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과 산문

제인구달<희망의 밥상>

미송 2012. 4. 23. 08:56

 

곤경에 처한 가금류(家禽類)

 

요즈음의 가금류들은 '전지식 양계장'에서 사육된다. 전지식 양계장이란 수백 개의 닭장을 여러 층으로 쌓아 올린 양계용 건물을 말한다. 전지식 양계장 건물 한 동에 알 낳는 암탉 7만 마리가 한꺼번에 수용된다. 작은 닭장 하나에 네 마리에서 많게는 여섯 마리까지 암탉을 집어넣기 때문에 공간이 너무 좁아 날개를 펼 수조차 없다. 그렇게 좁은 공간에 몰려 있다 보니 걸핏하면 암탉들끼리 부리로 서로 쪼는 일이 생겨 아예 부리 끝을 잘라 '정리' 한다. 그렇게 부리를 자를 때 암탉이 고통을 겪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또 발톱이 닭장의 바닥을 이루는 철망에 자꾸 걸린다는 이유로 발톱이 영영 다시 자라지 못할 만큼 잘라 버린다.

 

달걀의 생산량이 줄어들면 며칠이고 암탉에게 모이를 주지 않거나 물마저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낮과 밤의 주기를 바꿔 버린다. 이렇게 하면 충격을 받은 암탉은 털이 빠지면서 다시 알을 낳기 시작하지만 그 생산력은 몇 주밖에 가지 못한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생산력이 떨어지면 이제 쓸모가 없어진 암탉은 치킨 수프가 되는 길밖에 없다. 양계장에서는 부화한 병아리가 수놈일 경우, 아무 쓸모도 없는 '부산물'로 여겨 비닐 봉투 속에 던져 넣어 버린다. 비닐 봉투속에 그 작은 몸뚱이들이 자꾸자꾸 들어와 쌓이다 보면, 결국은 모두 질식해서 죽어 버리고 만다. 그렇게 죽은 수평아리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지거나 때로는 산 채로 분쇄되어 가축 사료로 쓰인다.

 

구이용 어린 닭이나 거세되어 나중에 식용 수탉(다리와 날개, 가슴살로 분리되어 깔끔한 포장육 상태로 팔린다)이 될 녀석들은 비좁은 우리에 넣어져서 서로 밀고 당기고 부딪치며 사는데 때로는 한 놈이 다른 놈을 밟고 지나가기도 하고 죽은 놈은 산 놈들의 발밑에 짓뭉개진다. 그나마 살아 있는 짧은 기간 동안 성장 호르몬을 투여해서 제 다리로는 설 수도 없고 알을 낳을 수도 없을 만큼 살을 찌운 칠면조는 마치 괴물 같다. 그러나 추수감사절, 또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 중에서 그들의 향연에 오르기 위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던 칠면조의 영혼도 함께 앉아 고문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삶을 끝내 준 죽음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드릴 것이다.

 

오리와 거위도 좁은 우리에 가두어 길러지기는 닭과 마찬가지다. 그들 몸속의 간을 파테(고기와 간을 짓이긴 요리를 말한다)인 푸아그라 같은 음식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비대하게 키우는 것은 경제적으로는 이득이 있겠지만 오리나 거위에게는 생고문이다. 일꾼들은 오리와 거위의 목에 금속 파이프를 꽂고 펌프로 엄청난 양의 옥수수를 이 불쌍한 새들의 식도로 곧장 집어넣는다. 그렇게 몇 주만 지나면, 오리와 거위는 비대해지고 간은 정상적인 크기의 열 배까지 커진다. 그렇게 사육된 오리와 거위는 제 힘으로 걷거나 서기는커녕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 식도에 강제로 들이부어지는 사료 때문에 그들 중 많은 수가 목이 찢어져 고통받고, 식도 윗부분에는 박테리아 곰팡이까지 생긴다.

 

 

 

동물들의 탈출과 구조 이야기

 

놀랍게도 몇몇 동물들은 끔찍한 도축장에서 탈출해 언론에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E. B. 화이트의 [샤를로트의 거미줄]을 읽은 사람들, 최근에는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를 본 많은 사람들이 돼지에 대해 동정심을 갖게 되었다. 끔찍한 환경에서 탈출해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는 환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1996년, 두 마리의 돼지가 영국 윌트셔의 한 도축장에서 탈출해 헤엄쳐 강을 건나 8일 동안이나 추적을 따돌린 일이 있었다. 덕분에 '선댄스와 부치(1890년대 남아메리카 볼리비아에서 익명을 떨친 두 무법자에 빗댔다. 이 이야기는 '내일을 향해 쏴라'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 돼지들의 이야기는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고 각종 신문의 헤드라인에 등장하면서 영국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두 마리 돼지의 극적인 탈출 스토리는 전 세계로부터 관심을 끌었다. 8일 째 되는 날, 영국의 한 신문사가 거금을 내놓고 탈출한 돼지들을 사들인 후, 구조대를 급파했다.

 

경찰과 수의사 RSPCA(Royal Socite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 동물에 대한 의식을 향상시키고 동물 학대를 방지하는 단체) 대원들, 스페니얼종 개 한 마리, 잡종 사냥개가 합세한 구조대는 하룻밤을 꼬박 새며 필사적인 구조 작전을 펼쳤다. 억수 같은 장대비 속에서도 기자들까지 그들을 따라나녔다. 어느 한 순간에는 영국의 대표적인 신문사와 방송사는 물론 유럽과 미국, 심지어는 일본에서 파견된 150명의 사진기자와 텔레비전 카메라맨이 한자리에 모인 때도 있었다. 결국 선댄스와 부치는 구조대에 생포되어 동물 보호소로 옮겨졌고, 그들은 거기서 지금도 평화롭게 살고 있다. 당시 집중적인 언론의 보도는 물론, 돼지와 돼지의 지능에 대한 여러 기사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더 이상 먹지 않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분명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돼지고기, 베이컨, 햄이 곧 돼지다!

 

제인구달<희망의 밥상> 128-133쪽 中.

 

 

 

 

 

 

 

'운문과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석남<오솔길을 염려함>외   (0) 2012.04.27
류시화<소금>외 17편  (0) 2012.04.25
김수영<그것을 위하여는>  (0) 2012.04.10
최규승<처럼처럼>  (0) 2012.04.03
김경주  (0) 2012.04.01