 본다. 고정팬도 있다. 그리고 책도 세 권 있다. 그런데 생식배달을 해야 했다. 글로 생계를 해결하지 못하면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일단 살아야 작가다. 스티븐 킹은 빨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작은 테이블에서 틈틈이 글을 썼다. 작가 김현진은 새벽에 생식배달을 했다.
이것이 미래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회사를 그만두면 안 된다. 그만두게 되더라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글쓰기를 위해 글쓰기 말고 우선 다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라.
좋은 생각이다. 생명보험사 이사가 책을 냈다. 소설이나 에세이가 아니다. 재테크와 노후 연금에 관한 책이다. 자신의 직업과 취미를 글이나 사진으로 옮길 수 있다.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 저자 나물이는 예외적으로 배고프지 않은 저자였다. 백수로 지내며 적은 돈으로 해먹을 수 있는 요리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사이트에 요리법을 올렸다. 나물이는 어떤 프로 요리사나 요리 연구가보다 많은 인세를 받았다. 수십만의 독자를 가진 스테디셀러 작가가 되었다.
전국의 모든 가정에 있다는 '삐뽀삐뽀 119 소아과'의 저자 하정훈 원장도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로 유명한 출판사인 열린책들에서는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이라는 책을 내서 출판사 편집자들을 고정 독자로 만들었다. '토익 답이 보인다'의 저자 김대균은 유명 토익 강사이다. 강의 때 마다 사용하던 몇 페이지 안 되던 문제지를 모으고 모아 책으로 묶었다. 물론 베스트셀러 저자가 되었다.
저자가 꿈이 아니었지만 전문 분야와 자신의 일을 글로 바꿔내는 작업을 통해 작가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취미나 일을 했지만 결과는 작가가 되었다. 직업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이 저자들의 책 출간은 일종의 외도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이것은 일종의 기대효과이다. 사업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생기는 부수효과이다.
요즘은 이 부수 효과가 주 수익모델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미키 마우스도 뽀로로도 애니메이션으로 돈을 벌지 않는다. 주 수익은 캐릭터 사업이다. 기대효과는 이제 주된 목표가 된다. 직장 생활 10년, 취미 생활 10년 이면 그 분야의 주전 선수가 되어 있다. 이들이 쓰는 글은 바로 책이 된다. 이 경우 잘 된다면 연봉보다 높은 인세 수익을 올릴 수도 있다. 꾸준히 한 분야를 파온 서른 살 이상의 사람은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는 요건을 갖추고 있다.
후배 둘이 있다. 하나는 글을 쓰기 위해 시청 공무원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학교 서무과 직원이 되었다.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난 후 둘에게 '글은 쓰니?'라고 묻지 못했다. 지쳐 보이기는 했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매월 잊지 않고 나오는 월급은 지우개이다. 글 쓸 생각을 지운다. 부업작가는 전업작가보다 글쓰기가 더 힘들다. 뇌가 반쪽으로 나뉘어 일과 글쓰기를 분리하지 않는 이상 하나의 일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회사 생활을 하고 동시에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변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작가는 공무원을 하면서 매일 2시간 30분씩 글을 썼다고 한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7시 30분에서 9시까지 매일 글을 썼다. 이 시간이 아침이라니. 대단하다. 엄청난 다작 작가로 이름을 남겼다. 물론 반대 경우도 있다. 알베르 까뮈도 공무원이었다. 오후에 출근해 2시간 정도 일하고 와인을 마시러 갔다고 한다. 항상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회사 생활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근무시간만 놓고 보면 글쓰기가 가능할 만큼 충분한 시간이었다. 방해자는 술이었을 것이다.
직장을 다니며 인간관계, 스트레스, 술자리를 쉽게 피할 수 있을까? 이럴 때 현실적인 타협안을 찾아야 한다. 직업을 글 관련 쪽으로 옮기거나 혹은 글쓰기 관련 업계에서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것도 좋다. 원하지 않은 글을 쓸 수 있다. 남의 글을 다듬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이 작가의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는 도움을 받는 쪽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글쓰기 관련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이런 행복한 작가가 될 기회를 놓치지 마라. 월급이 적더라도 작가가 되고 싶다면 출판사 편집자가 돼 보는 것도 좋다. 내내 책을 읽고 글을 고치는 일은 일종의 견습 기간일 수 있다.
