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황인숙<꿈>외 3편

미송 2012. 5. 1. 09:36

     

     

    가끔 네 꿈을 꾼다

    전에는 꿈이라도 꿈인줄 모르겠더니

    이제는 너를 보면

    아, 꿈이로구나

    알아챈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아,

    저,

    하얀,

    무수한 맨종아리들,

    찰박거리는 맨발들.

    찰박 찰박 찰박 맨발들.

    맨발들, 맨발들, 맨발들.

    쉬지 않고 찰박 걷는

    티눈 하나 없는

    작은 발들.

    맨발로 끼어들고 싶어지는.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어디선가 옮겨 적은 메모 쪽지를 들여다본다

    달은 세상의 우울한 간(肝)이다.
    —람프리아스(그리스 철학자)

    그래서인가, 간 속에 달이 있네
    중국인들은 대단해!

    달은 세상의 우울한 간이고,
    간은 달에 우울히 연루되고……
    뭐야? 마주서 한없이 되비추는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 속의 거울……

    그러고 보니 폐(肺)에도 달이 있고
    장(腸)에도 달이 있네
    쓸개(膽)에도 달이 있고……
    몸뚱이 도처가 달이로구나!

    간이, 부풀어, 오른다, 찌뿌둥,
    달처럼, 우울하게,

    달아, 사실은 너,
    우울한 간 아니지?
    이태백이 놀던 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