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파꽃 /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내가 장난으로 챔파꽃이 되어서는
저 높은 가지에 피어
바람에 까르르 웃으며 흔들리고
새로 핀 잎 위에서 춤추고 있다면
엄마는 나를 알아보실까?
엄마는 이렇게 부르실 거야
"아가야, 어디 있니?"
그럼 난 살짝 웃고는
아무 말도 안 할거야.
조그만 꽃잎을 살짝 열고서
엄마가 하는 일을 몰래 보고 있을 거야.
엄마가 목욕을 하고나서
젖은 머리를 어깨에 늘어뜨리고
기도 드리는 작은 뜰로 건너가려
챔파나무 그늘 속을 걸어갈 때
엄마는 어디선가 나는 꽃향기를 맡을 테지만
그것이 내게서 풍겨나오는 줄은 모르실 거야.
점심이 지난 뒤
엄마가 창에 기대앉아 〈마라야나〉이야기책을 읽을 때
나무 그늘이 엄마의 머리와 무릎 위에 어리면
나는 내 아주 작은 그림자를
엄마가 읽는 책 위에 드리울 거야
엄마가 읽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
하지만 그게
엄마 아가의 조그만 그림자인 줄 아실까, 정말?
저녁 무렵
엄마가 등불을 손에 들고 외양간으로 가면
나는 상큼 땅으로 내려서서는
다시 엄마의 아가가 되는 거야.
그리고는 옛날 이야기 하나 해달라고
우리 엄마를 조른단 말이지.
"어디 갔었니,
요- 장난꾸러기 내 아가야? "
"엄마-, 안 가르쳐 주~어요."
그 때 엄마하고 나하고
이런 얘기를 할지도 몰라.
Gardenisto / 타고르
"저녁 때입니다. 나는 비록 때가 늦기는 하였지만, 마을에서 누가 부를지도 모르는 까닭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참이오.
행여 길잃은 젊은이들이 서로 만나면, 두 쌍의 열렬한 눈이 자기들의 침묵을 깨뜨리고, 이야기해 줄 음악을 간청하지나 않나 하고 지켜 보는 참이올시다.
행여 내가 인생의 기슭에 앉아 죽음과 내세(來世)를 관조(觀照)한다면, 열정의 노래를 엮을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
초저녁 별이 사라집니다.
화장(火葬)연료의 불꽃이 고요한 강가에서 가늘게 사라져 갑니다.
기진한 달 빛 속 외딴 집 뜰에서 승냥이들이 소리를 합쳐 웁니다.
행여 고향을 등지고 떠돌아다니는 이가 여기 와서 밤을 지키고 있어, 머리를 숙이고 어둠속에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 때,
내가 문을 닫고 인간의 굴레로부터 해방되고자 애쓰고 있다면, 그 나그네 귀에다 인생의 비밀을 속삭일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
내 머리가 희어지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올시다.
나는 이 마을의 젊은이 중에서도 가장 젊고, 또 늙은이 중에서도 가장 늙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상냥하고도 순진한 미소를 띱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활하게 눈짓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햇빛에 눈물이 솟아오르고, 또 어떤 사람은 어둠 속에 숨어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들은 모두 다 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세에 대하여 생각할 시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내 나이는 다른 사람과 동갑입니다. 내 머리가 희어진들 어떠하리이까?"
Gardenisto는 'The Gardener'의 에스페란토어로, 원정(園丁, 정원사)
타고르의 시'Gardenisto'를 읽고 / 한용운
벗이여, 나의 벗이여 애인의 무덤 위에 피어 있는 꽃처럼 나를 울리는 벗이여.
작은 새의 자취도 없는 사막의 밤에 문득 만난 님처럼 나를 기쁘게 하는 벗이여.
그대는 옛 무덤을 깨치고 하늘까지 사무치는 백골(白骨)의 향기입니다.
그대는 화환을 만들려고 떨어진 꽃을 줍다가 다른 가지에 걸려서 주운 꽃을 헤치고 부르는 절망인 희망의 노래입니다.
벗이여, 깨어진 사랑에 우는 벗이여.
눈물이 능히 떨어진 꽃을 옛 가지에 도로 피게 할 수는 없습니다.
눈물을 떨어진 꽃에 뿌리지 말고 꽃나무 밑의 티끌에 뿌리셔요.
벗이여, 나의 벗이여.
죽음의 향기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백골의 입술에 입맞출 수는 없습니다.
그의 무덤을 황금의 노래로 그물치지 마셔요. 무덤 위에 피 묻은 깃대를 세우셔요.
그러나, 죽은 대지가 시인의 노래를 거쳐서 움직이는 것을 봄바람은 말합니다.
벗이여, 부끄럽습니다. 나는 그대의 노래를 들을 때에 어떻게 부끄럽고 떨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나의 님을 떠나 홀로 그 노래를 듣는 까닭입니다.
"우리의 내부인생의 흐름이 외부의 우주의 생명과 하나인 것을 느낄 때, 우리는
모든 쾌락과 고통이 하나의 긴 환희의 실에 꿰매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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