많은 작가들이 출판사 편집자 출신이다. 소설가 정이현도 편집자였다. 그리고 기자출신의 작가들도 많다. 김훈과 김소진은 기자였다. 시인 김경주는 등단 전에 유명 광고 회사의 카피라이터였다. 그 영향인 듯 그의 시는 카피 같다. 김경주는 원하는 글쓰기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일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갔다. 글과 가까이 살고 싶다면 출판사와 잡지사 혹은 카피라이터처럼 본인이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도 글을 쓰고 고치는 곳으로 가라.
이런 행운이 없을 수도 있다. 글과 아무런 관계없는 직장은 독한 결심이 필요하다. 무조건 글을 쓰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중요하지 않다. 매일 글을 써야 한다. 지우개와의 싸움이 쉽지는 않겠지만 해야 한다. 월급이 작더라도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는 직장이 좋다. 계약직으로 사는 것도 방법이다. 정시 출근에 정시 퇴근을 할 수 있는 곳 말이다. 아니면 까뮈 같이 하루 두 시간만 일해도 되는 행운의 직장을 찾아야 한다. 작가의 꿈을 꾼다면 주변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면 된다.
이것이 현실적인 생각이다.
초베스트셀러 저자를 목표로 삼을 수는 없다. 신정아라는 사람이 15만 부가 넘는 판매량을 자랑하는 저자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은 기회와 이슈, 독자의 상황 등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설 도가니는 영화 도가니가 나오기 전까지 공지영 전작 소설에 비해 판매량이 많지 않았다. 저자는 글을 쓸 뿐이다. 책이 판매되고 인세가 되어 통장에 들어오는 일은 저자의 생각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평생 안정적인 벌이 없이 허덕이다 글쓰기를 마감할 수 있다.
부업을 하는 전업작가와 직장을 가진 부업 작가의 공통점은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글쓰기 하나와 돈을 벌기위해 해야 할 다른 일이다. 이 일을 하나로 만들려면 초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거나 든든한 스폰서를 가지면 된다. 하지만 직장은 월급이 들어오고 글쓰기는 돈이 안 생긴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글쓰기를 포기하거나 늦출 수밖에 없다. 우선 생계에 대한 우려를 줄일 수 있는 직장과 자금 계획이 당장 필요하다. 그 계획을 짜는 것이 저자의 시작이다.
두 가지 일을 하며 절약하라!
세계작가협약을 만든다면 1조에 들어갈 말이다. 그래도 써놓고 보니 후회가 든다. 그래도 저자이거나 저자가 될 독자가 볼 텐데 결국 '3년 만에 40억 만들기' 같은 재테크 책의 내용이 나오고 말았다. 세상에! 지금 저자가 되는 꿈을 재테크랑 바꾸었다. 만약 자기계발이나 경제경영 저자가 보았다면 충분히 이해를 할 내용이지만 문학이나 인문사회 저자가 보면 혀를 찰지 모른다. 이 글을 읽고 예술가적 풍모를 보이는 저자가 있다면 꼭 친구가 되고 싶다. 그는 분명 부자이다.
*
'짱구'가 그랬다 "호기심이 인생을 망친다"
[나도 책 쓴다]<7>책 쓰기 첫걸음은 거짓말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은 떠드는 것이다. 일종의 거짓말이다. 난 이렇게 책을 쓸거야 라고 주변에 말을 하라. 책이 나오면 거짓말이 아니다. 말로 시작하면서 글은 시작된다. 움베르토 에코는 쉰 살이 넘기 3년 전에 우연히 편집자에게 말로 했던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50살에 소설가로 데뷔하고 77살이 된 지금. 소설가 나이가 27살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젊은 소설가'라고 말한다. 7개 국어를 하는 언어학자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이라고 말을 듣는 철학자. 이미 많은 인문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뒤 소설가로 데뷔할 때도 한 마디의 말로 시작한다.
'… 범죄소설을 써야 한다면 최소한 500페이지 분량에, 배경은 중세 수도원이 될 거라는 도발적인 말을 내뱉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출판사 직원의 단편 추리 소설 요청에 대한 에코의 답이었다. 이 말을 하고 집에 온 에코는 수도사들의 이름 몇 개를 적어놓은 메모를 찾았다. 메모를 보며 어떤 책을 읽던 수도사가 독살당하는 얘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권이나 되는 그 두꺼운 소설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말이 나온 지 2년이 지나서 책이 되고 우리는 '장미의 이름'을 소설로 보고 영화로 만났다. 만약 '장미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면 에코는 도발적인 거짓말을 한 것이 된다. 2년 만에 자신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거짓말을 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싶지만 그것보다 거짓말을 하는 편을 택했다.
이제부터 거짓말을 할 것이다. 이제부터 쓰는 글은 이미 가족과 친구에게 한 거짓말이다. 쓰고는 있지만 언제 나올지 모르는 책에 대해 주변에 떠들어 댔다. 숨기지 말아야 한다. 잘난 척 한다고 구박을 받거나 비웃음을 받을지 모르지만 신경 쓰지 말자.
어차피 그 사람이 책을 쓰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짓말이지만 책을 쓴다면 이 말과 글은 집필 선언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게으름에 질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거짓말 - 첫 번째 집필 선언'
이 글을 쓰기 얼마 전까지 엄청난 우울증에 고생을 하고 있었다. 집 밖을 나서기도 어려웠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무서웠다.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가사 있는 노래가 더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클래식을 듣기 시작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을 듣게 되었다.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 1번 교향곡이 너무 좋아서 번호 순서대로 10번까지 들었다. 10번 미완성 교향곡까지 러닝타임은 20시간에 가까웠다. 9번까지는 마음이 편해져서 오랜만에 행복한 느낌까지 들었다.
10번을 듣고 있을 때 불편함이 느껴졌다. 동시에 공감했다. 옆에 말러가 앉아 내 손을 잡아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일상적이지 않은 감정이었다. 음악 평론가는 아니지만 무엇인가 튀며 불편하고 그리고 애절했다.
(여기까지 우연한 계기이다.)
그래서 구글로 갔다. 말러의 인생이 궁금했다. 궁금증이 다 풀리지는 않았다. 다음 날은 서점을 갔다. 책을 샀다. 말러의 인생은 불운한 성장과정과 가슴 아픈 결혼 생활로 말할 수 있다. 딸이 성홍열로 죽고 아내는 젊은 남자와 연애를 한다. 열아홉 살 어린 아내 '알마 말러'가 결혼 생활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구스타프 말러가 훌륭한 남편이지는 않았다. 알마의 표현에 의하면 피를 말리고 숨이 막히는 결혼 생활이었다고 한다.
아내의 바람을 알고 구스타프 말러가 작곡한 것이 미완성 교향곡인 10번이다.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과 용서, 신뢰를 보여주려고 10번 교향곡을 작곡했으나 결국 끝내지 못하고 죽고 만다. 9번까지의 교향곡은 어렸을 때의 고통스러운 성장과정과 딸의 죽음, 신비주의 등이 합쳐져서 대체로 신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는다. 이전 작품과 다르게 10번 미완성 교향곡은 신의 자리에 연인을 가져다 두었다. 그래서 구스타프 말러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렸다.
(여기서부터 흥분하기 시작했다.)
말러는 음악만 듣기로 결심했다. 글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생겨났다. 알마 말러. 구스타프 말러는 그냥 궁금증이었다면 알마의 삶은 책으로 엮고 싶었다. 알마에 관련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무궁무진한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다. 알마가 주인공인 '바람의 아내'라는 영화는 1999년에 개봉됐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알마가 사귀었거나 알마에게 미쳐버린 남자(15명)와 세 명의 남편과의 러브스토리 관광코스가 있다. 그 장소에서 연극 형식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알마의 파티로 알려져 있는 행사가 매해 다른 지역에서 십년 넘게 열리고 있다.
알마가 결혼 전에 만났던 남자는 구스타프 클림트였다. 첫 키스는 클림트와 했다는 소문이 있다. 의사에서 건축가, 시인, 화가 등 유럽 예술가들의 마음을 달뜨게 했다. 코코슈카라는 화가는 알마의 실물 크기의 인형을 만들어 안고 자고 음악회에 갈 때 인형을 가지고 가서 옆자리에 앉혀 두었다고 한다. 이런 등급의 이야기가 알마의 평생을 이어온다.
이 모든 예술가들에게 알마는 연인이었으며 작품 활동을 하게 만드는 뮤즈였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까지 위명을 떨쳤던 예술가들이 알마의 주변에 있었다. 구글 검색 결과의 자료들은 알마의 일면 만을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다른 정보들을 보여주었다. 풍부한 자료에 일단 책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이 대목에서 책을 쓰기로 결정했다.)
책으로 써야겠다는 마음을 굳힌 것은 알마의 가족사 때문이다. 알마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알마의 딸의 인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알마의 엄마는 결혼을 2번 했다. 알마는 3번. 알마의 딸은 5번 했다. 모녀 3대가 총 결혼한 횟수는 10번이다. 그 남편들은 하나 같이 유명한 예술가였다. 뮤즈가 딸을 낳고 다시 그 딸이 딸을 낳으며 19세기와 20세기의 그리스 로마신화를 새로 쓰고 있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모녀 삼대의 인생에 온통 마음을 뺏겼다. 이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집 밖으로 나섰다.
(이 때는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걸어나갔다.)
사람들을 만나고 만날 때 마다 알마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말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이 채 안 된다. 강의를 들을 때 빼놓고 한 사람 이야기를 5분 이상 듣는 것은 힘들 것 같아 줄이고 줄여 이야기 했다. 사람들은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까칠한 반응은 거의 없었다. 책으로 쓴 다는 이야기에 기대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럴 때 바로 시작해야 한다. 그날 이후로 모녀 3대 이야기를 자료를 정리하고 책을 보고 조금씩 매일 책을 쓰고 있다. 3년 후에는 종이책으로 출간하고 싶다. 하지만 당장은 그 방대한 자료 조사와 번역, 공부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은 전자책으로 출간하려고 한다. 전자책은 이야기를 정리하는 정도로 나올 것이다. A4 20장 정도로 계획하고 있다. 책 제목은 '모녀 삼대, 10번의 결혼 이야기'이다.
(결국 말을 하고 말았다. 책을 쓴다고...)
이 거짓말은 내가 책으로 쓴다면 진실이다. 만약 쓰지 못한다면 거짓말이 된다. 아직 시간 즉 마감은 약속하지 못한다. 지금도 자료조사를 하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꼭 쓴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다. 나에게도 '알마'급의 뮤즈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 거짓말 - 두 번째 집필 선언'
'호기심이 인생을 망친다.'
-만화 <짱구>에서 짱구가 한 말
무슨 일이든 옆으로 새면 일이 두 배가 된다. 왜 하필 그 때 궁금했는지. 검색창에 다른 여인의 이름을 올리고 말았다. 또 한 명의 뮤즈. 독일의 '알마'와 비견될 만한 프랑스의 여인이다.
'발라동'
발라동은 그 시대 드문 프랑스 여류화가이다. 자료를 찾는 중 EBS 지식채널에서 발라동을 소개한 3분짜리 영상물을 보았다. 후기 인상파의 유명 화가들의 누드모델이었다. 르느와르, 로트렉, 드가 등의 그림에서 그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사생아다. 파리의 세탁부의 딸로 태어났다. 엄마를 따라 15살 때까지 세탁부를 하고 16살에는 서커스에서 곡예사를 한다. 17살 때부터 캔버스 너머로 옷을 벗기 시작한다. 그녀가 이젤과 캔버스 안쪽으로 들어오도록 영향을 준 것은 그녀를 그렸고 혹은 그녀와 연인이었던 후기 인상파 화가들이었다.
화가들의 모델을 하며 배운 그림으로 드디어 붓을 든다. 알마가 작가들에게 계기를 제공하지만 알마는 결과적으로 수집가였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았을 뿐이다. 발라동은 화가들가의 교류를 통해 자신을 키워갔다. 발라동은 연인을 멘토로 만들었다. 그녀는 멘티다.
이 집의 가족사도 만만치 않다. 발라동의 하나 있는 아들은 9살 때까지 이름만 가지고 있었고 성이 없었다. 나중에 다른 집에 입양을 시키는 방식으로 성을 얻는다. 엄마와 아들이 다 사생아로 태어나고 살아온 것이다. 그 아들도 나중에 화가가 된다. 그것도 아주 독특한 계기로 말이다.
발라동은 46살 때 20살 어린 남편을 얻고 그 때 아들의 나이는 29살이었다. 아들은 위트릴로. 남편은 우터. 이 둘은 친구였다. 위트릴로의 엄마인 발라동은 위트릴로 보다 3살 어린 그의 친구와 결혼을 한 것이다.
이것에 충격을 받은 위트릴로는 알콜중독이 되었고 이것을 치료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원인을 제공한 엄마인 발라동이 아들에게 화가의 길을 열어주게 된다. 사람들은 이 세 명의 동거인을 '위험한 삼위일체'라고 불렀다.
EBS는 공영방송이다보니 지식채널에서는 이 기괴하고 기구한 이야기들은 빼 버렸다. 역경을 이겨낸 여인으로만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도전해 볼만 했다. 방송에서 빼버린 부분을 복원하면 이 여인이 입체적인 인물로 다시 구성되기 때문이다. 틈틈이 자료 찾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 책도 언제 나올지 모르지만 꼭 나올 것이다. 이렇게 두 번째 집필 선언을 한다.
지금까지 두 개의 거짓말을 했다. 책이 나와서 나의 집필 선언이 거짓말이 되지 않게 노력하겠지만 거짓말라는 것은 사실이다.
'난 이런 저자가 될거야. 왜냐면…'
이런 말은 당신이 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쓴 책을 그 책을 읽은 독자가 하면 된다. 자신의 작가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는 시간에 어떤 책을 쓸 것인지 결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래의 말을 당신으로부터 듣고 싶어서이다.
'난 이런 글을 쓸거야. 왜냐면…'
이 거짓말을 하면 작가의 고난이 시작된다. 그리고 여러 가지 거짓말을 종류별로 해대면 당신이 내야 할 책이 하늘까지 쌓이게 된다. 너무 많은 집필 선언은 피하라. 대신 여기저기서 들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사람들한테 말하며 그들의 반응을 살피는 것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 반응을 말로 들어온다면 특히 그 말이 비판적이라면 당신의 작품은 점점 훌륭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실존 인물 2명. 동시대. 그리고 여인. 연인. 뮤즈. 멘티. 그리고 사랑. 아직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두 명의 여인은 나에게는 우연하게 찾아왔다. 이 여인들의 삶을 짧은 전자책 안에 담기 위해 지금도 헤매는 중이다. 뮤즈와 멘티. 알마와 발라동. 집필 선언을 하게 되는 배경을 순서대로 나열해보면 아래와 같다.
계기 ->
흥분 ->
결정 ->
말(대화 혹은 거짓말)
그리고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계속 거짓말을 하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기억하면 이제부터 글쓰기는 시작이다. 꾸준히 쓰는 생활 글쓰기도 있고 폭풍 집필일 수도 있다.
/ 이동준 전자책 저자되기 강사
'평론과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형철<시뮬라크르를 사랑해> (0) | 2011.12.09 |
---|---|
한미 FTA, 이대로 발효된다면 (0) | 2011.12.07 |
성민엽<시선의 시학> (0) | 2011.11.10 |
세대인가 계급인가, 아니면 세대가 계급인가 (0) | 2011.11.09 |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을 통해서 본 '따돌림' 의 의미 (0) | 2011.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